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에의 열망을 업고 권력을 거스른 의회에 대한 쿠데타!
국회프락치사건은 1948년 5·10 총선에서 정당하게 당선된 ‘소장파’ 국회의원 15명을 이승만 정권이 ‘남로당 프락치’라는 명목으로 마구잡이로 구속하고 가혹한 고문을 자행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신생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갈림길이 된 중대한 정치적·역사적 사건이다. 저자는 2008년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으로 1949~1950년의 국회프락치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프락치’ 의원들의 후손들이 남긴 저작과 증언을 통해 이 사건이 ‘프락치’ 의원의 몇몇 가족을 넘어 민족의 비극임을 밝혔다. 또한 이 사건으로 신생 대한민국이 민주주의와 독재정치의 갈림길에서 후자의 나락으로 추락했음을 증언했다.
제헌국회 소장파 의원들을 ‘남로당 프락치’로 만들기 위한 잘 짜인 연극!
제헌국회 안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대변한 소장파는 주요 국정운영에서 이승만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이승만 정권은 무시하지 못할 반대세력으로 등장한 소장파를 제압할 뾰족한 수단이 없던 터에 어떻게든 이들을 제거하는 데 목을 맸고, ‘남로당 프락치’는 바로 이러한 필요를 부조한 조작 언어였다.
1949년 4월 소장파의 리더 격인 이문원 의원의 체포와 함께 시작된 국회프락치사건을 통해 이승만 정권은 마음에 안 드는 국회의원들을 마치 순서를 정해 굴비를 엮듯 시차를 두고 구속한다.
이 책은 국회프락치사건이 총기획 이승만, ‘악마적 각본’ 김준연 의원과 그의 ‘비서’ 김지웅, 연출 김태선, 얼굴마담 오제도가 꾸민 한 편의 음모극이라고 단언한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자유인이 될 수 없었을 이들의 비극!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뒤,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던 ‘프락치’ 의원들은 9·28 수복 전에 북행길을 떠난다. 그것이 납북이든 월북이든 간에, 이는 스스로가 남로당 프락치임을 고백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들은 이로 인해 ‘빨갱이’가 될 뿐만 아니라 후손들도 옭아매는 행위임을 예상했을 텐데도 왜 북행길을 떠나야 했을까? 또 그들은 북한에서 어떤 삶을 살았을까? 저자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자유인으로 숨 쉴 수 없었을 그들의 행적을 추적한다.
미완의 정치재판, 국회프락치사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다!
‘프락치’라는 용어는 국회프락치사건 이래 ‘빨갱이’라는 말과 함께 한국 사회로부터 저주받은 언어로 각인되었다. 중세의 사제가 만들어낸 ‘마녀’처럼 화형에 처해지고 버림받은 존재로 사회로부터 추방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프락치와 빨갱이라는 덫에 걸린 이는 더는 사람이 아닌 뿔 달린 도깨비로 치부되어, 아무리 가혹한 폭력을 당해도 사회적 공론은 이의를 달지 않는 행태에 익숙해 있었다.
이 책은 ‘프락치’ 피고인들이 수사기관에 고문당한 실상이 여실히 드러나고 그 재판마저 엉터리 재판임이 밝혀진다면 민주화된 대한민국은 국가폭력에 무참히 희생당한 가족과 후손에게 어떤 보상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또한 항소심이 계속 중일 때 터진 6·25 전쟁으로 국회프락치사건에 대한 검찰의 공소 자체가 멸실되었다고 해서 과연 민주화된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이 미완의 정치재판 사건을 덮어둔 채 그냥 방기해도 되는 것인지, 우리 사회를 향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