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거리에서 만나는 예술 작품들
이 책 1장은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가장 첫 번째 이유인, “항상 자신의 코끝을 보면서도 미처 인식하지 못”(5쪽)하는 것처럼 늘 그 근처를 지나다니면서도 놓치기 쉬운 파리의 예술품들을 소개하는 데 집중한다. 이에 저자는 파리에서 익숙하지만 의외인 장소로 우리를 데려간다. 가령 벽(〈예루살렘에 도착하는 누앙텔 후작〉)이나 타일 속(〈오 벨 뿔〉), 터널(프랑수아 데퀴르의 조각들)이나 공원(〈아이 러브 유〉) 등이 그곳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저자는 그것들을 익숙하게 여기기보다 다시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가령 파리식물원에 위치한 ‘도도 회전목마’는 저자가 애정을 갖고 풀어내는 작품 중 하나다. 이 회전목마는 “얼핏 보면 조명과 음향 효과가 평범한 데다 동물 형상의 목마들도 나무로 만들어진 그냥 구식 놀이기구”(39쪽)인 것만 같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동물들이 ‘멸종위기 동물들’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1992년에 제작되었음에도 1930년대 스타일로 설계된, 교육적인 목적과 예술적인 완성도를 고루 갖춘 작품인 셈이다. 아무래도 외부에 놓인 작품들 중에는 건축물이나 조각 등인 경우가 많다. 3장 ‘조각의 비밀’에서는 흉상, 분수, 기둥들, 기념상 등과 같은 작품에 집중해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주는데, 그것들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고 거대한 작품이 파리 곳곳을 채워나가고 있음을 깨달을 수밖에 없다.
파리의 거장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사람들
파리는 명불허전 예술의 도시다. 이는 로댕, 반고흐, 세잔, 피카소, 스타인 등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화가들이 파리를 근거지 삼아 그곳에서 생활하며 작품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파리 모습을 예술에 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은 미술관에 귀중히 전시될 만한 작품들을 남기기도 했지만 특별한 인연이나 계기를 통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에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프랑스의 ‘국보’로 칭해지는 ‘외젠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는 파리의 오래된 교회들이 그러하다(45쪽). 또한 ‘몽마르트’와 ‘몽파르나스’의 예술가들이 모두 존경하는 세잔의 경우는 파리와 남부 프로방스 사이에서 이사를 반복하며 파리에 자신의 자취를 남겼다. 가령 〈단지, 컵, 사과가 있는 정물〉, 〈파리의 지붕들〉(264쪽)이 당시를 담은 그림이다.
지금이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작품을 남겼지만 당시 화가들은 외롭고 힘겹게 작품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런 순간에도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림을 그리는 주변 동료들부터, 미술용품들을 값싸게 내어주던 상점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음식을 앞에 두고 그림 이야기를 실컷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한 카페들이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공간과 사람들까지 예술로 여기며 불러낸다. 가령 ‘예술가들의 아버지’라 불리던 줄리아 프랑수아 탕기(232쪽)나 “좋은 예술 작품은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데 달려 있다고 믿는 사람”(245쪽)으로 색채에 열정을 가지고 직접 물감 안료를 생산하며, 예술가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도 했던 귀스타브 세닐리에르(245쪽)가 그렇다. 몽파르나스에 문을 연 첫 번째 카페이자 최고의 카페라고도 불리는 ‘르 돔 카페’는 그곳에 모이는 예술가들의 스스로를 ‘도미에르들’이라고 칭하면서 함께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식사도 하면서 ‘공동체’를 꾸리기도 했다. 또한 이후 근처에 문을 연 카페들에게 선례가 되어주었다(110쪽).
파리에 대한 역사서이자 안내서
이 책은 각 글마다 예술품을 한 점씩 정해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형적인 아트북 구성을 취하지만 파리의 깊은 역사를 다룬 역사서이기도 하다. 파리가 겪어내야 했던 전쟁들을 비롯해 파리의 문화전성기였던 벨 에포크 시대에 대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각 예술품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 안에서 탄생했는지 함께 이해하는 일은 예술을 더 풍부하게 읽는 방법이기도 하다.
동시에 이 책은 여느 여행책 못지않은 파리 가이드북 역할도 한다. 가령 어느 계절에 몇 시까지 문을 열고 어떤 강연이나 행사가 열리는지, 그럴 때 이동 수단은 무엇이 편리할지 등과 같은 정보가 빼곡하다. 심지어 이 책 6장은 제목이 ‘지하철 타고’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하철 역사 혹은 지하철을 타며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으니, 날이 굳을 때 유용한 루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뉴욕 편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말미에 책에서 소개한 작품들로 동선을 짠 루트들을 덧붙였다. 뿐만 아니라 뉴욕 편에서 협업했던 일러스트레이터 마리아 크라신스키와도 다시 뭉쳤다. 공간과 작품의 특징을 시원하게 잡아내 밝은 색감을 더한 그의 일러스트 덕분에 책장을 넘기는 내내 즐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