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정요』,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
한·중·일의 고전에서 발견한 사유의 충돌과 융합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사유의 충돌과 융합』은 한국, 중국, 일본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깃든 다원주의적 가치관을 살펴본다. 그 기원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치열하게 충돌하고 융합했던 고대 동아시아의 시대정신이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 문화재청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동시에 역사학자로서 신화와 제의를 중심으로 한국고대사를 연구해온 최광식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이 시대에 필요한 소통과 화합의 가치를 우리 문화 속에서 다시 끌어내기 위해 이 책을 집필했다.
『사유의 충돌과 융합』은 7세기 이후 유ㆍ불ㆍ선의 치열한 충돌과 융합을 겪었던 동아시아의 생생한 현장을 바라본다. 한국, 중국, 일본은 삼교(유교, 불교, 도교)가 부딪히고, 합쳐지고, 조화를 이루는 과정을 겪으며 점차 하나의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했다. 저자는 고대 한·중·일의 지식인들이 당시의 시대를 각자의 방식으로 담아냈던 서적을 통해 뜨겁게 폭발했던 ‘동아시아 사유의 용광로’에 접근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각국의 고전에 기록된 사유의 충돌과 각 융합의 흔적을 드러내는 데에 주목했다. 중국 당나라의 오긍이 집필한 동아시아 제왕학의 교과서였던 『정관정요』를 통해 유교를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퍼져나간 동아시아 가치관의 기틀을, 신라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 고려 김부식과 일연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나라 삼국의 문화와 사상적 흐름을, 일본의 역사서 『일본서기』를 통해 사상의 수용을 통해 국가의 틀을 갖춘 일본을 돌아본다.
7세기 점차 하나의 세계를 형성한 한·중·일
당나라와 일본, 삼국과 통일신라를 아우르는 사상적 지형
당나라의 오긍, 신라의 최치원, 고려의 김부식과 일연, 일본의 도네리 친왕은 서로 다른 시기를 살았지만, 그들의 서적에는 유교, 불교, 도교가 충돌하고 융합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기원전 중국에서 발흥한 유교와 도교의 사상계에 1세기 이후 외래종교인 불교가 유입되며 삼교는 충돌과 융합의 과정을 겪었다. 이후 삼국시대의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삼교를 받아들이고, 아직 국가의 틀을 갖추지 못한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유교와 불교를 받아들였다. 중국에서 시작된 삼교의 융합이 점차 한국과 일본으로 전해져 하나의 동아시아 문화를 이룬 것이다.
세 사상이 처음부터 조화를 이루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삼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치열하게 경쟁했으며, 이해관계에 따라 탄압하고 탄압받았다. 도교를 국교로 삼은 당나라에서는 통치이념의 핵심이었던 유교와 민간에 널리 받아들여진 불교가 영향력 싸움을 벌였고, 삼국과 통일신라 시대 역시 삼교가 서로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경쟁했다. 일본 역시 유교와 불교의 수용을 통해 국가의 기틀을 갖추었으나, 사상 수용에 따른 잡음을 겪은 후였다. 삼교는 어떻게 충돌을 마치고 조화를 이루었을까? 이 책은 유교, 불교, 도교가 세 국가에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했는지를 고전의 기록을 통해 세세하게 살핀다.
동아시아 의식의 저변이 된 다원주의의 기원
통치이념의 유교, 내세 기원의 불교, 개인 수양의 도교
【유교】 사회윤리로서의 통치이념
유교, 불교, 도교는 충돌을 겪으며 각자 고유한 영역을 구축해 나갔다. 당나라 오긍의 『정관정요』는 당태종이 신하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으로, 유ㆍ불ㆍ선이 갈등하고 융화하며 만들어진 동아시아 특유의 통치의식이 드러난 고전이다. 『정관정요』는 시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중국을 넘어 통일신라와 일본의 통치지침서로 기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관정요』에서 드러나는 유교적 가치는 동아시아 세계의 포괄적 의식의 바탕이다.
유교는 한반도에 3~5세기경 수용된 이후, 줄곧 삼국과 통일신라의 통치이념으로 기능했다. 신라의 최치원과 고려의 김부식 역시 유학자였다. 최치원은 신라의 토착신앙을 기반으로 유ㆍ불ㆍ선을 아우르는 이상을 남겼으며, 김부식은 유교적 입장에서 삼국의 흥망을 교훈주의적 색채로 담아냈다. 일본 역시 백제를 통해 유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완성해 나갔다. 이와 같이 유교는 동아시아 세계를 아우르는 분명한 정치 이념이었다.
【불교】 내세를 향한 기원
기원전 중국에서 발흥한 유교와 도교와는 다르게,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1세기 이후 중국에 전해졌다. 다양한 경전들이 번역되었고 활발한 교리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왕과 부처를 동일시하는 ‘왕즉불’ 사상이 유행하기도 하는 등 중국에 깊게 뿌리내렸다. 당나라에서 유학, 관직 생활을 했던 최치원의 『계원필경』과 『사산비명』에는 불교를 숭상했던 당대의 사회 분위기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하지 않는 유교와 달리 불교는 ‘내세를 향한 기원’을 위한 신앙으로 받아들여졌다.
