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침엽수의 번성과 쇠퇴
침엽수 등 나자식물은 환경이 나빠 식물이 빠르게 자라기 곤란한 곳, 생육기일이 짧은 지역 등 피자식물이 선호하지 않는 곳에서 경쟁력이 있다. 침엽수는 기후가 좋지 않거나 토양조건이 좋지 않은 곳에서도 잘 살며 산불, 개간과 같이 광범위한 간섭을 받은 뒤에는 자리다툼에서 유리하다.
나자식물이 지구에 출현한 것은 3억 8,000만여 년 전 고생대 데본기였으며 중생대에 전성기를 맞아 육지를 뒤덮었다. 침엽수는 체내에 기름기를 가진 리그닌(lignin) 성분이 많아 추위에도 잘 견딜 수 있고, 소화가 잘되지 않아 다른 생물들이 먹기를 꺼렸기 때문에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생대 말 백악기에 등장한 꽃피는 식물이 강력한경쟁자로 등장하면서 침엽수는 점차 밀려나게 되었다. 오늘날 햇볕이 잘 드는 척박한 땅에서 경쟁력이 있는 침엽수는 숲이 우거지고 땅이 비옥해지면 신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무류에 자리를 내준다.
침엽수의 계통분류와 공간적 분포역
침엽수는 계통분류학적으로 식물계 관속식물아계 종자식물상문 나자식물아문 구과식물문 구과식물강으로 분류되는 나자식물이다. 한반도에 자생하는 침엽수는 4개과로 소나무과, 개비자나무과, 측백나무과, 주목과의 28종이 있으며 구상나무, 눈잣나무, 가문비나무 등은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낙우송, 일본잎갈나무와 같이 외국에서 도입되거나 귀화한 외래침엽수도 20종을 소개하였다.
침엽수의 진화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어 환경에 대한 적응범위가 매우 넓다. 적도부터 고산대까지, 해안의 온대우림 기후대부터 내륙의 반사막 기후대까지 분포한다. 한반도에서는 해발고도에 따라 지형, 기후, 토양, 수문, 생태계 등 자연환경이 달라지면서 수직적 식생대가 나타난다. 한반도 자생 침엽수를 수직적 분포역에 따라 고산형, 아고산형, 산지형, 해안형, 도서형, 격리형 등의 6대 유형으로 나누었다. 또한 설악산에서 한라산 그리고 주요 섬에 이르는 남한과 백두산에서 금강산에 이르는 북한에서 자라는 침엽수의 종별 수평 분포역을 구분했다. 특히 한반도의 고산대와 아고산대에 드물게 자라는 한랭한 기후를 좋아하는 침엽수와 해안과 도서에 격리되어 자라는 침엽수들은 지구온난화, 해수면 상승 등으로 인한 피해를 받기 쉬운 취약종이다.
바늘 모양의 잎과 둥근 모양의 구과를 가진 침엽수
침엽수는 잎이 뾰족하거나 비늘 모양이고 구과(솔방울) 속에서 종자(씨앗)가 만들어져 번식하는 원시적인 나무다. 가늘고 뾰족한 바늘잎은 기온이 낮은 지역에서 수분을 빼앗기지 않고, 바람의 저항을 줄이는 데도 유리하다. 기공으로부터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외부와 접촉하는 바깥층인 큐티클 층이 발달하여 잎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는다. 상록침엽수들의 잎이 겨울 추위에도 얼지 않는 것은 아미노산과 당분이 부동액으로 작용해 동해(凍害)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이 아미노산과 당분은 세포의 농도를 높여서 잎이 어는 빙점을 낮춰 세포의 파괴를 막아준다. 상록침엽수는 늦가을부터 이른 봄에도 기온이 오르면 광합성을 할 수 있어 다른 식물과의 경쟁에서 유리하다.
침엽수의 방울열매인 구과는 나자식물의 밑씨 원추체로 보통 솔방울이라고 부르며 모양, 크기, 무게가 다르다. 구과는 딱딱한 목질(木質)의 비늘조각이 여러 겹으로 포개어 있어 전체적인 모양은 둥근 모양이나 원뿔 모양이다. 침엽수는 종자에 큰 날개가 있어 바람에 의해 스스로 퍼지기도 하지만, 일부 종은 동물들의 도움을 받아 종자를 퍼트리기도 한다. 새 등을 유인하기 위해 종자가 가짜 씨껍질인 가종피(假種皮)로 둘러싸인 구과(비자나무, 주목 등)도 있다.
침엽수가 인류에게 제공하는 생태계서비스
침엽수는 줄기가 곧고 큰 가지의 발달이 적어 목재로 이용할 때 손실이 적다. 침엽수에서 만들어지는 연한 목재들은 건축뿐만 아니라 종이, 섬유, 합판, 포장재, 가죽을 가공하는 화학제품 생산 등에 널리 이용한다. 침엽수 한 그루는 성인 4명이 숨 쉬는 데 필요한 양의 산소를 공급하며, 잎은 공기 중 미세먼지를 줄이는 효과도 많아 1년에 44g의 미세먼지를, 1ha의 숲은 1년에 168kg의 미세먼지를 흡수한다.
침엽수인 소나무, 잣나무, 편백 등은 피톤치드로 알려진 화학 물질을 배출해 자신을 방어하기도 한다. 피톤치드는 침엽수가 병원균, 해충, 곰팡이에 저항하기 위해 내뿜거나 분비하는 천연 항균물질이다. 피톤치드는 살균작용, 장과 심폐기능 강화,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효과가 있어 침엽수림에서 삼림욕으로 치유와 휴양을 하는 인구가 늘고 있다.
기후변화로 고사의 위기를 맞은 침엽수
최근에 구상나무, 기문비나무, 소나무 등 침엽수가 집단으로 말라 죽는 것은 뿌리 근처에서 자라며 수분을 공급하는 미생물인 균근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겨울과 이른 봄철에 이상고온 현상이 잦아지면서 소나무가 겨울 휴면 상태에서 일찍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수분을 모아주는 균근이 아직 활동하지 않아 소나무가 수분부족으로 말라 죽는 고사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해 수목이 고온과 건조 스트레스를 받으면 병해충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진다. 겨울 기온이 높아지며 외래 곤충의 서식지도 넓어지고 있으며, 천적이 거의 없는 외래 병해충의 피해도 늘고 있다.
침엽수는 기후변화의 지표로 자연사 복원에도 중요하고, 생물다양성 측면에서도 보전 가치가 높다. 특히 아고산의 능선과 정상부는 기후변화에 취약한 침엽수와 키 작은 고산식물들의 피난처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나무별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해 관리·보전하고 훼손된 서식지의 복원이 필요하다.
봄철이면 발생하는 대형 산불에 취약한 침엽수
날씨가 따뜻해지고 비가 오는 날이 적어지면서 가뭄이 심해지고, 전국 각지에서 산불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산불의 원인으로 건조한 날씨, 소각, 실화 등이 꼽히지만, 산불을 더 키우는 원인으로 꼽히는 것으로 애꿎은 소나무가 지목되고 있다. 침엽수는 송진을 함유하고 있어 불에 잘 타고, 솔방울이 멀리 날아가 산불을 크게 키우기도 한다. 강원 동해의 소나무는 테레빈 성분이 많아 불이 오래 잘 타고, 가벼운 솔방울에 불이 붙으면 바람을 타고 먼 거리까지 날아가 산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의 발생과 산불 피해 규모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잦은 산불은 다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산불이 더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내화수종인 활엽수들을 조림해야 하지만, 사유림의 산주들은 경제성 등의 이유를 들어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 위주로 식재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