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 마니아 생리학 교수님의
역사 속 독살 사건 투어
우발적으로,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독살은 없다. 치밀한 사전 계획과 냉철한 판단, 희생자의 습관이나 동선 등에 대한 정보 수집은 기본이다. 따라서 독살은 이처럼 가까운 곳에서 믿음을 배신하는 범죄이기에 그 과정마저 ‘이야기’가 된다.
생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어릴 적부터 미스터리를 좋아했고, 대학 때 들은 생화학과 강의를 계기로 독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두 가지, 미스터리와 독살을 엮어 《한 방울의 살인법》에 담았다. 실제 있었던 과거 독살 사건들을 마치 미스터리 소설처럼 풀어놓은 것. 유럽을 휘어잡던 보르자 가문에 균열을 일으킨 포도주 속 비소 이야기, 영화로 제작돼 많은 사람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디곡신 살인 간호사’가 397년 형을 받게 된 범죄 전모 등을 알 수 있다. 비교적 잘 알려진 이런 사건들 외에도, 부인을 죽이고 수사망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일부러 동네 마트의 많은 토닉 워터 전부에 아트로핀을 주사한 사건, 내연남이 변절한 것에 앙심을 품고 그의 집에 몰래 들어가 커리에 독약을 넣어 중독시킨 사건 등 국내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독살 사건의 사례도 들려준다.
여기서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 저자의 능력이 발휘된다. 생리학자이기 전에 오랫동안 미스터리 마니아였던 ‘경력’을 살려,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소설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경찰이 사체를 관찰하고 목격자들의 진술을 받는 과정을 통해 범인의 허점과 사건의 단서를 찾기도 하고, 매춘부들을 스트리크닌으로 죽인 의사의 재판 막바지에 드러난 결정적 반전은 현장에서 재판을 몰입하게 한다. 《뉴욕타임스》가 저자를 ‘유쾌한 여행 가이드’로 표현했듯, 저자는 어느새 독자를 ‘독살 사건 투어’로 이끈다.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알기 쉬운 ‘독살 교양 과학’
독살은 범인이 희생자와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울 때만 가능한 범죄다. 독약은 식도로 먹게 하거나, 기도를 통해 들이마시게 하거나, 피부를 통해 흡수시키거나, 혹은 범인이 직접적으로 주사할 때만 가능하다. 《한 방울의 살인법》에는 독약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독이 되는 과정을 화학적 원리에 근거해 설명한다.
그러나 복잡한 화학식은 없다. 많은 대중 강연을 통해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과학을 친근하게 전달해온 저자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자세한 설명으로 독약의 과학을 풀어낸다. 아세틸콜린과 아트로핀의 관계는 진짜 열쇠와 가짜 열쇠로 비유하여 설명한다. 모양만 비슷한 가짜 열쇠인 아트로핀이 몸에 들어오면 열쇠 구멍에 들어가지 못하는 진짜 열쇠인 아세틸콜린이 몸에서 제대로 작용하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몸에 이상 증상이 일어나 결국 죽음에 이른다. 또 심장 박동에 관여하는 나트륨과 칼륨의 작동 시스템을 사람이 많은 출퇴근 시간대의 플랫폼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고의로 다량의 칼륨이 주입될 때 몸 안에서 빠져나가야 하는 칼륨이 나가지 못해 심장 마비로 이르는 과정과 매우 흡사한 것. 저자는 이외에도 독약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청산가리, 비소, 인슐린 등이 어떤 원리로 우리의 몸을 파괴하는지를 쉽고 명쾌하게 알려준다.
생리학자인 저자가 독살 사건을 끄집어내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그 안에 담긴 과학 매커니즘을 사람들에게 쉽고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한 방울의 살인법》은 화학이나 과학에 흥미가 없던 사람에게 말한다. “과학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
치명적인 약에서 이로운 약이 되는
인류를 이롭게 하는 과학
《한 방울의 살인법》에 등장하는 여러 살인 사건을 살펴보면, 멀게는 1000년도 더 전에, 가깝게는 20년도 안 된 시점에서 일어났다. 오늘날에는 과학의 발달로 범인이 잡히지 않고 빠져나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독살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드물어졌을 뿐 지금도 여전히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어떤 화학 물질은 독으로 사용될 경우 아예 해독제가 없어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화학 물질 자체는 본질적으로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니듯, 그 물질을 좋은 의도로 사용하여 인류의 발전에 도움을 준 사례들을 지속적으로 언급한다. 수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해 쓰이는 약은 까마중이란 식물의 독 성분을 제대로 알기 시작하면서 개발되었고, 여기서 더 발달해 아트로핀은 현재 신경독의 해독제로 사용되고 있다. 심장의 전기 신호에 대한 폭넓은 이해는 디곡신의 도움을 받아 가능했다.
독살 사건을 누군가의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들은 그 독이 된 물질을 연구하고 세포와 조직의 분자 구조를 분석한 정보를 바탕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잘못 써서 독이 되었던 물질은 연구 경력을 독약을 검출하는 데 전부 바치는 과학자들에 의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고 있는 것. 추악한 범죄의 결말로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