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고 있는 우리들의 양심에 불을 지르다
-- 김정남 (전 대통령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정기용 형이 책을 낸다고 한다. 필경 그동안 한국과 미국에서 그 때 그 때 외쳤던 목소리들을 한 자리에 모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래서는 안 된다”, “가야 할 길은 여기다” 길을 밝힌 사자후요, 피를 토하면서 쓴 광야의 외침에 다름 아닐 것이다. 뒤늦게나마 정기용 형의 책이 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쌍수를 들어 온몸으로 환영하는 까닭이다.
정기용 형은 누구 말대로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노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도 청춘이다. 청춘의 정열이 불같이 뜨겁고, 청춘의 낭만이 아직도 차고 넘친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외치는 정열과 그 목소리는 지금도 정정하고 쩌렁쩌렁하다. 정 형의 넓은 보폭과 행보는 늘 가만히 엎드려 있는 우리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뜨거운 애국심에는 찬탄과 존경을 금할 수 없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나보다 이 땅의 사정에 더 밝아, 나라가 잘못된 길을 갈 때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 길이 아니라고 외친다. 분명히 잘못 가고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잠자고 있는 우리들의 양심에 불을 지른다. 그렇지만 나는 한 번도 그의 높은 의기와 애국심에 제대로 부응했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늘 그 앞에 서면 내 키는 작아만 진다.
정기용 형은 우리 시대에 그래도 남아있는 마지막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세월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 봄꽃이 피고 가을 귀뚜라미 우는 것에도 민감하고, 동서양 시인가객(詩人歌客)의 풍류와 정조(情調)에도 곧잘 공감한다. 나는 그런 그의 센티멘탈리즘도 마음에 든다. 정 형에게 저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삼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게 정 형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먼 길. 더불어 함께였기 때문에 정 형이나 나나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에 나오는 책은 어쩌면 그런 우리 모두의 동행(同行) 기록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래서 정 형의 책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요, 자화상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