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스톤의 컬러는 왜 중요한가?
2023년 3월 말, 크리스티 경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루비를 8년 만에 경매에 부친다고 발표했다. 성인 여성의 검지 한마디도 채우지 못하는 크기인데 현재 가치가 무려 4백억 원에 달한다. 웬만한 다이아몬드는 명함도 못 내밀 만한 가격이다. 차후에는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과연 어떤 이유와 기준이 적용되는 것일까?
젬스톤의 컬러는 아름다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컬러에 따라 가치 평가와 가격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투명한 무색으로 빛나는 다이아몬드조차 투명도와 컬러는 촘촘히 세분화되며, 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무색의 다이아몬드라면 약간의 노란 기도 질색하지만 노란색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 옐로 다이아몬드로 변신한다. 요즘은 컬러 다이아몬드가 인기를 끌면서 핑크 다이아몬드가 크게 주목받고 있다. 핑크 다이아몬드는 다이아몬드 100만 캐럿 중 1캐럿 정도가 산출될 만큼 희귀한 데다 여성스럽고 로맨틱한 컬러의 매력이 겹쳐 주요 경매에서 매년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그러니 보석에 따라 어떤 색깔이 가장 가치 있는 색인지, 보석이 채굴되는 산지에 따라 어떻게 색깔이 다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더 나아가 각각의 보석이 지니는 보석학적 특징까지 꿰게 된다면, 비슷한 컬러에 현혹되지 않고 진정한 보석의 가치를 알아보게 된다. 영국의 제국관에 박혀 있는 흑태자 루비가 사실은 루비가 아니라 스피넬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 것도, 한동안 에메랄드로 오인받은 보석이 페리도트로 드러난 것도 모두 보석의 광물학적 특징이 밝혀지면서부터다.
우리는 흔히 루비와 사파이어가 전혀 다른 보석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은 둘 모두 같은 커런덤(corundum)이라는 종에 속한다. 그런데 붉다는 이유로 루비라는 이름이 붙고, 나머지 색은 모두 사파이어로 불린다. 게다가 루비는 사파이어보다 훨씬 비싸다. 예부터 인류가 붉은색을 귀하게 여겼다는 증거다. 사파이어는 루비와 달리 다양한 색상을 자랑하지만 색을 묘사하는 수식어 없이 ‘사파이어’라고만 쓸 때는 오로지 청색을 지칭한다. 청색을 제외한 나머지 색깔은 ‘팬시 컬러 사파이어’라고 부르는데 핑크, 파파라차, 오렌지, 그린, 바이올렛, 퍼플, 블랙, 그레이, 브라운 등이 있다. 그중에서 핑크와 오렌지가 오묘하게 섞인 파파라차 사파이어는 희소성이 가장 높아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석에 포함된 내포물은 기피 대상이지만, 오히려 내포물에 매력적인 이름이 붙기도 한다. 에메랄드는 빛을 비추면 내부에 실 같은 것이 엉켜 보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나무나 풀이 우거진 정원을 닮았다고 해서 ‘자르댕’이라는 낭만적인 별칭으로 불린다. 루비에도 ‘실크’라고 불리는 내포물이 있으면 내부의 빛을 산란시켜 벨벳처럼 부드럽게 빛나게 한다. 만약 실크가 그룹으로 교차해서 별 모양을 이루면 신비로운 스타 루비로 거듭난다.
알고 나면 더욱 재미있는 컬러 네이밍
보석의 컬러는 곧 가치의 다른 이름이므로 예부터 특별한 수식어가 붙었다. 오늘날 ‘diamond of the first water’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인이나 일류의 인물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물처럼 희고 맑고 반짝일수록 다이아몬드의 품질을 높게 평가한 보석업계의 관용적 표현이 나온다. 다이아몬드에서 ‘워터’는 1850년대까지 색, 순도, 광채의 등급을 가리키는 분류 단위였기 때문이다.
