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은 왜 관뒀어?”
“오랫동안 같이 일하던 감독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일을 못 하는구나.”
“네. 제가 하고 싶다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안즉 젊으니까 뭐든지 허면 되지 뭐. 난 이제 하고 싶은 일이 아무것도
없어. 늙으니까 그거 하나는 좋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이 하나도 없으세요? 그런 사람이 세상에 있어요?”
“나는 오늘 허고 싶은 일만 허고서 살어. 대신 애써서 해.”
“그러면, 오늘 하고 싶었던 일은 콩나물 다듬는 거였겠네요?”
영화 속 찬실이도 누군가의 죽음이 부른 치명적인 삶의 변화와 전환 앞에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 몸부림친다. 그렇게 상실감과 무기력에 겨워하던 찬실은 글을 알지 못하는(혹은 막 깨우치고 있는) 할머니로부터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얻는다.
10년 전 조원제를 떠나보낸 후 누군가는 하던 일을 멈춰야 했고, 또 누군가는 하던 일을 그만두었으며, 누군가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했다. 그가 떠난 지 10년 지난 지금도 그의 죽음이 남긴 여진과 상처, 그의 삶에 대한 잔향과 그리움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인간 ‘조원제’를 아는 이들의 삶에 조용하지만 묵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한 인간으로, 목회자로서 괄목할만한 학문적 업적이나 목회적 성과를 이루진 못했다. 아울러 그가 남긴 인생의 흔적들은 역사에 기록으로 남길 획기적 혹은 혁명적 그 무엇은 아닐지 모른다. 다만 “인간 조원제”를 곁에서 꽤 오랜 시간 함께 만났고, 그의 육성과 삶의 모습들을 목격했던 친구로서, 나는 ‘조원제’라는 20세기의 끝자락과 21세기 첫 10년을 어찌 보면 평범하게 살아낸 한 꿈 많은 청년 신학생, 목회자의 허망한 죽음을, 그가 못다 이룬 꿈과 이야기들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가 하루하루 자신에게 주어진 하찮아 보이는 일들 하나하나에도 정성을 다했던 한 사람이었다는 기억을 그저 허망하게 소멸되도록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도 여전히 아프고, 그립고, 다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리라.
이 책은 불확실하고 혼탁했던 과도기 한반도의 도상에서 시대를 함께 아파하고 고뇌했던 한 30대 초반의 꿈 많았던 신학생, 새내기 목사의 청춘과 죽음에 대한 비망록이다. 그의 담백하고 소박한 인생과 신앙의 기록들은 이 시대 청년 그리스도인의 일상과 사유를 들여다보는 미시사적 통로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런 목적에서 그의 평범한 일상들, 풋풋한 수상과 고민들, 소소한 농담과 너스레까지도 하나하나 소중하게 수집했다. 특별히 그가 남긴 다수의 설교문 중 일부도 수록했다. 조원제 목사의 설교문들을 꼼꼼히 읽고 그의 설교에 깃든 신학적, 목회적 의미들을 정리해 준 김진혁 교수께 깊이 감사드린다. 아울러 그를 떠나보낸 지 10년이 되었음에도 그리움에 가슴이 아려오는 조원제의 가족들, 지인들, 친구들, 동료들의 추억과 추모의 글들도 모았다.
이 책에 수록된 그에 대한 흩어진 기억의 편린들이 모여 우리가 미처 몰랐던 조원제의 체온과 육성이 되살아나, 새로운 떨림 속에 그와 마주하는 소중한 만남이 가능하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