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으면 참말을 해야 한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틈에서, 이 병에 대한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Z-바이러스의 원인은 바로 긴 코에서 비롯된 심각한 위생 문제였으며, 예방법은 오직 마스크를 쓰는 것뿐이랍니다. 그런데 이 마스크를 쓰기 위해선, 코코코 나라 사람들의 코는 다시 짧아져야만 했습니다. 코가 짧아지는 방법은? 바로 참말을 하는 겁니다. 아니, 거짓말을 밥 먹듯 해왔는데 이제는 손바닥 뒤집듯 참말만 해야 한다고? 코코코 나라 사람들에겐 지상 최대의 위기가 닥쳤습니다. 모두가 지고의 가치로 알았던 그 무언가가 도리어 생명을 위협하는 원인이 되었고 그로 인해 모두의 생활양식과 가치 체계가 기반을 두고 있던 관념을 통째로 뒤바꾸어야만 하게 된 겁니다. 사실 어찌 보면 이 문제는 너무도 단순한 문제입니다. 어찌 됐든 이제는 살기 위해서 참말을 해야 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참말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코코코 나라 사람들에겐 이 문제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코코코 나라 사람들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마스크를 쓰려니 거짓말을 하면 안 됐고 마스크를 거부하려니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었습니다.’_본문 31쪽
생명보다 명예를!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코나네 가족’의 수장 ‘코장 할아버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평생 동안 거짓말을 잘하는 것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알아 온 코장 할아버지는, ‘바른말을 해야만 살 수 있는’ 이 병에 걸리고도 거짓말을 멈추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할아버지에게는 ‘명예’가 생명보다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과 죽음이 걸려 있을 때조차도 인간은 평생의 습관을, 몸과 마음에 자기 피보다 더 짙게 배인 어떤 관념을 떨쳐내기 어렵다는 것이죠.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저버리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선택해 버리게 만드는 맹목적인 믿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또 그 믿음을 붙잡고 있는 인간의 관성이란 얼마나 끊기 어려운 것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끝까지 거짓말만 하다 세상을 떠난 코장 할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두 손을 모으고 숙고하게 됩니다. 과연 내가 스스로의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 가치에 대한 나의 믿음은, ‘진실로’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동안 어떻게 지켜낸 명예인데 목숨을 더 연명하자고 이 나이에 바른말을 할 수는 없어. 그냥 죽을 테야. 암! 그렇고 말고.”’_본문 32쪽
나의 믿음이
‘나’의 믿음일까
코나네 가족들에게도 코장 할아버지의 죽음은 같은 질문을 남겨 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코장 할아버지의 가장 큰 유산은 바로 그 질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코장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거짓말을 최고의 명예로 알아 왔고 그동안 흔들림 없이 그 믿음을 지키고 몸으로 수행해 온 아빠 코수와 아들 코나는, Z-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혼돈 속에서도 쉬이 흔들 수 없었던 뿌리를 건드리게 되었으니까요. 그 뿌리에는 바로 이런 질문이 놓여 있습니다. “네가 믿는 게, 진짜 ‘네’가 믿는 거냐?”
코수는 그 질문을 앞에 두고 처음부터 늘 거짓말하기를 어려워해 거짓말투성이인 이 사회의 ‘부적응자’였던 아내 코정과 코덜의 눈동자 속을 바라봅니다. 흔들림 없이 투명한 그 눈동자 안에서 코수는 어떤 기억을 떠올립니다. 바로 어려서 처음 거짓말을 배웠던 바로 그 순간, 가슴속에 느껴졌던 ‘묵직함’의 감각입니다. 그 묵직함은 거짓말이 너무도 당연했던 사회 분위기 속에, 코수가 스스로 오랫동안 마비시키고 망각시켜 온 신호입니다.
