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힘차게, 마음대로!
자유와 모험이 가득한 야생 정원의 초대
초록빛 데칼코마니 정원
정교하게 손질된 진녹색 나무 그림이 인상적인 길쭉한 책 표지를 열면 마치 커다란 공장에서 찍어낸 듯 놀랍도록 완벽히 규격화된 초록빛 정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원의 주인인 꼼꼼 씨 가족은 자신들의 정원이 동네의 푸른 숨통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갖고 온갖 정성을 다해 가꾸지요. 수많은 나무, 꽃들이 색깔과 크기에 맞춰 1센티미터의 오차도 없이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고 울타리는 장난감 블록처럼 열과 각을 맞춰 반듯반듯합니다.
그러다 매 순간 정원의 모든 걸 통제하고, 무언가 삐죽 돋아나려 하면 바로 싹둑 잘라내던 정원사 꽃돌 씨가 홀연히 정원을 떠나자, 자유로워진 풀과 꽃들은 야생을 깨우며 환상적인 일탈을 시작합니다.
물론 꼼꼼 씨 가족은 온 힘을 다해 막아 보지만 힘찬 생명력 앞엔 속수무책이었고 모든 걸 포기하려는 그때 제멋대로 무성하게 자란 풀과 꽃들 안에서 가족은 불현듯 깨닫습니다. 그들이 진정 원했던 자연이,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를요.
자유롭게, 나답게 꽃 피우기
‘자연’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입니다. 풀과 꽃들도 자연이기에 본성에 따라 자라나는데 꼼꼼 씨 부부는 자신들 기준에 맞춰 매일 자르고 뽑고 깎았습니다. 그래야 더 아름답게 자란다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식물들은 계획적인 손길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게 되자 오히려 스스로 더 크게 자라고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꼼꼼 씨의 딸 초록이도 어른들이 정원을 통제하며 가꿀 때는 생기 없이 주변에 머물지만, 야생이 된 정원 안에서는 가장 먼저 자연과 소통하며 밝고 유쾌한 모습으로 화면을 누빕니다. 이를 보며 우리는 어린이도 자연과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어른의 기준으로 아이를 이해하고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 자체로 사랑해야 아이 스스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다운 멋진 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것도 함께 말이지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스스로 ‘자기’답게 성장할 수 있도록 놓아 주는 것이 처음엔 어려워 보이지만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
마리 도를레앙이 전하는 즐거움과 기쁨의 바다에 빠지는 법
작가는 단순하지만 상반된 색채와 형태들로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장면들을 더욱 과감하게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섬세한 묘사도 잊지 않아 독자의 공감을 물론 메시지도 확실하게 전합니다.
절제된 집의 전경, 검정과 하양의 단순한 체크무늬 옷, 멀찍이 떨어져 있는 무표정한 가족들의 모습 등 초반엔 세련된 풍자가 깃든 가라앉은 분위기로 이끌어가다, 정원사가 시원스럽게 앞치마를 벗어던지는 장면부터 생명력 가득한 과감한 묘사와 색채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데, 이 흐름이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럽습니다. 이에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찬란한 야생 정원으로 들어가 주인공들과 함께 유쾌한 모험을 즐기게 됩니다. 야생 가득한 즐거움과 기쁨의 바닷속 말이지요.
아, 눈치채셨나요? 즐거움과 기쁨의 바다에서 행복한 것은 정원의 생명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꼼꼼 씨 가족이었습니다. 처음과 달리 웃음 가득한 얼굴이나 가족이 정답게 함께 있는 장면들만 봐도 알 수 있지요. 놓아주기를 했을 때, 마음이 오히려 평화스러워지고 그럼으로써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정말 소중한 것들을 돌아볼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각자가, 모두가 진정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이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놓아주기’의 뜻이 아닐까 합니다.
늘 섬세하고 창의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그리는 마리 도를레앙의 새로운 그림책〈 자라고 자라서〉, 풀려난 자연의 생명력에 감탄하고 놓아주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