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시대를 그려 낸 작가, 안톤 체호프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러시아의 대문호로 꼽히는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집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출간되었다. 그가 생전 남긴 수많은 단편 소설들 중 일곱 작품을 뽑아 엮었다. 동시대를 살았던 톨스토이를 비롯해 현재까지 수많은 작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안톤 체호프는 서민들의 삶과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를 생생하게 그렸다고 평가받는다.
체호프는 인간에 대한 질문을 수없이 던지고 또 탐구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등 인간 존재에 대해 다각도로 고민하며 인간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렇게 그려 낸 당시 사회와 서민들의 삶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로 이어져 읽히고 있다.
그가 이렇게 질문을 던져 일생 동안 완성한 단편 소설은 500편이 넘으며, 단편 소설 외에도 극작가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의외로 체호프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네이딘 고디머는 “체호프가 없었다면 우리 작가들 가운데 누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 그가 아니었다면 단편 소설은 고리타분한 형식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지금까지도 그의 이름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작가들의 수식어가 되고 있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체호프의 글이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상대방의 권세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꾸기도 하고(〈카멜레온〉),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으며(〈사랑스러운 여인〉),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부정한 만남을 이어가기도 한다(〈사랑에 대하여〉,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이들은 때론 도덕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체호프를 매우 아꼈던 톨스토이마저도 부정한 인물들이 죗값을 제대로 치르거나 도덕성을 회복하지 않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했다.
등장인물 개개인들은 과도하게 이상적이거나 혹은 이기적인 존재가 아닌, 적당히 때가 탄 인물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꼭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거나 열린 결말로 끝난다. 도덕적이지만은 않은 인물이라는 점이 오히려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는 셈이다.
작가는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했던 체호프는 어딘가 우리와 닮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생생한 묘사와 객관주의적 글쓰기
체호프는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언어를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영국의 국민 작가 중 한 명인 서머싯 몸이 “체호프만큼 인물 간의 대화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작가는 지금껏 없었다.”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그가 인간을 관찰해 나간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특징이 보인다. 그 어떤 사상이나 교훈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가 자신들의 사상과 철학을 작품에 녹여낸 것과 비교하면 분명한 차이가 보인다.
그의 작품에는 사상을 반영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그저 체호프 자신의 눈을 통해 객관적으로 그려 낸 한 인간과 사회가 있을 뿐이다. 사상과 철학의 렌즈를 벗고 그가 바라보았던 세상의 풍경이 어떨지 더듬어 따라가는 과정은 독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새삼스러운 즐거움을 줄 것이다.
명작의 이해를 도와주는 풍부한 해설과 정확한 번역
청소년을 위한 세계 명작이라 하면 보통 본문 말미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작가의 연보나 생애, 관련된 흑백 사진 몇 장, 혹은 평론 수준의 딱딱한 해설이 실려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은 다르다. 전현직 국어 교사들이 기획위원으로 구성되어, 현장에서 경험한 청소년들의 요구와 필요에 걸맞은 해설을 ‘제대로 읽기’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구성했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제대로 읽기’에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체호프의 성장 배경을 설명하며 그의 작품의 특징을 설명한다. 동시에, 이번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속 단편들의 특징을 뽑아 분류하여 청소년 독자들이 각 단편을 조금 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왔다. 이외에도 그의 작품과 한국이 맞닿는 지점들을 선별하여 소개하거나 극작가로서도 명성이 높은 체호프의 희곡을 소개하는 등 작품을 더욱 흥미롭고 폭넓게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번역은 러시아 문학 번역의 권위자인 故박형규 선생이 맡았다. 2023년 4월에 작고한 고인은 국내에서 1세대 러시아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책을 번역해 왔다. 수십 년의 경험이 쌓인 故박형규 선생의 번역 역시 청소년들이 명작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