‘그러나 코덜의 말을 따라 찬찬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니, 숱한 거짓말에 짓눌려 마비되었던 감각이 조금씩 살아나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습니다.’_본문 52쪽
통각, ‘살아 있음’을 향한 붉은 신호
우리 마음의 감각을 대상에 비유할 수 있다면 바른 일, 좋은 일을 할 때는 마치 새의 날갯짓처럼 가볍습니다. 반면 나쁜 일, 무언가 잘못된 일을 할 때는 돌처럼 무거워지지요. 이 감각은 물론 사회적으로 배워서 알게 되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타고나는, 본능적으로 느끼는 감각입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거짓’의 가치 체계가, 코수를 비롯한 코코코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 ‘통각’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감각 중의 하나는, 놀랍게도 바로 이 ‘통각’입니다. 뜨거운 것에 데였을 때 머리보다 먼저 열을 느끼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손의 감각이 없다면 우리는 타는 줄도 모른 채 타 버릴 것이고, 염증이 생긴 자리에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아 모른 채 넘어가 버린다면 상처는 곪고 곪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코수가 처음 거짓말을 할 때 느꼈던 통각은, 바로 생명과 생존을 위한 신호였습니다. 당장 무언가를 덮어놓고 모른 체하다가 우리의 진실이 다 타 버리지 않도록, 마음의 곪은 자리가 깊고 깊어져 어느 한쪽을 떼어 버려야 할 만큼 죽은 살이 되지 않도록, 우리에게 돌이킬 수 ‘있는’ 지점을 알려주는 신호였던 것이죠.
‘잊고 있던 거짓말들의 무게, 거짓말이 하나둘 쌓일 때마다 주문을 외듯 보이지 않는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던 그 무게가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_본문 54쪽
당신을 위해 나아가는 다른 길
이제 코수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잊었던 통각을 다시 살려냈으니, 그 통각을 치유와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발판으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다시 익숙한 관성대로 그 감각을 무시해 버리기로 할 것인지 말이지요. 그런데 코수에게는 코장과는 조금 다른 기회가 찾아옵니다. 바로 그 선택이, ‘나만의 편리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명’까지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꿈을 통해 찾아온 것이죠. 그 꿈은 어쩌면, 가족들의 도움으로 코수의 무의식 속에 쌓여 온 진실에 대한 갈망이 스스로에게 준 기회입니다. 이렇게 거짓말만 일삼았던 코수의 되살아난 통각은, 삶과 죽음을 걸고 정체성을 바꾸어야 하는 대혼란 속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뚜렷한 진실 하나를 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나의 진실은 나 자신뿐 아니라 당신도 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코수는, ‘당신’을 위해, 가족을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내리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독자의 상상에 여지를 맡겨 둔 채 이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눈앞에는 가족들이 있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든 코수는 코정과 코나, 코덜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었습니다.’_본문 54쪽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드는 진실
아무리 작아 보이는 거짓이라도, 하나둘 쌓이기 시작한 거짓들은 우리 스스로를 좀먹을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 더 나아가 나를 둘러싼 커다란 세계에도 그림자를 드리울 만큼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실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이유, 코수가 코장 할아버지와는 달리 ‘거짓의 바윗덩어리’를 내던지고 ‘진실의 빛’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만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쉽게 바뀌지 못하지만, 당신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대가를 감수하고서라도 바뀔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목숨보다 더 믿는 명예를 위해 죽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죽어버릴 수 있지만, 나의 ‘당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살아야 하고, 당신이 살기 위해 내가 변화해야 한다면, 나는 바뀌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당신, 그리고 가족은 내 명예보다, 믿음보다, 내 생명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나’는 그동안 바라보지 못했던 ‘진실’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수의 진실, 사회에서 만들어진 그릇된 가치체계, 그에 따르는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선’을 위한 통각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며, 그 감각이야말로 곧 당신을, 그리하여 나를 ‘진실로’ 살아 있고 살아가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 말이지요.
