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비빌 언덕이 사라졌을 때
로마서로 달려가 하나님의 품에 안겨라
진실은 복잡한 수학 공식과 함께 오지 않는다. 현란한 말의 향연 속에서 겨우겨우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잘 나가고, 건강하며, 아쉬운 게 없을 때는 복잡했던 머릿속이, 밑바닥까지 내려가보면 비로소 보여야 할 것이 드러나고 붙잡아야 할 것이 명백해진다.
로마서는 그런 책이다. 세상의 화려함이 취해 살 때는 “다 아는 이야기”처럼 들리다가 “인생에서 비빌 언덕이 사라지고”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할 때가 되면 가슴 시리게 나의 영혼과 인생 전체를 현미경처럼 비추며 해부한다.
인생이 너무 망가져서 더 이상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복음이 더 이상 복된 소식으로 들리지 않고 그저 그런 사탕발림처럼 여겨질 때, 저자는 로마서를 새롭게 보게 하는 관점 하나를 열어준다. 특히 “복음=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인 것은 맞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다각도에서 비추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에 눈을 뜨도록 로마서의 고갱이를 독자들에게 하나하나 풀어 놓고 있다.
특히, 복음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샬롬을 일상에서 맛보는 법을 알게 하는 식으로 차분한 독서만으로도 영성 형성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오히려 “로마서의 논리는 교리 논리보다는 역사 논리에 가깝다”고 하며, 로마서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한 아버지와 두 아들”(일명 “기다리는 아버지 비유”)에 관한 이야기를 구원사적 논리로 써 내려간 장문의 편지라고 보았다. 바울은 오히려 9-11장을 이야기하기 위해 로마서 전체를 할애했다는 것이다.
복음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샬롬은
어떻게 삶 전체에 구석구석 스며드는가?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히 교리와 이신칭의를 중심으로 한 ‘구원 논리’보다는, 칭의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정의 개념으로 시작해, 신구약을 넘나들면서 시종일관 로마서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이것이 각자 삶의 관계망에서 펼쳐지는 ‘하나님 나라 논리’로 재해석하여 로마서를 새롭게 읽기 위한 묵상의 재료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이 보여주는 가치관에 이제부터는 적극적으로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를 낼 수 있다. 이 세상 패턴에 따라 살던 습관이 하나님의 법, 성령의 법을 즐거워하는 습관으로 변한다. 그뿐 아니라 개인 변화를 넘어 세상을 변혁시키는 창조적 에이전트가 된다(12:2).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 정의로움, ‘전가轉嫁된 정의로움’은 엄청난 사회적 함의를 지니기 시작한다. 함께 살아가는 다른 형제자매들과의 소원했던 관계도 새로워지며, 하나님의 집 안팎의 모든 것과도 새롭게 되기 시작한다.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 자녀처럼 사는 제자도의 길을 걷고, 새 시대의 전령이신 성령에 이끌려 살아가는 삶을 기대하게 한다.
저자는 이렇듯, 로마서 전반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 신학을 내 삶의 구석구석에 적용하는 인사이트도 얻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문학성과 신학적인 관점(문예-신학적 글쓰기)을 유지하면서도 로마서를 읽는 탁월한 안목 하나를 얻게 해주어, 지면에 얌전히 누워 있던 본문이 입체적으로 살아 숨쉬며 3D로 잡히는 황홀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