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지 몰라도, 이 약이 꼭 필요해요.”
2096년 통제 사회, 12세 의사 지망생 클레오 포터의 3일간의 오디세이
최근까지 우리가 겪어 온 팬데믹 상황을 예견한 듯한 내용을 가상현실이라는 장치로 버무려 낸 청소년 소설. 남을 돕는 따듯한 마음을 가진 열두 살 예비 의사 지망생 소녀의 모험 이야기이자 스릴 넘치는 공상과학 소설이다.
2096년, 전 세계를 휩쓴 인플루엔자 D의 감염으로부터 살아남은 인류의 생활공간이 된 무균 상태의 빅 블랙 큐브. ‘대분리’ 사건 이후, 사람들은 인플루엔자 감염을 막기 위해 세상과 격리된 채 자기 가족끼리 블랙 큐브의 유닛 안에서 생활하며, 다른 사람들과는 오로지 가상공간에서 이미지로만 만날 수 있다. 학습은 물론 온라인에서 이루어지고, 식량이나 필요한 물품은 모두 드론 시스템을 이용하여 각 가정의 유닛에 설치된 튜브를 통해 배송받는다. 수술을 포함한 모든 의료 행위도 드론을 이용하여 원격 진료로 해결하는 등 빅 블랙 큐브 안에서의 생활은 오로지 드론으로 유지되고 통제된다.
의사가 되기 위한 첫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열두 살 클레오는 밀폐된 블랙 큐브 안에서 온라인으로 학습하고 시뮬레이션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닫힌 세계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클레오는 튜브를 통해 수상쩍은 소포 하나를 받는다. 주소는 맞지만 수신자는 모르는 사람이다. 물건이 잘못 배달되는 일 따위는 이곳 블랙 큐브 안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데 어찌된 일일까? 뛰어난 드론 외과의사인 어머니 덕분에, 클레오는 빨간 포장지로 싸인 상자는 그 내용물이 약이라는 걸 알고 있다. 코앞에 닥친 의사 시험에도 불구하고 그 약이 없으면 곧 죽게 될 환자가 걱정되어 클레오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유효기간 안에 약을 전달할 방법을 찾으려고 애쓴다. 온갖 궁리 끝에 직접 약을 전달할 계획을 세운 클레오는 완벽하게 통제된 빅 블랙 큐브의 세계에서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첫 걸음을 내디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작동되는 드론들과 싸우며, 의도치 않게 거대한 아파트 건물 밖 쓰레기 더미에 떨어진 클레오는 상상해 본 적 없는 바깥세상을 마주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대분리 사건 때 살아남았지만 세상과 격리되기를 거부하며 바깥세상에서 살고 있던 앤지 할머니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이제부터 클레오는 부모나 어른들이 정해 주는 인생을 따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자신만의 길을 열어 가기로 한다.
『인플루엔자 D와 빅 블랙 큐브』는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한 팬데믹 상황에 기계화되고 통제되는 가상현실을 접목시킨 공상과학 이야기로, 읽으면 읽을수록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클레오의 이야기는 지난 팬데믹 시기 동안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돌보던 모든 의료진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어린 나이지만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자립심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