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태화산의 마곡사는 2018년 6월,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었다. 통도사, 부석사, 법주사, 대흥사, 봉정사, 선암사 등 모두 7개의 사찰이 이때 함께 세계 유산이 되었다. 이들 사찰은 모두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한국의 산지 가람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완정성과 진정성’이라는 세계유산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되었다.
마곡사는 9세기 후반에 선종사원으로 창건되었다.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원의 대웅보전과 대광보전의 석가신앙 및 화엄신앙 영역과 마곡천 건너 북원에 위치한 영산전의 선 수행 공간으로 구성되어 유구한 전통과 한국 불교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특성을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불교문화유산과 특히 금호약효(1846~1928)를 필두로 한 화승과 불화가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화승(金魚)을 양성하고 화맥을 오늘날까지 계승해 오면서, 불화소를 유지하고 있는 점도 특별한 뒷받침이 되었다. 거기에 더하여 이들 불교문화유산의 가치와 마곡사의 역사성 등을 구명하는 학술대회를 2012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개최함으로써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 최선을 다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과정들이다.
이로써 마곡사는 ‘전 인류의 풍부한 영감과 지성의 원천’으로서, 인류 발전의 중요한 유산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마곡사를 비롯한 한국의 산지 승원은 박제화 된 유물로서 보존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가람으로써 끊임없이 환경 및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며 보존과 전승의 양 측면을 겸비하고 겸전해 나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기도 하다. 사찰은 전통적으로 다른 종교 건축물에 비하여 특별하게 많은 종교 문화의 요소와 미술적 요소가 많은 공간이다. 그중에서도 독특한 불교미술의 정화라고 할 단청과 벽화, 탱화 등의 불교 미술은 오랜 시간 화승들을 중심으로 계승해 온 전통의 보고이다. 불화는 특히 한 사람의 개인적인 창작불이라기보다 수화승의 지도와 감독 하에 엄격한 통제를 받으며 집단적인 작업을 통해 초월의 세계를 표현해 낸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한다고 할 수 있다.
마곡사는 근대 불화 제작의 중심지로 불모비림(佛母碑林), 즉 화승들의 비석군이 조성되어 있고, 그곳을 중심한 다례(茶禮)가 행해지는 등 한국 불교문화의 중추적인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곡사는 금호약효를 스승으로 하여 계계승승으로 이어지는 제자들까지의 화맥 전승 계보를 간직하고 있어서, 다른 불화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전승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화소’로 불리는 근대기 불화의 제작소로서 역할을 다하였고, 앞으로도 현대 화승들의 교육처로서 금어(金魚, 畵僧)들을 배출하게 될 양성소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화승들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제작 활동에 임하는 것이 아니다. 불/보살이나 신중, 칠성, 산신, 독성 등 신앙의 대상을 형상화하는 성스러운 일을 담당한 것이다. 오늘날 ‘문화’의 의미가 더욱 더 새롭게 조명되는 시대에, 불교가 대중 교화의 의의와 가치를 불화를 통해 펼쳐 나가는 데 있어서, 화승들의 역할은 더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 책은 역대 화승들이 자기 자신의 기록을 특별히 남기지 않는 불교계의 전통 아닌 전통으로 말미암아 극히 희소한 자료 현황 가운데서도 마곡사 화승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남긴 금용일섭(金蓉日燮, 1900-1975)의 〈연보(年譜)〉를 근간으로 하고, 편린으로 남은 역대 화승들의 기록, 그리고 전국에 산재한 마곡사 출신 화승들의 작품 목록 등을 통해 재구성해 나간 마곡사 화승의 역사이자, 마곡사 소재 문화유산들의 역사 기록이다. 문화유적은 그 자체로도 가치와 의미가 있으나, 그 이력과 내력,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스토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더욱 가치가 배가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마곡사의 가치를 일층 드높이고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