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뮤지엄이 보이기 시작하면,
런던 여행의 클래스가 달라진다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뮤지엄에 들르면 된다. 유럽 도시의 여느 뮤지엄과 달리 런던의 뮤지엄은 대부분 무료로 열려 있다. 아무리 공짜여도 효용이 없으면 가성비가 떨어질 텐데, 그럴 리는 없다. 런던의 뮤지엄은 ‘영감의 창고’와 마찬가지니까. 그렇다면 물가가 비싼 런던에서, 뮤지엄만큼은 공짜로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18세기로 시간을 돌려봐야 한다.
당시 영국은 국제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하늘은 새들의 영역이며 사람은 사슴이나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없을 거라 여겼던 인식은, 영국이 인류에 선물한 제트 엔진과 기차의 발명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산업 혁명 이후 세계 곳곳에 건설한 식민지, 그 식민지에서 생산된 물건들을 관리하기 위해 설립한 동인도 회사, 아편 전쟁의 승리로 얻은 홍콩까지. 영국의 상업적, 정치적, 군사적 위력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영국이 승기를 잡지 못한 영역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문화였다. 유럽 대륙에서 탄생한 문화가 섬나라 영국에 가장 늦게 전달되면서, 영국은 문화적 변방이라는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예술사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는 나라, 문화적으로 뒤처진 나라라는 오명은 영국에 따라붙은 그림자였다.
변화가 일어난 건 그 무렵이었다. 경제 성장이 폭발하자 자연스레 영국인들의 지적 호기심에 불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문화적 변방이란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사회적인 노력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는 계몽주의 사상과 맞물리며 영국에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탄생시켰다. 그러고는 국민의 문화적 소양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만들었기에 뮤지엄을 무료로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료라고 해서 퀄리티가 떨어질 리 만무하다. V&A 뮤지엄에는 다비드 상을 포함해 대표적인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복제되어 있어 여러 뮤지엄에 퍼져 있는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 미술관에서는 13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작품을 시대순으로 전시해 미술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월레스 컬렉션에서는 프랑스의 그 어느 미술관보다도 18세기 프랑스 주요 화가들의 회화와 장식 예술품, 고급 가구 등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이제서야 보이는 런던의 뮤지엄〉에서는 V&A 뮤지엄, 국립 미술관, 월레스 컬렉션 등을 포함해 런던을 여행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11곳의 뮤지엄을 소개한다. 20여 년간 런던에서 뮤지엄 해설을 진행해온 저자가 공간적, 작품적, 역사적 관점을 넘나들며 뮤지엄에 대해 설명하기 때문에, 모르고 런던에 갔다면 보이지 않았을 것들이 이제서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쯤에서 생기는 궁금증. 그렇다면 영국은 이러한 노력으로 문화적 변방에서 벗어났을까? 2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뮤지엄을 대중에게 활짝 열어둔 덕분에, 20세기 말과 21세기 현대 미술을 이끄는 많은 예술가가 영국에서 배출됐다. 이처럼 영감의 원천이 되고 심지어 대부분 공짜이니, 런던의 뮤지엄을 경험하는 게 런던 여행의 가성비를 끌어올리는 방법 아닐까? 런던 여행의 가치를 더 높여줄 이 책과 함께 런던의 뮤지엄으로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