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선물을 안겨주고 떠난 맑은 영혼의 사제
전 신부는 예수처럼 사순절 기간에 병마와 싸우며 거룩하게 보내다가 성삼일 동안 생의 마지막 정리를 하다가 예수가 부활한 날 이른 새벽에 세상을 떠났다. 동료 사제와 교우들은 전 신부가 의연하게 병마와 싸우는 모습에서 오히려 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의연하게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모습에서 큰 신앙의 선물을 받았다. 그는 동창 사제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병고의 고통을 통해서도 얻는 축복도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밤에 잠이 안 와서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과 동창들에 대한 생각입니다. 살면서 그토록 그리웠던 것이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동기들, 그동안 소홀해서 미안하고, 부족한 나에게 최고의 사랑을 다해주어 고맙습니다. 하늘에서도 그 사랑 잊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해주세요.”
한가을 화사하게 피어난 국화꽃 속에서 신앙공동체를 일군 사제
2004년 의정부교구가 설립되었을 때, 그는 “의정부교구에서 가장 작은 성당, 가장 가난한 성당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교구장에게 청하고 경기도 북단의 연천성당에서 8년간 주임신부로 지냈다. 전 신부는 마치 한번 본당신부를 하고 그만둘 것처럼 그곳에서 자신을 온통 쏟아부었다. 그는 연천성당을 ‘내 본당, 생각만 해도 가슴 떨리는 내 본당!’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국화꽃을 키우고 가을철에는 국화 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을 성당 마당으로 초대했다. 후미진 시골 성당이 국화 전시회 명소가 되었고, 지역 주민도 함께하며 신자 비신자 가릴 것 없이 지역민 모두 어우러지는 축제의 한마당을 이루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이었지만 환한 웃음으로 모든 손님을 환대했다. 그는 그렇게 진정한 신앙공동체를 일궈갔다.
그는 사제로서 참으로 예수님을 닮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 애쓰고, 자신의 사명에 충실하였으며 말과 삶을 일치시키려 노력한 ‘교회’의 사람이었고, 국화를 정성껏 가꾸던 모습이 말해주듯 땀 흘리는 노동의 귀함을 잘 알고 꺼리지 않았던 ‘실천’의 인물이었으며, 사람들을 좋아했으며 인생을 벗들과 즐길 줄 알았던 ‘친교’의 사람이었다.
선한 사제의 겸손과 하느님과 깊은 대화가 남겨진 유고 묵상집
묵상집 『세상이라는 제대 앞에서』는 전 신부의 선종 10주기를 맞아 2012년도에 그가 『매일미사』에 한 해 동안 연재했던 묵상 글을 간추려 발간한 유고집으로, 매일의 미사 전례를 위해 집필한 ‘오늘의 묵상’ 중에서 신앙에 도움이 되고 삶에 영감을 주는 감동적인 대목들을 골랐다. 전 신부를 큰형처럼 따르는 동창사제들이 교우들과 동료 사제들에게 마음을 다해 사랑을 베풀었던 그를 기리며 함께 마음을 모아 이 책을 기획했다. ‘전숭규 신부님을 기억하는 사제들’은 더 많은 사제와 교우들과 독자들이 전숭규 신부를 떠올리고 알게 되고, 그에 대한 추억을 그리워하며 이야기하기를 바라고, 나아가 그의 진심 어린 묵상이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엮었다. 하느님 안에서 한없이 진지하면서도 때 묻지 않은 천진함을 살았던 한 사제에 대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픈 마음의 결실이기도 하다.
전 신부는 열정적 독서가로서 책 이야기를 즐겼다. 그를 만나는 이들은 그가 매우 겸손하고 소탈하지만, 넓은 학식과 남다른 통찰과 예리한 지성을 지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출중한 문장가인 그의 하느님에 대한 깊은 묵상, 세상과 자신에 대한 겸허한 성찰을 꾹꾹 눌러 담은 묵상글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