최상급의 루비에 붙는 이름은 ‘피전 블러드(pigeon blood)’다. 수세기 동안 인류는 최상급 미얀마 루비의 색을 ‘갓 죽은 비둘기의 핏빛’ 또는 ‘우심실에서 나온 핏빛’으로 표현했다. 피전 블러드라는 말에는 품질이 탁월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일찍이 보석 애호가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궁극의 보석으로 여겼다.
요즘은 컬러 마케팅의 일환으로 재미있는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포스터에서 오드리 햅번이 착용한 128.54캐럿 옐로 다이아몬드는 ‘티파니 다이아몬드(The Tiffany Diamond)’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브라운 다이아몬드는 1980년대 이전까지는 미학적으로 환영받는 색이 아니었지만 호주의 아가일 광산에서 다량의 원석이 채굴되면서 샴페인, 코냑, 초콜릿 같은 고급스러운 컬러 마케팅으로 대히트를 쳤다.
20세기에 발견된 보석에는 명명자가 확실한 보석도 있다. 쿤자이트는 1902년 티파니의 부사장인 조지 프레더릭 쿤츠 박사가 이 생소한 핑크빛 보석이 스포듀민의 변종임을 밝혀내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쿤자이트로 명명되었다. 쿤자이트가 세상에 나온 지 8년 후, 이번에는 마다가스카르에서 또 다른 핑크빛 보석이 발견되었다. 당시 쿤츠 박사는 친구이자 티파니의 주요 고객인 J. P. 모건에게 차후 새로운 보석이 등장하면 모건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겠노라 약속한 상태였다. 쿤츠 박사는 결국 그 약속을 지켰고, 이 새로운 보석은 모거나이트로 명명되었다.
시대마다 달라지는 컬러의 트렌드
요즘은 컬러가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방편이지만, 예전에는 권력과 지위를 나타내기도 했다. 특히 보라색은 특수한 계층이 향유한 색이었다. 수많은 왕과 황제들은 직계존속 외에 누구도 보라색 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따라서 보라색 보석의 대명사인 자수정은 성직자의 반지와 군주의 대관식 주얼리를 장식했다. 자수정 광산이 있는 러시아에서는 예카테리나 2세와 알렉산드르 1세 등 황제들이 애용한 보석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도 유럽 왕실 여인들의 티아라와 주얼리에 자수정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요즘 들어 핫한 컬러도 있다. 그 중심에 파라이바 투르말린이 있다. 파라이바 투르말린은 트루말린 중에서도 네온 블루, 윈덱스 블루라 불리는 독특한 색상으로 2023년 현재 가장 핫한 스타 보석으로 떠올랐다. 한편 루비에 밀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스피넬도 요즘은 컬러 때문에 인기가 높다. 스피넬도 자연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네온 기’를 잘 구현하는 보석인데 〈스타워즈〉의 기사 제다이의 광선 검을 연상시키는 ‘제다이 스피넬’은 네온 기가 도는 핑키시 레드 스피넬로 인기가 뜨겁다. 이 역시 시대의 컬러 취향이 바뀜에 따라 각광받는 보석이 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지속 가능성을 중요시하다 보니, 물려받거나 오래된 보석을 재활용해 지구의 환경을 지키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보석은 내구성이 강점이므로, 개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도 손색이 없다.
이처럼 다이아몬드만이 가장 귀하고 유일한 투자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지났다. 요즘은 ‘귀보석 vs 준보석’의 이분화도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로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높은 가격이 늘 이슈가 되지만, 유색 보석은 색 그 자체로 존재감이 부각되며, 색의 스펙트럼에 따라 가치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 책은 젬스톤의 컬러를 제대로 이해하고 가치를 판별할 수 있도록 상세한 설명과 도표,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컬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주얼리를 도판으로 함께 실었다. 국내에서 출간된 그 어떤 젬스톤 책보다도 더 쉽게, 더 전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이블이 될 것이다. 보석은 진정 아는 만큼 보이며, 알고 나면 더욱 매혹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