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 투자자, 노동자로서
시민이 알아야 할 한국 자본시장의 모든 것
한국의 자본시장은 한국에 살고 있는 누구와도 무관하지 않다. 은퇴 후를 책임질 국민연금이 한국인들과 무관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근간의 이슈들을 통해 자본시장의 문제들이 개개인의 삶과 얼마나 밀접한지 환기하고, 더 건전하고 투명한 자본시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함께 확인하는 건 의미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들어가며’ 중에서
자본시장은 정부와 기업을 위한 자금 조달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자본시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시민 개개인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 금리가 오르면 우리 집 대출 이자도 오른다. 내 포트폴리오 속 대기업 주식이 자회사 상장으로 갑자기 몇십 퍼센트가 빠진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해외 기업이 도산했다는 소식에 은퇴 후 삶에 대한 불안이 엄습한다. 이처럼 우리는 의식하든 않든 채무자, 투자자, 노동자로서 자본시장의 참여자다. 그렇기에 서울대 이관휘 교수는 자본시장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 시스템의 건전성이 곧 개인의 재산은 물론 삶 자체의 안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회사 상장 열풍, 공매도 부분 재개, 40년 만의 인플레이션 공포,
팬데믹 3년 경제 빅이슈들로 자본시장의 맥락을 읽다
SK바이오팜은 2015년 가격 변동 폭이 30%로 확대된 이후 코스피 사상 처음으로 상장 첫날 따상에 이어 이튿날 상한가를 기록한 종목이 되었다. 당연히 우리사주를 배정받은 임직원과 공모가에 주식을 배정받은 투자자들에 대한 부러움 섞인 탄성이 쏟아졌다.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단 하루 동안 160%, 이틀 사이에 237%에 달했으니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그런데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장 첫날 가격이 그렇게 높게 형성될 주식이었다면 왜 굳이 공모가를 턱없이 낮은 가격인 4만 9000원으로 책정했을까?-‘6장 SK바이오팜의 공모가는 왜 그렇게 낮았을까’ 중에서
시사인에 연재된 글을 바탕으로 한 이 책에서 저자는 근간의 경제 이슈들을 통해 한국 자본시장의 면면을 살핀다. 팬데믹을 겪으며 자본시장은 급변을 거듭했다. 코스피 지수는 폭락과 폭등을 반복했고, 40여 년 만에 인플레이션 공포가 찾아왔다. 이 시기 다양한 사건들을 이야기 읽듯 따라가다 보면, 한국 자본시장의 기본 작동 원리는 물론 그 문제점까지 맥락이 잡힐 것이다.
예컨대 저자는 이른바 ‘동학개미’들이 변덕스러운 자본시장에서 왜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쉬웠는지, 그 심리 편향을 살핀다. ‘처분 효과(가격이 오른 주식은 지나치게 빨리 팔고 손해 본 주식은 지나치게 오래 보유하는 경향)’와 ‘사회적 전이 편향(정보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왜곡)’ 등 투자자로서 내가 저질렀을 법한 실수를 목격하는 과정에서 어느새 수익률과 위험, 적정 가격 등 투자의 기초까지 파악하게 된다. 이와 더불어 달러값 급등으로 알아보는 환율과 금리의 관계, 공매도 재개로 다시 확인하는 공매도의 역할 등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겼다.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모두의 자본시장’으로
더 건전한 자본시장을 위하여
한국의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아마도 투자자들이 정당하게 투자의 대가를 얻을 수 있도록 보호하는 장치들이 크게 미비하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전 세계에서 비슷한 점을 찾기 힘들 만큼 뒤떨어져 있다. 기업 경영의 많은 부분은 어떻게 하면 승계 작업을 비교적 무리 없이 진행해 족벌체제를 유지할 수 있느냐에 맞추어져 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 건 아예 자본시장의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피해를 본 투자자들을 구제해줄 법적 장치마저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21세기 선진국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4부 ‘그들만의 자본시장’을 넘어서 중에서
무엇보다 저자는 한국 자본시장의 구조적 한계에 주목한다. 변덕스러운 시장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는 개인이 배제된 채 거대 기업과 지배주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 자본시장의 민낯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구글도 비상장 자회사로 남아 있건만 왜 우리나라에서는 쪼개기 상장이 이토록 빈번한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마땅히 물어야 한다는데 산업재해는 왜 방치되는가? 사회구성원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에 대한 글로벌 논의가 이루어지는 와중에 왜 우리나라는 아직 주주를 위한 자본주의에도 이르지 못했는가? 저자는 “자본시장은 응당 탐욕스러운 투자자들이 모이는 곳이지만 탐욕과 반칙은 다르다. 반칙이 제대로 응징되어야만 시장에서 탐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초 지식은 물론 그 비틀린 흐름을 읽어내는 비판적 시각까지 길러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