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인권고전강독
〈자유의 인문적 사색〉을 내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법률가다. 꽤 오랜 세월 법학을 공부했고, 그 실무를 해 왔다. 그 기간 중 내 주요 관심사는 인권이었다. 인권침해를 받은 사람들을 옹호했고, 제도적 차원에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미력을 다했다. 2006년 학교에 온 이후론 연구자로 변신해 실무적 시각을 뛰어넘어 심도 있게 인권을 연구하고자 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고백하건대, 인권에 대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천학비재의 실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는 2016년부터 새로운 과목을 만들어 도전에 들어갔다.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새 교양과목은 인권의 핵심인 ‘자유’를 인권고전을 통해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인권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고전을 직접 읽으면서 저자가 말하는 인권, 그중에서도 자유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학부 학생들과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이런 강의로 그들을 지적으로 자극하고, 그것으로 인해 그들이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보람 있는 공부일까.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행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또는 행복은 사람마다 달리 느끼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말할 순 없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행복뿐이다. 나는 자유롭게 내 의지대로 인생을 선택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그것을 행복이라 믿는다.”
나는 인권의 핵심인 자유에 대해서도 이렇게 소박한 정도로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자유가 없는 삶이란 행복은커녕 죽음과 같을 것이라는 데에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했다고 하는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것이 아니면 죽음을’이라는 말을 나도 당당히 말할 수 있으리라.
살아오면서 나는 이런 소박한 자유도 인류가 향유했던 시절은 사실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시기에도 인간은 완벽히 자유롭게 선택하면서 살진 못했다. 이것은 적어도 인간이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고 살아온 이래 겪었던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그 꿈을 버리지 못했고 어느 시기에도 자유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이 지난한 투쟁의 역사를 알고 싶었다. 그런 투쟁 속에서 인류는 어떤 자유를 쟁취해 왔을까. 그것이 바로 인권에 관한 명저들을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다.
독자들의 이해를 위해 이 책 개요를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것이 내 강의 〈자유의 인문적 사색〉에서 학생들과 대화해보고 싶은 자유 혹은 인권의 내용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는 왜 인권고전을 읽었는가? 내가 그 고전을 통해 알아낸 것을 무엇이었을까?
근대인근대인권사상의 기초
서구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의 자유는 천 년 중세사회라고 불리는 ‘신의 시대’에서 장기간 유보되었다. 이 시대에 살았던 인간에게 ‘개인’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몸과 정신은 신의 부속품으로서 긴 시간 잠들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다가 르네상스르네상스를 맞이하면서 서구인들은 ‘개인’을 발견한다. 인간 본연의 이성과 본능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 존엄성을 인식한다. 바야흐로 인간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개인의 발견! 이것은 인류사에서 인권개념의 진정한 시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이란 존재는 인간의 자유를 전제로 하는 자아발견의 결과다. 서구인이 개인을 발견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와 사회, 나와 국가, 나와 종교의 관계를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적 인권개념은 이런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서구인들은 국가가 무엇인지 고민했는바, 이것은 개인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법론이었다. 17세기 이후 근대국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토마스 홉스, 존 로크존 로크, 장자크 루소 등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들의 사회계약론사회계약론은 국가개념의 설명방법이자 개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방법이기도 했다(이와 관련된 이 책의 인권고전: 토마스 홉스의 〈 리바이어던리바이어던〉, 존 로크존 로크의 〈 통치론통치론〉 및 장 자크 루소장 자크 루소의 〈 인간불평등기원론인간불평등기원론〉).
소극적 자유소극적 자유
근대국가에서 발전한 인권개념, 그 중에서도 자유개념은 소위 소극적(negative)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한 시민이 자유를 누리는 데에는 국가가 특별히 무슨 의지를 갖고 행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소극적인 자세로 그 자유를 훼방 놓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개인의 신체의 자유는 국가가 개인의 신체를 존중함으로써 보장되는 것이고-예를 들면, 국가가 길거리에서 이유 없이 개인의 신체를 체포해 구금하지 않으면 국가는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다- 종교의 자유는 국가가 종교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방해하지 않으면 보장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유를 ‘개인이 마음대로 그것을 누리는 것’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국가가 그것을 존중하고 제한을 자제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런 자유의 개념은 ‘국가권력이 한 개인의 자유에 간섭할 수 있는 유일한 정당성은 그 개인이 타인에게 것’이라는 존 스튜어트 밀존 스튜어트 밀의 〈 자유론자유론〉에 의해서 완성되었다(이와 관련된 이 책의 인권고전: 존 스튜어트 밀존 스튜어트 밀의 〈 자유론자유론〉, 존 베리존 베리의 〈 사상의 자유 사상의 자유의 역사사상의 자유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슈테판 츠바이크의 〈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러셀 커크러셀 커크의 〈 보수의 정신보수의 정신〉)
21세기 인권의 전환인권의 전환
하지만 자유란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그저 간섭을 자제하는 것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통상 가난한 사람,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유의 주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실질적으로 누리지 못한다. 배가 고픈 사람에게 사상·양심의 자유가 중요하겠는가, 호주머니가 텅텅 비어 오늘 내일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투표장에 나가 자신의 대표자를 뽑을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인간은 역량을 갖지 못하면 그의 자유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부각된다. 인간의 자유란 사실 인간의 역량 그 자체가 아닐까. 바야흐로 적극적(positive) 자유란 개념이 대두되고, 그 과정에서 시민적·정치적 자유(약칭 자유권자유권)를 넘어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약칭 사회권사회권)가 탄생했다. 사회권사회권은 21세기 각종 권리문서에 자리를 차지하는 권리가 되었지만 아쉽게도 그것은 자유권자유권에 비해 여전히 이류의 권리로 취급된다. 그것은 실질적인 권리가 아니라 국가의 노력의무이자 미래에 대한 프로그램프로그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21세기에, 이러한 이분론을 극복하지 않으면 인류는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새로운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이와 관련된 이 책의 인권고전: 샌드라 프리드먼의 〈 인권의 대전환인권의 대전환〉, 존 롤스존 롤스의 〈 정의론정의론〉).
