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유교경』은 한국의 불자들에게는 조금 낯선 경전이지만, 예부터 동아시아 전통의 선종에서는『사십이장경』,『위산경책』과 더불어 불조삼경佛祖三經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경전이며, 총림에서는 필수적으로 공부해야 할 경이기도 하다. 경이 이름처럼 이 경은 부처님의 열반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유언의 성격으로 된 경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는 내용이어서 짧으면서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삼장법사인 구마라집이 번역하였는데, 산스크리트 원본과 티베트본에는 없는 경이다.영화 스님은 이 경을 2008년에 미국의 베트남 사찰에서 영어로 강설하였으며, 이때 강설한 내용을 영어로 녹취해 풀었고, 이 책은 이때 풀어놓은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불유교경』은 다른 경과 같이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세 가지 체계로 나눠진다. 〈서분〉에서는 부처님께서 모든 인연 있는 중생들을 모두 제도하시고, 사라쌍수에서 입멸 직전에 제자들에게 법의 본질을 설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정종분〉은 부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당부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바로 계율이다. 영화 스님은 강설에서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주목한다. “부처님이 가장 먼저 가르친 법은 무엇일까요? ‘신묘장구대다라니’나 신주의 왕인 ‘능엄주’와 같은 거창한 이름이 아닙니다. 밀교나 탄트라법도 아닙니다. 정토나 참선도 아닙니다. 그건 바로 계율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말해서 수행하려면 우선 계율부터 지켜야 합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내용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지계”에 두고 있다. 〈정종분〉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계를 지키는 게 왜 중요한지, 그 공덕과 대응책의 부문을 설하고 있다. 감각기관, 욕망, 게으름 등을 다루는 것이 계를 지키는 중요한 방법임도 설하고 있다. 그만큼 계를 지키는 것이 수행자에게 가장 근본임을 드러낸다. 또한 과식, 게으름, 졸음, 분노 등을 어떻게 경계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다. 이 부분에서는 이 경이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자에게도 당부하는 내용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영화 스님은 『불유교경』이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자가 계를 지켜서 어떻게 본질적인 행복에 이를 수 있는가를 설명해주고 있다. 일례로 강설에서는 영화 스님의 제자들 중에 이선二禪과 삼선三禪, 사선四禪에 이른 재가자들을 소개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는 한국불교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내용이기도 하다.
출가자에게 당부하는 내용 중에는 사고팔거나, 무역하거나, 건물을 모으거나, 노비를 부리거나, 짐승을 키우거나, 재물을 모으는 것을 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관상, 길흉 등 역수산계를 하지 말라고 하고, 주술을 부리거나 높은 가문의 사람과 연줄을 쌓고 너무 친하게 지내거나, 천한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초목을 베거나 밭을 가는 등 농사를 지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특별한 모습으로 군중을 현혹하면 안 된다고 말씀한다. 출가자는 오직 몸가짐을 절제하고 때를 맞춰서 먹으며, 스스로 청정하게 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런 당부는 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이 모든 행위들은 삿된 행위인 것이다.
〈유통분〉은 결론의 성격이기에 다른 경에서는 비중이 비교적 작지만, 『불유교경』에서는 비중이 비교적 높다. 그만큼 마지막까지 부처님의 당부가 절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핵심은 “일심으로 수행하라!”고 정말 간절하게 권하신다. 세상은 무상하니, 근심과 괴로움을 마음에 두지 말라고 하신다. 이 점을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장면이 바로 눈앞에서 그려질 정도이다. 특별히 영화 스님은 이 부분에서 “일심一心으로” 라는 말씀에 주목한다. 영화 스님은 대승은 정념(正念, Mindfulness)이 아닌 “일심一心”을 강조한다고 강설한다. 일심은 정념으로 이어지지만, 정념이 일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불유교경』의 내용은 오로지 계정혜를 바탕으로 수행정진하라라는 부처님 말씀뿐이다. 이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경에도 나와 있듯이 “좋은 의사가 병을 알아서 약을 처방하니, 복용하거나 복용하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듯이, 그것을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인도하는 사람의 허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