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황금 전설』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을 쓴 야코부스 데 보라지네는 제노바의 대주교이자 역사를 기록했던 인물로서 신약 이후에 빠진 교회의 여러 기록, 전설, 구전되는 이야기를 찾아서 서사했고, 신자들에게 종교적 감정을 고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발전에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이야기에는 중세까지 여러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를 인지하고 있었던 윌리엄 그레인저 라이언(William Granger Ryan)은 이 책이 중세 예술, 문학, 대중적 종교 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 이 책을 왜 『황금 전설』이라고 부르는가?
라틴어 원서 제목 “레젠다 아우레아 Legenda Aurea”를 그대로 번역하면 ‘황금 전설’이 된다. 하지만 원래 제목은 “성인들의 전기(레젠다 상토룸/Legenda sanctorum)이었다. 15세기 이 책이 많이 읽혀지기 시작하면서 ‘황금의(aurea)’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며, 독자들이 이 책을 황금만큼 중요하다고 인정한 탓이다. 당시 ‘전설(Legenda)’라는 단어는 “모으다, 읽다, 낭독하다, 골라내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이 책은 “성인들에 대한 중요한 읽을 거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중요하고 아름다운 성인전’이라는 표현에 가깝다.
3. 이 책의 종교적 가치!
이 책의 종교적 가치는 역사적 사실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보라지네는 역사를 생생한 일화로 바꾸고 인간에 대한 교훈을 제공했다. 신학적으로 가톨릭의 입장에서 이는 강론과 교리 문답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유럽의 종교 개혁 속에서 마르틴 루터는 이 책의 생동감이 오히려 신비주의적 색채가 강하다는 점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역사에 활기를 불어넣었다고 해서 역사적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 가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의 관점에서 생겨난다. 따라서 번역자의 입장에 따라 늘 새롭게 번역이 시도되고 소개되고 있다.
4. 많은 예술가들은 왜 이 책을 읽었을까?
예술가처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늘 이 책에서 영감을 받았다. 초세기부터 중세까지는 길지만 사료가 많지 않다. 천년의 세월이 사라지고 잊혀졌다고 느꼈을 때, 희소성을 지닌 자료는 그 시대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 책이 매우 드문 초세기와 중세의 민속과 역사를 다루고 있는 희귀한 자료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창의성은 더 나아가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예술가들이 이 책을 좋아했던 이유일 것이다.
5. 『황금 전설』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미
『황금 전설』의 내용은 지적 성장을 시켜주고 에피소드 글 그 자체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성직자, 예술가, 작가들의 예술적 뮤즈가 되기도 한 『황금 전설』은 악에 타협하지 않는 성인들의 거룩함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면 『황금 전설』은 중세 미술, 르네상스 시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자료로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성인에 대한 일대기를 다루고 있어 그림과 문학 작품 속 등장인물, 배경, 소품 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야코부스가 기록한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성인들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 속에서 고통을 겪고 세상과의 부조화를 겪었다. 『황금 전설』 속 인물은 자신의 괴로움과 악에 맞서 싸운 성인들이다. 성인들의 삶은 도덕적 교훈과 우리들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통찰력을 주고 있다. 텍스트를 통해 초기와 중세 문화의 풍부한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돕고 나아가서 중세와 관련하여 쉽게 이해하도록 한다.
역자의 글 중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의 라틴어 제목인 《레젠다 아우레아》(Legenda Aurea)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여 《황금 전설》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래 제목은 《레젠다 상토룸》(Legenda sanctorum, 번역하면 ‘성인들의 전기’)이었고, 널리 읽히면서 15세기에 ‘아우레아’(Aurea)이라는 단어가 붙여졌다. ‘레젠다’(Legenda)라는 라틴어는 단지 ‘전설’(傳說)이라는 의미만 있지 않다. ‘모으다, 선발하다, 읽다, 낭독하다’ 뜻을 지닌 동사 레제레(legere)에서 유래된 ‘레젠다’는 ‘읽을거리, 전기, 성인전, 종교 전설’이라는 의미가 있다. ‘아우레아’는 ‘금처럼 아름다운, 찬란한’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의 제목은 우리 나라 말로 “아름다운 성인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황금 전설》이 발간되자 성직자들은 강론을 위해 이 책에 많이 의지하였고, 신자들은 자신들의 신심 함양을 위해 이 책을 사용하였고, 미술가들과 작가들은 작업에 참고하기 위해 이 책을 끝없이 뒤졌다. 그런 탓에 이 책은 신화와 전설만이 아니라 중세의 민속학, 역사, 문학, 예술, 그리고 종교 등 각종 분야를 연구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고 종교사만이 아니라 미술사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에 의해 시작된 교회 분열 이후 신비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며 배척받았다. 하지만 이 책은 나름대로의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 그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하여 유명한 교부들의 말과 책들을 인용한다. 하긴 전설은 역사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증거물이 남아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탓에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역사에서 전설화되고,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기념물이나 증거물이 있 어, 화자(話者)와 청자(聽者)가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는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해 이 책은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그 내용이 의심스러운 경우 야코부스가 본문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 이유로 미국의 시인 롱펠로(Henry Wadsworth Longfellow, 1807~1882)의 《황금 전설》(1851)은 그 제목과 자료 대부분을 이 책에서 차용하였다.
이 책의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번역을 하게 되었다. 물론 이미 한글로 번역된 책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느 것을 모본(母本)으로 하였는지 밝히지 않아 모르겠지만, 번역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오자나 탈역이 많았다. 더구나 천주교회의 용어, 전례, 역사, 신심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릇된 번역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더더욱 이 책을 번역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번 번역은 최근에 단권으로 출판된 영어본(William Granger Ryan(trans. by), Eamon Duffy(intro. by), Princeton Univ. Press, 2012)을 번역본(모본)으로 사용하였다. 하지만 이 영어본마저 그레세의 라틴어본을 오역한 부분이 있어서 수정하였다. 또 문장의 괄호 안에는 그 용어를 뜻하는 라틴어와 한문을 넣어 오해의 여지를 줄이려고 하였다. 특히 성경 구절의 표시는 라틴어본이나 영어본 모두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아 역주로 하기에는 복잡할 듯하여 본문 안에서만 바로잡았다. 그럼에도 번역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