불교는 한반도에 유교와 비슷한 시기인 3~5세기경 수용되었다. 유학자였던 김부식이 신라 패망의 원인으로 불교의 폐단을 꼽을 만큼, 한반도에 뿌리내린 불교는 화려한 제의와 함께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김부식과는 달리, 승려였던 일연은 불교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원나라 간섭기의 일연은, 우리나라 특유의 ‘호국불교’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민족의 화합과 통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일본 역시 불교의 수용을 통해 중앙집권화의 바탕을 이루었다. 이처럼 불교는 내세에 대한 신앙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친 사상이었다.
【도교】 개인의 수양과 양생
도교는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하나의 축이다. 흔히 신선을 신봉한다고 하여 선교(仙敎)라고 불리기도 하는 노자의 도교는, 유교와 함께 기원전 중국에서 발흥했다. 당나라는 왕조의 정통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노자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도교를 국교로 삼았고, 개인의 수양과 양생을 위한 생활신앙으로 기능한 도교는 민간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최치원의 『계원필경』에 최치원이 직접 작성한 도교 제문 등이 수록되어 있을 만큼 도교는 생활화되어 있었다.
도교는 유교와 불교만큼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민간의 깊은 믿음 속에서 꾸준하게 사상의 맥을 이어 나갔다. 신라의 제사 제도에 도교의 영향이 배어 있으며, 신라에 내려오는 가르침을 통합한 ‘풍류도’에서 도교의 가치는 중요한 축이었다. 퇴직한 관리들이 산으로 은거하며 살아갔던 모습 또한 도교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토착신앙과 함께, 도교는 자연스러운 생활신앙이었던 것이다. 이렇듯 삼교는 서로 충돌하고,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고, 다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점차 융합되어 갔다.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이 책은 1~8세기 고대 동아시아 사상의 흐름을 생생히 조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진행된 삼교 융합의 흐름을 직접 인용된 고전의 문장을 통해 접할 수 있다. 고전의 기록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의미를 더 깊고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무위지치, 군신일체, 정명론 등 다루는 내용의 주요 키워드들을 별도로 구분해놓았기 때문에 중요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 치열한 사유의 충돌과 융합을 겪은 동아시아를 직접 느낄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서적들은 그 자체로도 고전이지만, 전문가의 해설 속에 더욱 입체적 의미를 드러낸다. 삼교의 충돌과 융합이라는 고유한 관점을 통해 그간 고전이 드러내지 않았던 의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한다. 저자는 하나하나 빛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던 고전 『정관정요』, 『계원필경』, 『사산비명』,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를 하나의 관점에서 뚜렷하게 꿰어낸다.
극심한 갈등을 앓는 오늘날 되새겨야 할
소통과 화합의 가치
동아시아를 만든 세 가지 생각인 유교, 불교, 도교는 오늘날 우리의 문화적 토양을 이룬 중요한 축이다. 때로는 과거의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는 우리 전통 사상을 다시 돌아봐야만 하는 까닭은, 동아시아 의식의 오래된 용광로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소통과 화합의 가치가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고전에 생생히 기록된 동아시아의 시대정신은 단지 박물관이나 서고에서 낡아갈 수 없다. 그 안의 가치들을 되새겨 읽을 때, 고전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을 다채롭게 드러낸다.
저자는 유교, 불교, 도교의 충돌과 융합이 기록된 고전들을 폭넓게 해석하며, 이 시대에 중요한 가치들을 다시 되새긴다. 유교의 가치를 통해 “공정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공정하지 못한 지금의 정치인들”에게 성찰을 촉구하고, “말만 가득한 ‘내로남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다시 새길 가치를 제시한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단합했던 불교의 가치와, 일상의 기반이 되었던 도교의 제사 문화 속에서 풍부하게 꽃피는 문화의 힘을 돌아본다.
무엇보다 동아시아 시대정신의 강력한 힘은 상생에 있다. 유ㆍ불ㆍ선의 각기 다른 사유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며 우리 문화는 소통과 화합의 가치를 꽃피웠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의식의 저변을 이루는 다원주의적 사상, 종교문화의 시작점을 거슬러 가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지금 우리의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가’하는 깊은 질문을 남긴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치를 먼 곳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있던 우리의 가치를 회복해야 할 뿐이다. 지금, 동아시아 상생의 시대정신을 돌아본다.
▶ 시리즈 소개
시대정신으로 읽는 지성사, ‘역사의 시그니처’
국내 최고 연구자들의 입체적 해설로 만나는 인문 앤솔러지
‘역사의 시그니처’는 기원전부터 현대까지 각 세기의 대표적 시대정신을 소개하는 인문 교양 시리즈입니다. 한 시대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들을 엄선해 그들이 남긴 말과 글을 소개하고 인류의 사상이 어떤 갈래로 이어져 왔는지 살펴봅니다.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시대별로 어떻게 충돌하고 융합되어 오늘의 21세기를 만들었는지 ‘역사의 시그니처’ 시리즈를 통해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