걸음마다 피어오르는 에도의 풍경,
그 길의 끝에서 마주친 거장 다니구치 지로의 울림 가득한 메시지!
그런데 은퇴 후 한적하고 여유로운 취미 활동으로 보기엔 주인공의 행보는 어딘지 남다른 점이 있다. 항상 보폭을 70cm로 일정히 맞추기 위해 애쓰고 나침반을 들고 다니며 방위를 측정하는 모습은, 그것이 단순한 산책이 아님을 짐작케 한다. 그의 진짜 의도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난다. 바로 일본 전국 지도를 제작하는 것.
사실 주인공에게는 실제 모델이 있다. 에도시대에 일본의 전국 지도를 제작한 이노 다다타카(伊能 忠敬, 1745~1818)가 바로 그이다. 이노 다다타카는 1800년 막부의 명을 받아 홋카이도를 처음 측량한 뒤로 19년에 걸쳐 일본 전역을 측량한 끝에 대일본연해여지전도(大日本沿海輿地全圖)를 만든 인물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조선시대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고산자 김정호와 비슷한 위인이라 할 수 있다. 『에도 산책』은 주인공이 지도 제작의 꿈을 품고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를 하고 결심을 다지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야기인 셈이다.
동시에『에도 산책』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여 마침내 결실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여러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조금씩 천천히, 멈추지 않고 걷던 주인공은 마침내 꿈을 이룬다. 책 속 이야기는 그가 홋카이도로 떠나기 직전에서 막을 내리지만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어쩌면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책 속 주인공의 대사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조바심 내지 않고 정확히,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언젠가는 뜻하는 바에 닿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에도 산책』에는 주인공 외에도 하이쿠 작가로 유명한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나 이노 다다타카의 스승인 다카하시 요시토키(高橋至時) 등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장소도 모두 실재했던 곳이며, 고래, 코끼리에 얽힌 에피소드 또한 역사 기록이 남아 있는 사건이라고 한다. 실재했던 사실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에 조금의 위화감도 없이 엮어낸 거장의 솜씨에는 그저 감탄이 나올 따름이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 다니구치 지로를 따라 천천히, 찬찬히 에도를 산책해보자. 가볍게 따라나섰던 그 길의 마지막에서 묵직한 메시지와 마주치는 순간 왜 다니구치 지로가 거장으로 불리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원제는 후라리(ふらり). 가볍게 천천히 흔들리는 모양이나 예정 없이 나타나는 모양을 뜻하는 부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