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 왜 문제인지를 묻기 위해
물질 담론과 현실 양 측면에서 고찰한다
어떤 물질을 혐오한다는 것은 그 물질에 대해 위협과 공포를 느끼고 부정적인 관계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더러운 쓰레기를 눈에 보이지 않도록 멀리 치우듯이, 그 물질도 사람의 시선 바깥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는 물질 담론이 정신과 물질을 이원론으로 구분해 온 이론적 관습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물질이라는 말은 본래 과학 및 기술에서 쓰이는 말이고 일상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기에, 이 책에서 물질 혐오 담론은 물질이 무엇인가라는 논의에서 시작한다. 물질을 문제시하기 전에 물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대와 근대 유물론에서는 물질을 정신과 대립한 것으로 여기거나, 정신의 산물 또는 결과물로 생각했다. 헤겔의 관념론이든 엥겔스의 유물론이든 분명히 물질을 혐오하는 이론적 관습이 있어왔다. 물질 담론의 토대는 정신/물질 이원론을 비판하는 탈근대주의 유물론과 유물론의 계보를 잇는 신유물론의 새로운 시도 사이에 논의 지형이 그려지고 있다.
이러한 담론을 한편에 두고, 현실 세계에서 물질은 그저 물질이다. 그 자체로 혐오스러운 물질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물질이 눈앞에서 사라지면 혐오하는 감정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혐오했던 기억과 그 존재가 실재성을 갖게 된다. 즉, 물질이 인간과 사물과 상호 작용하고 관계를 맺음으로써 비로소 혐오스러운 존재가 된다. 이 책에서는 물질 혐오의 현실을 다음 다섯 가지 주제로 선정했다. 지구와 자연 환경의 위기를 일컫는 인류세, 인류의 임계를 상상하고 인간-비인간이라는 혼종의 신체 변형, 공포와 혐오의 정치적 자원이 된 전염병, 생명 정치에서의 혐오 메커니즘, 혐오의 미학으로서 이미지에 관한 글을 통해 물질 혐오의 담론과 실제에 대한 핵심적인 고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총 2부, 10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제1부 ‘물질 담론들과 혐오’에서는 신유물론과 사변적 실재론에서 물질의 존재론적 의의와 물질적 전회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제2부 ‘물질 혐오의 현실’에서는 물질 혐오의 핵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인류세, 신체 변형과 사회적 혐오, 혐오의 이미지를 다룬다.
제1장 「물질 혐오와 포스트휴먼 유물론: 평평한 존재론을 중심으로」에서 박인찬은 근대에 의해 혹은 인간주의에 의해 억압받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물질에 존재론적 권리를 돌려주고 인간과 비인간의 포스트휴먼적인 관계에서 내재성의 평면에 재배치된 물질 존재를 재차 확인한다.
제2장 「다양한 객체들의 행위자네트워크와 물질 혐오」에서 이준석은 사변적 실재론의 객체를 유형화하려고 시도한다. 하이퍼오브젝트, 나노객체, 파사드 객체, 패러독스 객체, 보조 객체의 행위자네트워크 작동은 객체들과 그 객체 회집체의 관계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제3장 「레비 브라이언트의 객체지향 존재론에서 물질 혐오」에서 이재준은 물질 혐오는 관계 양상이고 네트워크로부터 ‘물러나 있음’을 관계 존재론에서 재구성한다. 여기에서 혐오스러운 것으로 현실화된 물질마저도 그 잠재성에서 다양체로 표현될 수 있다.
제4장 「인류세를 혐오할 때: 티머시 모턴의 거대사물과 인류세」에서 이동신은 인류세를 바라보는 이런 인간적인 부정적 태도들을 살피면서 시작한다. 이때 물질 혐오는 인류세와 인간 객체의 관계에서 불안과 분노, 의심과 혐오로 드러난다.
제5장 「물질이 물의를 빚고 우리가 실재와 만날 때: 캐런 버라드의 행위적 실재주의로 본 물질과 실재」에서 이지선은 사물들이나 객체들의 상호 작용을 버라드의 사이-작용 개념에서 파악한다. 양자 역학이 존재를 미규정적인 것으로 보듯, 사물들은 행위의 얽힘 과정에서 물질/비물질로 결정된다.
제6장 「‘인류세’적 신체 변형 서사와 휴먼의 임계점: 도리시마 덴포 『개근의 무리』를 통해」에서 신하경은 동일본 대지진과 지구 온난화와 같은 인류사의 파국적인 국면을 SF 서사를 따라가며 분석한다.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인간-비인간의 종 간 횡단과 그로 인해 혐오스러운 신체로 변형된 새로운 인간은 대문자 인간의 위선과 폭력을 해체한다.
제7장 「‘균(菌)’, ‘음(音)’, ‘문(文)’의 상상력과 팬데믹의 정치」에서 임태훈은 스페인 독감이 대유행했던 1918년 무렵 조선에서도 발생한 전염병과 소요 사태를 다룬다. 바이러스라는 미시적인 비인간 타자와 인간 감염자가 공포와 혐오를 관통하는 상상의 장치들을 통해 정치적 자원으로 치환되는 방식을 분석한다.
제8장 「‘공해의 원점’에서 보는 질병 혐오」에서 유수정은 독성 물질에 노출된 신체 손상과 변형, 그리고 거기에 가해지는 사회적 혐오를 다룬 소설 『고해정토: 나의 미나마타병』을 해석한다. 전후 일본의 산업화 과정에서 수은에 중독된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고통과 그들에 대한 공적 대처, 그리고 사회적 편견도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생명 정치가 혐오의 메커니즘을 정교하게 사용하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9장 「성형, 몸에 대한 혐오에서 몸 이미지의 과학으로」에서 임소연은 물신화된 신체 이미지가 의료 산업에서 자본화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성형 의료는 진단과 치료로만 이루어진 단일한 과학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 시대 의학은 이런 회로를 현실의 신체에 구현한다.
제10장 「광기 이미지와 혐오의 문제」에서 한의정은 광기를 형상화하는 시각 문화의 형식들을 살핀다. 광기 이미지는 알레고리의 방식으로 제시되던 시기부터 의과학의 데이터로 사용되는 시기까지 지식-권력의 메커니즘에서 작동한다. 차별적인 혐오 생산을 정당화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이미지의 역사는 광기와 같은 타자성이 마침내 인간 안에 내재한다는 것을 폭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