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에 고착된 인간에게 삶의 의지를 돌려주려 한 오랜 노력
실패한 의학의 역사와 인간학적 진실
멜랑콜리는 검은 담액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melancholia’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는 곧 흑담액과 그 파생물 혹은 파생관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를테면 고대인들은 비애와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 안에 흑담액이 흐른다고 상상했다. 과거 의학계는 흑담액은 혈액, 황담액, 점액과 마찬가지로 몸의 자연적 체액을 구성하는 요소로, 흑담액의 과잉이나 질적 손상이 생길 때 멜랑콜리가 발현된다고 보았다. 이 문화적 상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치료법으로 하제를 이용하여 흑담액을 몸에서 배출시키거나 물리적 화학적 작용으로 흑담액에 작용하는 방법들을 고안해 냈다. 멜랑콜리를 검고 질척이며 부식되는 흑담액이라는 액체로 표상하는 관습은 일견 보편적이고 타당해 보인다. 이 내적인 논리가 지니는 보편성과 타당성으로 인해 멜랑콜리는 인간에 대한 유럽적 사유를 이루는 주요 전통이 되었다. 그러나 흑담액 이미지에 기초한 의학적 처치들이 비과학적인 의학의 관성이라는 손쉬운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 된다. 같은 처방의 반복일지라도, 처방의 근거를 통해 질병에 대한 각 시대 고유의 해석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문학사를 수놓은 의학사,
의학사에 아로새겨진 문학사
멜랑콜리를 설명하는 문학과 의학이라는 양대 축
장 자크 루소에 대한 문학 박사학위 논문과 멜랑콜리 치료사에 대한 의학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한 후 문학 연구의 길을 택한 스타로뱅스키의 지적 여정은 이 책을 이해하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에서 의학사상가와 더불어 몽테뉴, 라퐁텐, 볼테르, 루소, 괴테, 보들레르에 이르는 수많은 문학가들 명단을 확인할 수 있다. 스타로뱅스키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주요 의학사상가들과 문학가들을 거론하며, 유럽 문화와 문학에 깊이 뿌리내린 멜랑콜리와 정신의학의 사유를 추적한다. 이 책은 일견 겸손한 의학서를 자임한 듯 보이지만,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를 가능하게 하는 토대를 문학사와 의학사에 양분함으로써 폭넓은 통찰을 제공한다. 즉, 저자는 문학사를 검토하며 멜랑콜리가 좁은 분과의 대상이 아니라 고대부터 이어진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일반적 문제임을 밝힌다. 동시에 이 이해 불가능한 유한성을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 인위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관계로 구조화함으로써 의학의 지위를 지정하고 문학과 의학사의 내재적인 관련성을 검토한다.
멜랑콜리 역사가 아닌,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
본질적으로 이 책이 전제하는 것은 멜랑콜리의 역사가 아니라 멜랑콜리 ‘치료’의 역사이며, 멜랑콜리라는 정신의 상태를 신비화하지 않고, 그에 수반되는 인간의 작은 노력들을 강조한다. 가령 중세 의사 아프리카인 콘스탄티누스의 멜랑콜리 치료제 제조법에서 아페리티프 레시피를 발견하고, 괴상한 예술혼과 정신이상자들에 대한 지배욕을 ‘사이코드라마’로 실현하는 사드와 그에 당황하는 사회를 목격하자면 인간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소상한 노력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므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인 멜랑콜리는 초월적 저주가 아니라 병의 형태로 현상하는 본질이며, 바로 이때 우리는 언어와 문화적 상징으로 대응하는 인간적 노력을 맞세울 수 있다.
척도와 구성
신체를 이해하는 척도를 통해 부분과 전체의 구성,
유기체 내부와 외부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