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바랐던 채규철의 삶과 꿈, 철학을 담은 이야기
채규철이라는 이름보다 ‘이티 할아버지’, ‘한국의 모세’로 더 많이 알려진
교육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채규철의 삶을 담은 어린이 인물 책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채규철
채규철은 일제강점기 시기인 1937년에 태어났습니다. 채규철의 부모님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학생 시절부터 농촌봉사활동과 교육운동을 하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채규철은 농촌 봉사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중학교 때는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친구에게, 농부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처럼 농촌 운동을 하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대학도 농촌봉사활동과 경제, 교육환경을 살리는 일을 하고자 수의학을 전공하였고, 대학생 때부터 충청남도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뒤이어 우리나라 처음으로 대안학교 ‘두밀리자연학교’를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운동과 여러 사회운동에 온 삶을 바칩니다. 이렇게 채규철이 사회운동과 교육에 힘쓴 것은 모두가 함께 웃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기 때문입니다.
채규철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을 겪었습니다. 6·25전쟁 때는 흥남부두에서 미군의 배를 타고 가족이 거제도로 피난을 왔습니다. 농촌봉사활동과 교육에 힘쓴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런 어려움과 힘든 시기를 직접 겪었기에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는지도 모릅니다.
채규철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유학을 가, 수의학을 전공하고, 대학생 때부터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자신이 배운 것을 농촌 사람들과 나누어 농촌 경제를 살리고자 했으며, 교육에도 더욱 힘썼습니다. 그리고 덴마크로 유학을 갈 기회를 얻어, 덴마크의 농업 근대화와 교육 그리고 의료보험제도에 대해서도 공부를 합니다. 덴마크에서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은 채규철 평생의 교훈으로 남고, 더 적극적으로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에 매진하는 계기가 됩니다. 장기려 박사와 함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의료보험조합 운동을 펼치고, 이 운동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되는 촉매가 되기도 합니다. 1986년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가평에 어린이 대안학교 ‘두밀리자연학교’를 세웁니다. 이외에도 간질 환자를 돕는 장미회, 한센병 환자를 돕는 소록도 봉사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하며 많은 사회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때 집에 어린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인 어린이도서관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런 활동은 1968년 10월 교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일그러진 얼굴과 한쪽 눈을 잃은 몸으로 해 왔으며, 2006년 12월 13일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티 할아버지 채규철』에는 채규철의 삶과 철학을 담은 이상권 그림작가의 잔잔한 그림과 박선욱 작가의 힘찬 글이 누구보다 아이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 이티 할아버지 채규철의 삶과 이루고자 했던 꿈을 전하고 있습니다. 본문 뒤에 수록한 연보와 사진은 채규철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어 얼굴이 흉측한 모습이었지만,
그 누구보다 아름다움 삶을 보여주고 간 채규철 이야기
채규철은 ‘채규철’이라는 이름보다 ‘이티(ET) 할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었습니다. ‘이티 할아버지’는 ‘이미 타 버린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채규철은 1968년 10월 사고가 나기 전 1967년 덴마크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장기려 박사와 함께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창립하고, 의료보험조합 운동과 농촌봉사활동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부산에서 양계장 견학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자동차 사고로 온몸에 화상을 입고 까맣게 타 버리고 맙니다. 채규철은 화상으로 수술을 30여 차례를 하였고, 고통스럽고 힘든 투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졌고, 타서 없어진 눈썹 자리에 머리카락을 심었고, 살갗으로 눈꺼풀과 입술을 만들었으며, 오른쪽 눈에는 의안을 넣었습니다. 채규철은 주변의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살아났지만 흉측한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하지만, 채규철은 몸이 장애와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고, 사람들이 무시해도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신념으로 멸시와 시련을 이겨 내고, 사고가 나기 전보다 더 열심히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에 전념하였습니다. 스스로 품었던 다 함께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라가 의료보험제도를 실시하기 전까지 청십자 의료보험조합 운동에 헌신하였으며, 간질 환자를 돕는 장미회, 한센병 환자를 돕는 소록도 봉사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를 창립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자신의 장애를 극복한 삶에 대한 교육과 강연도 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전국 어디든 달려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집을 개방해 만든 어린이도서관과 경기도 가평에 세운 두밀리자연학교을 만들고 운영하면서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고, 느끼고 체험하고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 깨우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나눠주고자 힘썼습니다.
2006년 12월 13일, 채규철은 70세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6·25전쟁 그리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삶의 여러 고비를 뛰어넘어 일생을 농촌과 사회운동과 교육운동에 몸을 바친 채규철의 삶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채규철을 기억하고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강한 정신으로 힘든 역경을 이기고 품었던 꿈을 이루고자 했던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스로도 가누기 힘든 몸으로 오히려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베풀며 행복해한 채규철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채규철의 삶과 철학은 우리에게 인생의 참 의미와 희망, 용기, 도전정신 같은 수많은 미덕을 묵직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티 할아버지 채규철』은 채규철의 삶과 꿈, 철학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이 소중한 삶이 어떤 모습이 될지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달렸다는 것과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작가의 말
이 책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온몸이 불에 탄 채규철 선생님의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순간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일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끔찍한 화상을 입고 도깨비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살아가야 했던 비참한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행을 딛고 끝끝내 오뚝이처럼 일어선 찬란한 승리의 삶이기도 했습니다.
채규철 선생님의 생애를 따라가는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의 의지가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뚜렷이 알게 됩니다.
- 박선욱(작가의 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