전체주의전체주의와 근대이성근대이성 그리고 인권의 실체
21세기는 인류가 미증유의 역사를 경험한 세기였다. 두 번의 세계전쟁과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도처에서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되었다. 이 기간 중 적잖은 국가에서 전체주의전체주의를 강조하는 지도자들이 나타나 인간의 삶을 억압했다. 국가란 이름 하에, 민족이란 이름 하에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스탈린, 히틀러, 마오쩌둥, 김일성은 그 인권유린의 책임자였고, 한반도에도 70-80년대 그런 부류의 독재자들이 나타났다. 자유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의당 이 전체주의전체주의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체제 하에선 사람들의 자유는 어떻게 구속되었는지, 왜 사람들은 오랜 기간 자유를 갈망했음에도 그렇게 쉽게 독재자의 포로가 되었는지. 왜 사람들은 지도자의 그 불합리한 명령을 거부하지 못하는지, 나아가 근대 이후 국가체제 아래에서 자유의 본질은 무엇인지.... 이런 것을 생각하면 자유란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 시대의 구조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개인 혹은 집단적 심리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이와 관련된 이 책의 인권고전: 조지 오웰조지 오웰의 〈19841984〉, 에리히 프롬에리히 프롬의 〈 자유로부터의 도피자유로부터의 도피〉, 스탠리 밀그램스탠리 밀그램의 〈 권위에 대한 복종권위에 대한 복종〉, 미셸 푸코미셸 푸코의 〈 감시와 처벌감시와 처벌〉).
인권의 실천
그러나 인간의 자유에 대해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자유는 인간 그 자체의 문제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자유를 누리는 것은 제도적 영향을 받는 것이지만 역사를 뒤돌아보면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현실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그것을 희구해야 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이와 관련된 이 책의 인권고전: 루돌프 폰 예링의 〈 권리를 위한 투쟁권리를 위한 투쟁〉, 헨리 데이빗 소로우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 시민의 불복종시민의 불복종〉, 버트런드 러셀버트런드 러셀의 〈 자서전자서전〉, 필립 샌즈필립 샌즈의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인간과 동물의 공존
끝으로 한 가지 더 생각해 봐야 문제가 동물과 인간의 관계다. 수많은 반려동물들이 한 집에서 인간과 같이 살아가는 오늘날 동물은 인간에겐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한편에선 동물은 물건과 똑같이 취급되면서, 인간의 쾌락을 위한 수단이자 학대의 대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도 동물의 하나임이 분명하다고 할 때, 우리가 매일 같이 만나는 쾌고감수쾌고감수의 동물들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인권적 차원에서 동물을 본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이것을 위해 서구에서 논의되는 동물권이나 동물복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이와 관련된 이 책의 인권고전: 피터 싱어피터 싱어의 〈 동물해방동물해방〉).
이 책은 인권, 그 중에서도 자유를 인권고전을 통해 여러 각도에서 설명을 시도한 것이다. 각 고전에 대한 내 설명은 어떤 부분에선 금방 독자의 것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쉽겠지만, 또 다른 부분에선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의미를 잡기 어려울지 모른다. 만일 그런 경우가 있다면 그건 부족한 설명을 한 나의 책임이지만, 독자들을 위해 강독을 시도한 나로선, 이해가 잘 안된다고 바로 포기하진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누구도 여기에 있는 모든 내용을 단시간 내에 이해한 사람은 없다. 그러니 자신의 무지를 자책하지 말고,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고, 기회가 되는대로 강독대상으로 삼았던 책을 직접 찾아 읽어본다면, 언젠가는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날이 오리라고 믿는다. 옛사람들은 어려운 책도 백번을 읽으면 뜻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는가. 독서백편의자현! 이 말을 가슴에 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내는 데 힘이 되었던 분들에게 간단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우선 SNS 상의 많은 친구들에게 감사한다. 나는 이 글을 책으로 편집하기 전에 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려 SNS 친구들과 토론을 벌린 바 있다. 많은 분들이 참여해 집필을 격려했고, 글에 대해 의견을 주었다. 출판사 ‘삼원사’의 도움도 잊을 수 없다. 요즘같이 어려운 출판 현실에선 섹시(?)하지 않은 인문서적은 설 자리가 없다고 하는 데, 결코 그런 반열에 들어갈 수 없는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출판업을 단지 상업적 이익추구로만 보지 않는 정선균 대표의 관심에 힘입은 바 크다. 편집부의 김돈영 선생은 솜씨 있는 편집으로 책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2023년 7월
서울 행당동 한양대 연구실에서
저자 박찬운 이 서문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