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후 대재앙이 임박했어도 인류는 계속 소비주의, 책임회피, 전쟁에 몰두하는가?
왜 근본주의자들은 세상 종말을 학수고대하며, 자멸적인 묵시론 정치에 열광하는가?
인간의 무한 욕망, 기술, 권력, 혐오를 제어할 철학, 연민, 사랑의 동력은 무엇인가?
항상 몰살당할 위험과 떠돌이 체험에 근거한 창세기의 생존과 평화 지혜는 무엇인가?
왜 창세기는 신들 사이의 폭력적 투쟁이 없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하는가?
왜 다른 창조신들은 혼돈과 투쟁한 후 신전을 세운 반면, 하나님은 안식을 취하셨나?
왜 창조사건과 달리, 개인의 자아인식, 가족의 화해, 평화는 고통스럽고 오래 걸리나?
왜 과학주의, 경제주의, 상대주의, 냉소주의, 숙명론 시대에 성경이 구원의 말씀인가?
왜 개인들의 주체성과 자유, 창조성, 책임성을 억압하는 절대권력의 신은 죽었는가?
왜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며, 종교 없는 과학은 불구”(A. 아인슈타인)가 되는가?
창세기는 어떻게 고통과 패배를 영원에 잇대어 견디게 하며 희망의 길을 제시하는가?
왜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 홍수, 바벨탑 이야기는 인류의 성숙 단계들인가?
왜 아담은 죽을 운명과 끝없는 노동을 통보받은 후에, 여자를 “하와”라고 불렀는가?
왜 인류 최초의 도시 문명인 바벨은 전체주의가 처음 등장한 것이라고 비판받는가?
가난과 고통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세계에 히브리성경은 어떻게 대안을 주었는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각기 다른 믿음의 특성들은 무엇인가?
왜 “믿음의 영웅”이 대홍수 시대의 “유일한 의인” 노아가 아니라 아브라함이었는가?
왜 아브라함이 떠난 행동은 심리적, 경제적, 유전적 결정론들을 부정하는 행동인가?
가족과 집단 중심의 세계에서 어떻게 아브라함은 “개인 주체”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왜 아브라함이 고대 문명의 중심지인 우르를 떠난 것이 반제국주의적 행동이었는가?
소돔을 위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도전한 것인가, 하나님이 인간에게 도전한 것인가?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마침내 얻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하셨는가?
왜 야곱은 에서처럼 “인간은 인간에 대한 늑대”인 세상에 능란한 사람이 되려 했나?
왜 야곱이 한평생 씨름했던 진리가 “얼굴, 이름, 축복에 관한 정체성의 진리”였는가?
왜 유대교는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저세상에서의 구원과 정의실현”에 부정적인가?
왜 르우벤은 높은 윤리적 감수성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는 성격이 되었는가?
왜 다말의 담대한 행동은 하나의 모델이 되어 랍비사상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드린 기도는 어떻게 매일 기도의 구조 속에 전례화되었는가?
유대인들의 하루 세 차례 예배는 왜 세 가지 요소와 축복, 기도로 이루어져 있는가?
왜 엘로힘과 하솀, 토라와 호크마의 차이가 유대교를 보편적이며 특수하게 만드는가?
왜 제사장 지파 레위와 왕들의 지파 유다는 라헬의 자손이 아니라 레아의 자손인가?
왜 다윗 왕의 조상들에는 이집트 총리 요셉이 아니라, 유다, 다말, 룻이 포함되는가?
요셉은 형들이 완전히 회개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어떤 단계들을 거치도록 만드는가?
왜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후에도 아버지 야곱과 전혀 연락을 취하지 않았는가?
왜 야곱은 또 다시 큰손자인 므낫세보다 둘째 손자인 에브라임을 먼저 축복했는가?
왜 속죄일에 하나님께 지은 죄는 속죄받지만, 타인에 대한 죄는 속죄받지 못하는가?
형제자매들 간의 경쟁을 다룬 복잡한 이야기들의 심오한 구조와 메시지는 무엇인가?
족장들은 실패와 상처를 극복하고 자유를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무엇을 선택했는가?
왜 하늘의 절대적 진리를 소유한다고 믿는 인간은 가장 잔혹한 악행들을 저지르는가?
약소민족이 강대국들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것은 무엇인가?
인류가 멸종 위기종이 된 시대에 우리는 창세기에서 어떤 원리들을 배워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