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일을 세계 중심 국가로 일으켜 세운 원동력은 무엇인가?
역대 총리들의 정책 리더십으로 본 독일 정치의 저력
현대사에서 독일만큼 극적 반전을 보여준 나라가 있을까? 독일은 두 번이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학살 등 씻기 어려운 만행을 저질렀다. 그 결과 국가는 패망하고 국토는 분단되었으며 국제사회의 불신과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철저히 과거를 반성한 후 새로운 나라를 건설했다. 경제적 부흥과 통일을 이루어냈고 전범 국가로의 오명을 떨쳐버리고 국제적 신뢰를 얻었다. 그리고 세계사적 격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하나의 독일을 이루었다. 통일의 혼란과 후유증을 치유하며 새로운 번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로서, 그리고 세계 평화의 중재자로서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떻게 이 모든 일이 가능했을까?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한 퇴임은 한국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또한,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후 독일의 총리들은 독일 국민에게 깊은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실제로 독일인을 대상으로 한 ‘가장 존경하는 100인’ 여론조사에서 1위는 1대 총리 콘라트 아데나워였으며, 다른 역대 총리 5인도 100위 안에 포함되어 있다. 아인슈타인, 마르크스, 괴테, 루터, 구텐베르크,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등 독일의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 과학자들과 정치인이 똑같이 존경받는다는 사실은, 우리의 정치 현실과 비교했을 때 부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 불안정과 분단의 현실에 처한 대한민국은 독일의 정치에서 의미 있는 교훈을 찾아야 한다.
저자인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독일 정치의 저력을 독일 총리의 역할에서 찾았다. 역대 총리 8인 중을 집중 연구하여 먼저 출간한 책에서는 1~4대 총리의 정치 리더십을 집중적으로 다뤘고, 이어지는 이 책 『독일의 힘, 독일의 총리들2』는 5~8대 총리(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게르하르트 슈뢰더, 앙겔라 메르켈)를 다루었다. 이 시기는 독일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격변의 시기였다. 독일의 총리들은 이러한 파고를 넘어 독일을 통일과 번영으로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품격과 협치의 정치 리더십이 큰 힘을 발휘하였다.
김황식 총리의 독일 총리 연구는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인식과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에 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전범국 오명을 씻고 통일과 번영을 이루어낸 독일 정치에서 한국 정치의 변화 방향을 찾고자 했다. 2022년 1월 출간된 1권은 우리 정치도 대립과 갈등의 정치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하였다. 2권에 대한 기대도 높아졌다. 2권을 집필하는 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났다. 이 전쟁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 특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상대하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정책이나 리더십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었다. 저자는 독일의 대학에서 수학한 경험이 있고 총리 재임 시절부터 독일 정치권 인사들과 깊이 교류했으며, 독일 정부로부터 대십자공로훈장을 받은 바 있다. 한국의 국무총리로서 국정 운영에 관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의 정치를 분석한 점은 읽는 재미를 더한다.
권력 분산과 협력, 계승 진화의 독일 정치
통일을 이루고, 세계 평화의 중재자로 우뚝 서다
전후 독일의 정치제도는 과거에 대한 반성으로 재설계되었고 역대 총리들은 제 역할을 다했다. 그들의 계승되고 결집된 노력의 결과, 전쟁의 참화와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을 이룩해냈다. 독일 정치는 여러 면에서 강점을 보인다. 독재를 경계하기 위해 권력을 효율적으로 분산한다. 연립 정부 구성을 당연하게 여기며, 이념 차이가 큰 거대 정당끼리의 대연정도 성공적으로 구축한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이전 정부 정책을 단절하지 않고 계승하며 발전시킨다. 경제와 사회복지, 외교와 통일 정책의 성공은 이러한 장기적 축적의 산물이다. 그리고 오랜 경험을 갖춘 중후한 정치인들이 경륜과 소신을 바탕으로 장기 재직할 수 있는 풍토가 구축되어 있다. 이러한 정치 구조를 앞서서 이끄는 사람이 총리다.
헬무트 슈미트는 실용주의적 경제 노선과 일관된 외교 노선을 통해 독일 통일의 교두보를 놓았다. 그는 냉전 후반기, 위협이 증대되던 상황에서 안보의 원칙을 고집스럽게 유지하며 결과적으로 통일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헬무트 콜은 독일 통일을 완성한 총리이다. 그는 재임기에 통일이 이루어지라고 예상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급격한 정세 변화 속에서 냉철한 판단과 결단력을 발휘함으로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담대하게 통일의 시대를 열어나갔다.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통일 후 어려움과 혼란 속에서 ‘어젠다 2010(하르츠 개혁 등)’으로 대표되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거센 반발, 심지어 소속 정당 내부의 반대에 부닥쳤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이를 통해 재성장의 길을 열었다. 앙겔라 메르켈은 구동독 출신의 여성 정치인이라는 강한 상징성을 갖는다. 새로운 독일을 상징하는 새로운 인물이다. 그녀는 푸틴과 트럼프 등 권위주의 지도자들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맹렬하게 지킴으로써, 독일을 EU와 세계무대의 중심 국가로 만들었다.
독일 총리들은 역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았다. 또한 정파나 자신의 정치적 이해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정신에 맞는 소신과 비전을 갖고 국민을 선도하여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독일이 경제적 부흥과 통일, 평화와 번영의 길로 들어서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총리들의 리더십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대한민국의 정치를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가는 실로 중차대한 과제다. 이 책은 국가 발전 모델로서의 독일의 가치를 다시금 인식하는 계기이자, 대립과 혼란을 겪는 분단국가 한국의 정치와 사회에 큰 울림과 교훈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