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변방의 일개 용병대장인 오도아케르가
천 년 이상 서양 고대사를 독점해온 로마제국,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킬 수 있었을까요?
카이사르가 마침내 루비콘강을 건너고, 옥타비아누스가 서른다섯 나이에 원로원의 만장일치로 아우구스투스, 최고 존엄에 오르며 세운 제국의 영광이 아직 남아있는데. 그 제국을 위해 땀과 피를 기꺼이 바친 로마의 영웅과 시민들의 영혼이 여전히 숨 쉬고 있는데.
우리의 어렴풋한 공부 기억에는 ‘용병대장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켰다’는 단문 정보뿐입니다. 오도아케르가 누구인지? 그래서 로마는 어떻게 망했는지? 그 과정에 어떤 사건들이 있었고, 어떤 인물들이 등장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도
“로마제국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고
허탈해했습니다.
지금부터 로마제국이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드는 그 씁쓸한 뒷모습을 추적해 볼까 합니다. 어쩌면 로마제국의 화려했던 천년의 역사보다 시오노 나나미가 표현한 대로 ‘시시껄렁한’ 그 순간에 더 많은 인사이트가 그 빛을 숨기고 있을지 모릅니다.
프로와 아마의 차이는?
동로마 재상 크리사피우스는 훈족의 영웅 아틸라의 콘스탄티노플 침공을 왜 시대의 변화로 읽지 못하고 아틸라 개인의 일탈로 해석했을까?
상황에 매몰된 자의 사고는 전후 1cm다. 세상의 모든 사건을 꼬리와 꼬리를 연결하는 바로 앞 꼬리와 뒤 대가리만 보고 판단한다. 한 발 물러나 그 사건이 위치하는 시대와 역사의 좌표를 찾으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몰라서가 아니다. 그것은 두려워서다. 현실에 익숙하고 편해서다. 다르게 본다는 것, 그래서 자신을 객관화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불편하다. 주변에서는 다 아는데 자신만 못 보는 경우가 있다. 시대의 흐름도 처지에 따라 보인다. 세상의 그릇 차이도 거기에서 갈린다.
훈족의 영웅 아틸라와 마지막 로마인 아에티우스의
시대를 건 승부, 카탈라우눔 전투
훈족의 영웅 아틸라는 마지막 로마인 아에티우스가 진격해오자 카탈라우눔 평원으로 전선을 옮긴다. 제대로 붙자는 거다. 바로 이 평원에서 훈족의 아틸라와 서로마 제국의 아에티우스의 진검승부가 펼쳐진다.
이 전투를 고대를 깨려는 이민족 영웅 아틸라와 고대를 지키려는 로마의 마지막 영웅 아에티우스가 시대를 걸고 벌인 한판 승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역사는 이 승부를 카탈라우눔 전투로 기록한다.
제대로 된 선수끼리 벌이는 승부에서 승리는 승자의 행운이고 신의 은총일 뿐이다. 결코 승자의 능력이나 전력의 절대적 우위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행운과 은총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자만이 화를 불러올 수 있다.
로마제국은 이렇게 멸망했다.
야만족이라도 쳐들어와서 치열한 공방전이라도 벌인 끝에 장렬하게 무너진 게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없었고, 처절한 아비규환도 없었다.
이탈리아 반도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황제가 사라지고, 총독만 남고, 서로마 제국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이탈리아 왕국, 오도아케르 왕국이 들어선다. 오도아케르는 단지 서로마 제국의 실권자가 된 것뿐인데, 그때와 달리 서로마 제국의 문패가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다.
이 역사적 사실을 오도아케르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단지 스스로 황제에 오를 수 없었기에 선택한 대안쯤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꼭두각시 황제를 옹립하고 그 뒤에서 실권을 행사하는 일이 구차하고 골치 아파 그런 형식과 절차를 포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가 내린 이 실용적이고 편의적인 선택으로 천년왕국 서로마 제국이 역사에서 사라지는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그로부터 2천 년 동안 ‘서로마 제국을 멸망시킨 게르만족 용병대장 오도아케르’로 회자할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