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처음 시도된 두 아티스트의 협업이
황현산의 정교한 번역과 해설로 또하나의 깊이를 얻다
짧은 분량의 시집이지만 재차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를 발산하는 독특하고 신비스러운 이 시집의 독서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것은 번역자 황현산의 보충 주석이다. 각각의 시 속에 담긴 비유나 상징, 숨겨진 의미를 섬세하게 짚어주는 그의 해설은 오르페우스가 이끄는 행렬을 묵묵히 비추며 독자에게 그 행렬에 함께하기를 권유한다.
거북이, 말, 산양, 뱀, 고양이, 사자, 산토끼, 낙타, 생쥐, 코끼리, 애벌레, 파리, 벼룩, 메뚜기, 돌고래, 낙지, 해파리, 가재, 잉어, 세이렌들, 비둘기, 공작, 부엉이, 이비스, 황소, 그리고 오르페우스…… 이들에 대한 재해석의 재미가 집중력 있는 관찰과 사유에서 나온다 할 때 이 시집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건 아마도 제3의 눈이 아닐까 한다. 세상사의 숨은 비밀 같은 것을 보게 하는 눈. 인생사의 부질없음을, 다시 말해 죽음의 공포를 그럼에도 견디게 해주는 건강한 정신의 눈.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은 다른 세상으로 연결되고, 농담이 지혜로운 예언이 되고, 시는 또하나의 깊이를 얻는다 할 때 삶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폴리네르는 이 시집을 통해 우리에게 그 답을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나는 경탄한다”라고 말한 그의 좌우명처럼.
벼룩
벼룩도, 친구도, 애인마저도,
우릴 사랑하는 것들은 어찌 그리 잔인한가!
우리네 모든 피는 그들을 위해 흐르지.
사랑받는다는 인간은 불행하지.
아폴리네르는 자신을 늘 ‘사랑받지 못한 사내mal-aimé’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시를 보면 ‘사랑 많이 받는 사내bien-aimé’와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차이는 별로 없다.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한꺼번에 고통을 받고 사랑받는 사람은 오랜 시간을 두고 그 고통을 나눠 받는다. (번역자의 보충 주석 중에서)
가재
확실한 것이 없구나, 오 나의 희열들아
너희와 나, 우리는 함께 간다만
가재들이 걸어가듯,
뒷걸음으로, 뒷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는 가재는 전통적으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망에서 점점 멀어지는 나쁜 상황을 우의한다. 아폴리네르는 젊었을 때 자신의 처지가 그렇다고 늘 생각했으며, 뒷걸음으로 물러서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를 비롯한 여러 편의 시에서 그렸다. (번역자의 보충 주석 중에서)
돌고래
돌고래들아, 너희는 바다에서 놀건만,
날이면 날마다 파도는 쓰고 짜지.
어쩌다, 내 기쁨이 터져나올 날도 있을까?
인생은 여전히 잔혹하구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에서 돌고래는 일반적으로 경쾌하고 기민한 지성을 상징한다. 돌고래들은 바다의 짠 물결을 두려움도 없이 놀이터로 사용한다. 그러나 영감이 고갈된 시인은 깊은 바다에 들지 못하고 늘 해변에 좌초한다. (번역자의 보충 주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