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미술 선언문〉
Apollo 달 착륙에 즈음하여
─ 1969. 11. 제1회 개인전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과학의 비약적인 발달은 인간의 감각 기능을 획기적으로 확대시켰다.
이로 인해 우리는 우주의 실체를 체험한다.
상상과 추상에 의했던 우주의 개념을
이제는 현실로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과학은 새로운 자연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의 시점은 크게 변하였다.
과거의 풍경화가가 그리던 수평선의 개념은 완전히 달라졌다.
직선으로 횡단할 수만 없는 여러 지평선을 본다.
시점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 하겠다.
우리는 새로운 공간을 인식한다.
우리의 이미지는 확대되고 기교는 어느 때보다 다양하다.
우리는 벽에 부딪치는 게 아니라
새롭고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서 있는 것이다.
----------------------------------------------------
범접할 수 없는 자유, 하늘과 별을 바라보며 누리는 충만한 행복
지구상을 벗어나 누구보다 자유로워진 우주 풍경 속에서 그는 육신과 의식의 제약을 과감하게 벗어버린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천착하는 자기 존재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바라보는 작가의식, 나아가 세계관까지도 헤아리게 되는 우주 회화 앞에서 우리는 ‘우주에 미친 화가’라는 표현을 실감하며 자연스레 현실의 구속에서 놓여나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별을 한아름씩 안고 갔다. 벽면은 마치 밤하늘처럼 무수한 별로 가득했다. 화가는 밤하늘의 별을 캔버스에 듬뿍 담아 도시 한복판으로 가져온 것이다. 우주를 그리는 화가, 오경환의 별칭이다. 우주화가 혹은 별의 화가.
─ 윤범모(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세계를 이해하는 좌표, 촘촘한 그리드 위에 그린 은하와 별자리의 풍경
오경환은 50년 전 우주과학 초창기에 지구 밖에서 찍은 지구 사진을 보며 고전적인 풍경화 개념을 과감하게 전복시켰다. 당시 지구로 전송된 우주 사진은 오늘날의 고해상 영상이나 이미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한 수준이었음에도, 시대를 뒤흔든 과학기술의 충격과 함께 오경환의 세계는 우주로 확장되었고 풍경으로서의 자연 역시 인간의 시선 너머로 확대되었다. 밤하늘의 별은 더 이상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더불어 ‘우주의 산물, 우주의 자식’으로 동기화되었다. ‘나는 우주의 일부분이며 은하의 자손이다. 인간은 우주의 산물이며 별의 자식’이라는 오경환의 사유는 불교 철학과 만나 ‘나는 우주의 일부분이며, 우주와 우리는 분리될 수 없다’는 우주적 존재론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과학에서 촉발된 존재론은 결국 무한공간 우주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으로 화폭에 반영된다.
“나의 그림에는 좌우상하가 없다. 내 그림에는 구상 비구상이 없다, 우주가 그러하듯이.”
행성과 은하를 그린 풍경화이되, 그의 우주 풍경화는 직선적인 수평선과 원근 개념을 초월했다. 그리고 이렇게 초월적인 공간감과 더불어 구상과 추상의 구분마저 뛰어넘었다. 오경환의 풍경화에서 오브제는 특정한 형태에 구속되지 않은 근본적인 물질로서 존재하며, 결국은 단색조의 배경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한없이 깊고 무한한 ‘공간’으로 수렴된다.
결국 형상화하고자 했던 것은 우주적 공허다
이렇게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도 오경환은 현실의 무거운 그림자에서 발을 떼지 않았다. 1980년대 한국의 폭압적인 정치 상황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오경환은 가슴 한복판에 우주 회화에 대한 열망을 품은 채 한국 민중의 참단한 자화상을 그리며 일련의 추모작으로 사회적 발언을 대신했다. 평생을 교육 현장에서 보내면서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미술원장으로 국립 미술대학의 설립을 진행했고, 한동안 대장암으로 험난한 투병의 시간을 보내며 죽음의 문 앞에 서기도 했다. 우주는 그가 인지하기 전이나 후나 한결같이 공허하고 막막한 세계지만, 그가 기꺼이 몸 던져 평생에 걸쳐 탐색한 우주는 역설적으로 “치열함”이라는 말로 말로 설명되기도 한다. ‘공허’를 형상화했다는 오경환의 우주가 그토록 깊고 두터운 이유, 모두에게 공평한 순백의 캔버스가 작가의 붓질을 거치며 ‘세계’가 되고 ‘우주’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이 “치열함”이 곧 오경환이 그림으로 펼쳐보인 50년간의 궤적이다.
오경환이 가장 돋보이는 점은 일종의 치열함 같은 어떤 관심이다. 우주 혹은 천공을 그려내려 캔버스를 마주하는 그의 치열함으로 나타난 화면은 고유한 리얼리티를 안은 어떤 상처처럼 정중동의 균형을 유지한다. 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을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 우리 미술계에서 이는 기껍고도 즐거운 체험이었다.
─ 강성원(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