‘그리고 코수는 꿈속에서 닿지 못한 가족들의 손을 꼭 붙잡고 껴안았습니다. 코정과 코덜은 오래도록 자신들을 옭아매었던 두려움이 이제는 나라 전체를 삼키고 있는 모습을 허탈하게 지켜보았습니다.’_본문 62쪽
진실과 거짓의 기로에 선 ‘나’의 질문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처음부터 누군가는 눈치챘을지도 모릅니다. ‘거짓말을 해야 잘 사는 나라’라는 이 이야기의 설정은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와 과장을 더한, 그러나 아주 틀린 얘기는 아닌, 어쩌면 이보다 더 판타지적으로 느껴질 만큼 비현실적인 우리 사회의 일면에 대한 신랄한 풍자라는 것을요. 『코코코 나라』는 ‘거짓말’이라는 주제를 오늘날의 우리가 근 몇 년간 맨몸으로 통과해 온 역사적 사건을 환기시키는 배경과 접합시켜 극단적인 상상으로 풀어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거짓과 진실을 흑백 논리로 가르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실은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가 어떤 것을 믿고 있는지, 이 사회는 어떤 것을 믿고 있는지를 되돌아보는 ‘질문’이야말로 함께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이 이야기는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인간은 정말이지 쉽게 바뀌지 않지만, ‘당신’을 위해서는 바뀔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더 사람답게, 삶답게 만들어 주리라는 사실도요. 그리하여 우리는 이 책의 책장을 덮을 때쯤, ‘당신’, 더 나아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가 지키고 싶은 가슴속 작은 진실 하나는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동안 거짓으로 만들어낸 그 마음 말고 진짜 마음을 찾아보세요.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_본문 45쪽
진실한 두 손, 꼭 붙잡기 위한 오늘의 선택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 사회 속 수많은 빛나는 훈장들은 생각보다 많이, 진실보다 거짓에 기반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우리는 차라리 거짓의 훈장보다 내 곁의 당신 손을 꼭 붙잡기 위한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는 것. 어쩌면 꼭 붙잡은 그 두 손의 온기만이 우리 살아가는 세계에서 유일한, 투명한, 거짓 없는 진실일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유일한 진실은 절망이기보다 차라리 구원이라는 것. 극단적일 만큼 절박한 상황으로 풀어낸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까닭은 바로 그 ‘구원’의 온기를, 우리도 언젠가 느껴 보았거나, 지금 이 순간도 가장 절박하게 갈구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다. “거짓말은 나쁜 거야. 하지만 무엇이 거짓이고 참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면, 그건 가장 나쁜 거란다. 너 자신에게 거짓이 무엇이고 참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내면의 주체적인 감각을 기르고 느끼기를 멈추지 말아라. 바로 그 감각이, 네가 세상에게, 그리고 사랑에 닿을 수 있는 가장 투명하고 온전한 길을 열어줄 거란다.”
‘누구도 자신조차 속이지 못할 진실 하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모든 것이 꺼져가는 이 순간에도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는 온기만큼은 진짜라는 것이었습니다.’_본문 64쪽
차가운, 그러나 끝내 다사로운 이야기의 몸
아비규환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김율희 작가의 이 이야기가 더욱 특별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미안 작가의 그림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상상 속 『코코코 나라』를 불과 물처럼 대비되는 선명한 빛과 얼굴로 시각화해낸 미안 작가는, 이전에도 역설적인 희망의 저력을 보여 준 바 있습니다. 미안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창작그림책 『다른 사람들』과 『거짓말』 안에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뼛속까지 차갑게 파고드는 시선이, 그럼으로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누군가의 식은 가슴에 끝내 피를 돌게 만드는 힘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끌어안는 이 두 작가의 공통된 관점과 태도가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만나,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진실된 얼굴을 밝혀 주었습니다. 이 차갑도록 다사로운 이야기의 몸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이라는 겨울 한가운데서도 더 나은 내일의 봄을 믿으며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코수는 마침내 결심한 듯 코나와 코정과 코덜의 손을 더 세게 꽉 잡았습니다. 그리고 거짓의 큰 바윗덩어리를 호수 속에 내던지고 건너편 기슭을 향해 물 위로 힘차게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_본문 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