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인재 확보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
새로운 HR 전략으로서의 유연근무
근무 제도는 이제 인재들이 ‘연봉 다음으로 중요하게 보는 조건’이 되었다. 2022년 5월, 전면 재택근무를 중단하고 주1회 이상 사무실에 출근하게 한 애플에 반발해 구글로 옮겨간 개발자 이언 굿펠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머신러닝 전문가로 유명한 그를 구글에서 힘들게 ‘모셔온’ 애플이 근무 제도 때문에 다시 빼앗긴 것이다. 연봉에 큰 차이가 없다면 유연한 업무 환경에서 근무하며 ‘워라밸’을 지키는 삶을 선택하는 게 요즘 인재들이다.
‘엔데믹’에 들어섰는데도 구글과 MS 등 대표적인 IT기업들이 재택근무를 기반으로 한 ‘하이브리드 근무’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플과 메타 등도 재택근무를 철회하고 직원들에게 사무실로 나올 것을 요구했지만 이 역시 일주일에 3일로 전면 출근은 아니다. 인재를 확보하는 동시에 이탈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유연근무(flexible work, 근무 공간뿐 아니라 근무 시간에도 완전한 유연성을 부여하는 근무 형태. 스마트워크, 원격근무, 재택근무, 하이브리드 근무 등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 제도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미 세상은 변했다.
《그들은 왜 사무실을 없앴을까》는 슬랙(Slack), IBM, 리바이스, 보스턴컨설팅그룹, 델 등 다양한 기업이 팬데믹을 계기로 유연근무제를 기업 문화로 정착시키기 위해 분투한 과정을 담고 있다. 기업용 디지털 협업 툴로 유명한 슬랙은 개발하는 제품 특성상 원래부터 업무 환경과 일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주목해온 기업이다. 그러다가 팬데믹으로 인해 유연근무의 효용을 전사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슬랙은 본격적으로 이 방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컨소시엄 퓨처포럼(Future Forum)을 설립하여 미래의 업무 방식과 환경에 대해 여러 회사들과 실험을 실행했다. 이 책은 그 결과물이며, 세 명의 공저자는 퓨처포럼의 임원진이자 슬랙에서 리더로 일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조직에 맞는 유연근무는 어떤 형태일까?
실험과 투자를 통해 맞춤형 근무 제도를 찾아라
유연근무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팬데믹 기간 동안 대부분의 기업은 재택근무를 경험했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도 생산성을 유지했고 직원들의 만족도 역시 높았지만 많은 회사가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갔다. 왜일까?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기업과 조직의 특성에 맞는, ‘진정으로 유연한’ 근무 제도를 설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연근무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해서 모든 회사가 재택근무를 해야 할까? 현장에서 작업해야만 하는 분야도 있다. 팬데믹 기간에 도입한 재택근무가 다 유연근무였을까?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카메라를 켜놓고 일하라고 지시했다면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하는 것보다 더 엄격한 감시를 받은 셈이다.
유연근무는 직원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재량을 주고 각자 가장 잘 맞는 방식으로 일하게 해서 최선의 성과를 거두게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자유와 재량을 주지 못했거나, 결과적으로 성과를 낼 수 없었다면 유연근무가 아니다.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하는 장소=사무실’, ‘일하는 시간=9시 출근 5시 퇴근’이라는 낡은 개념에서 탈피하여, 최적의 근무 장소와 시간을 설계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유연근무다.
따라서 유연근무를 제대로 설계하려면 조직의 목표에 맞는 근무 형태를 찾아서 적용해보고 수정해야 한다. 퓨처포럼에 참여한 기업들 역시 적절한 근무 형태를 찾아가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예를 들어, 팀원들이 매일 서로 연락하고 협력해야만 하는 드롭박스는 근무 시간을 바꿨다. 자기들만의 ‘협업시간’과 ‘개인별 집중근무시간’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직원들이 전 세계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그 시간도 각기 다르게 설정했다. 미국에 사는 직원들과 아시아에 사는 직원들의 협업시간을 각기 다르게 설정하게 하고 개인별 집중근무시간은 팀별로 알아서 정하게 했다. 한편 캐나다왕립은행은 근무 장소를 오히려 제한했다. 하이브리드 근무를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우면서도 직원들에게 ‘사무실에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에 거주할 것’을 권장하는 원칙을 정했다. 은행 특성상 지역사회와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기업 문화의 핵심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IBM, 리바이스, 아틀라시안(Atlassian), 델 테크놀로지스, 제넨테크(Genentech), 세일즈포스(Salesforce), 보스턴컨설팅그룹 모두 수십 번의 수정을 거쳐 자기 조직에 맞는 유연근무 제도를 만들어갔다. 진정한 유연근무의 모습은 그것을 실시하는 회사의 수만큼 다채롭다.
본사를 디지털 공간으로 옮기고 임원부터 사무실에 나가지 마라
풍부한 사례와 7단계 툴로 완성하는 미래의 일하기 방식
저자들은 다양한 사례를 종합하여 유연근무를 효과적으로 도입하는 데 필요한 7단계 방법을 제시한다. CEO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합의한 유연근무 원칙을 정하는 1단계부터 완전히 성과로만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7단계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 따라가며 각자의 근무 형태를 완성할 것을 제안한다. 부록에는 실제 기업들이 사용했던 양식들을 제공한다.
눈길을 끄는 건 2단계와 5단계다. 2단계에서는 ‘공정성’을 강조한다. 즉,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믿음과 업무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을 직원들에게 줘야 유연근무가 뿌리내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원부터 사무실에 출근하지 말아야 한다. 슬랙은 ‘임원진 출근일수 제한’ 제도를 도입했다. 임원은 일주일에 사흘 이하만 출근할 수 있고, 그 목적이 팀 행사나 고객 미팅인 경우로 제한하는 제도였다.
5단계에서는 ‘유대감’을 강조한다. 유연근무를 원하는 인재라고 해서 유대감과 소속감을 원치 않는 건 아니다. 인간은 자기보다 더 큰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만족감이 커지고 업무 성과도 높아진다. 유대감을 놓치지 않는 새로운 업무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저자들은 ‘디지털 본사’를 세우라고 권한다. 디지털 기술이 업무 전반을 주도하고 있는 지금, 사무실 역시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가야 한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본사는, 주로 수도나 대도시에 자리하기 마련인 물리적 본사보다 연결 문화를 강화한다.
마지막 7단계에서는 완전하게 성과로만 평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법을 논한다. 가장 중요한 건 임원이나 관리자뿐 아니라 직원들도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즉 “유연근무를 하면 직원이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에 퓨처포럼에 소속된 한 기업의 임원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응수했다. “사무실에 출근하던 시절에는 직원들이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았나?”
결국 성과를 제대로 측정하면 일하는 장소와 시간은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 저자들은 ‘활동’이 아닌 ‘결과’에 초점을 둔 측정 지표를 사용하라고 권한다. 생각보다 많은 기업들이 활동(근무 시간, 수정한 버그의 개수, 소셜 미디어에 올린 게시물 수, 잠재고객과의 통화 횟수 등) 여부로 성과를 측정하고 있다. 이보다는 ‘방문자 유입량을 최대 5퍼센트 높이라’처럼 구체적인 목표를 주고 달성 방법을 자유롭게 실험하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 전환은 조직 내 모든 직급을 대상으로 전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임원, 관리자, 직원 중 어느 한 단계라도 빠지면 이러한 평가 방식은 성공적으로 뿌리내릴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