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과 가족의 삶을 담은 이야기
소피 블랙올은 뉴욕 북부에서 허름하고 낡은 집 한 채를 만난다. 서늘하고 어두운 집 안에는 우그러진 냄비 뚜껑, 귀퉁이가 말린 사랑 노래 악보, 녹슨 깡통 등이 널브러져 있다. 작가는 쓸 만한 물건과 흔적 들을 찾아, 이 집에 살았을 가족을 상상하며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며 자라는 아이들과 함께 낡아가는 집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보여 준다.
언덕 너머 흐르는 시냇물이 끝나는 곳에 집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그 집에서 열두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며 부모님과 함께 여러 추억과 감정을 공유한다. 방과 거실, 부엌 등 집 안 곳곳에 있는 물건과 가구에서 아이들의 손길이 묻어 나온다. 이런저런 모양을 새긴 감자에 물감을 칠해 찍은 자국과 매일같이 쑥쑥 자라는 아이들의 키를 잰 표시가 남은 벽지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른이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나고 집은 홀로 남는다. 아이들이 뛰어놀았던 마룻바닥은 썩고, 물감이 알록달록 묻은 벽지는 벗겨진다. 종종 다람쥐와 제비가 방문하는 집은 사람의 손길에서 벗어나 고요한 숲속에 자리 잡는다.
소피 블랙올은 이 집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함께 먹고 자고 일하고 놀고 웃었으며,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되었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아이들은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을 거라는 따뜻한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이에 《스쿨 라이브러리 저널》은 한적한 시골 풍경에 시적인 문장이 함께해 독자들에게 한 폭의 추억을 선사한다고 평했다.
■ 다양한 색감과 질감의 콜라주 방식으로 탄생한 섬세한 일러스트
표지 커버의 커다란 회색 지붕 집 창문 사이로 한 가족이 보인다.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아이들끼리 속닥속닥 비밀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아빠에게 꾸중을 듣는 풍경이 펼쳐진다. 커버를 벗기면, 인형의 집을 살펴보듯 넓게 펼쳐진 집의 내부가 보인다. 세밀하게 그려진 이층집과 잡동사니가 가득한 다락방 구조, 그리고 책을 펼치면 그 인형의 집에 초대된 손님처럼 방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다. 책을 접한 독자는 커버, 표지, 본문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문을 열고 들어가 눈 앞에 펼쳐지는 아이들의 삶을 마주할 수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자 집은 점차 나이가 든다. 집 안에 어지럽게 나뒹구는 나뭇잎과 물건들은 단란한 가족이 있을 때의 풍경을 보여 주는 페이지와 대조되어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다. 하지만 쓸쓸하게 남은 집에 작가인 ‘나’가 등장하여 이야기는 한 번 더 새롭게 전개된다. 책의 마지막에는, 표지이자 이야기의 시작을 보여 주었던 인형의 집 구조를 다시금 불러와 상상 속 이야기임을 부드럽게 연출한다.
먹, 물감, 수용성 페인트와 색연필을 활용하여 질감과 색을 다양하게 표현한 집 안 풍경은 소피 블랙올 특유의 서정적인 이야기와 어우러진다. 뉴욕의 무너진 19세기 농가에서 발굴한 물건들에 추억을 불어넣어 다양한 소재를 덧댄 레이어 방식과 콜라주로 디테일을 높이고, 책을 읽는 독자가 집이라는 공간을 직접 이동하며 둘러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칼데콧상을 두 번 수상한 작가답게 시적인 문장과 어우러지는 화려한 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