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했던 산파와 조산사
산파와 조산사, 쇠락의 문화적 의미는 무엇인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한국사회 기준)은 병원에서 태어난다. 태어날 뿐만 아니라, 임신하기 전부터 예비 부모의 심신에 대한 케어가 병원 또는 그와 유사한 전문기관에서 시행된다. 임신이 된 이후에 출산, 그리고 산후 조리와 유아의 예방접종 등 모든 과정은 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이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가 아니라 ‘병원에서 병원까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주변에서는 산파 또는 조산사 간판이나 전단(전봇대에 부착된)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을 하는 사람은 이미 구세대에 속하겠지만, 산파나 조산사는 근대 시기에 급속도로 쇠락하여 소멸된 직업군 중의 하나인 셈이다.
출산은 인간의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죽음의 위험에 가장 무방비로, 그리고 가깝게 노출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인류 사회의 어느 공동체 집단을 막론하고 출산을 돕는 이들이 존재하였다. 지역과 시대를 따라 그 이름이 조금씩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산파와 조산사 등으로 호칭되면서, 때로는 존경받는 대상으로서, 때로는 기피와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도 극히 최근까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산파나 조산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통 사회에서도 긍정적 입장과 부정적인 입장이 대체로 병존하여 왔으나, 특히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근대적인 의료체제가 공적인 의료로서 자리매김하면서 급격한 가치전도 내지 몰락과 소멸의 길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는 근대 의료 체계가 도입되고 확산되는 시기와 속도에 따라 국가별,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경향성 자체는 일관된 흐름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산파-조산사가 몰락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역시 산과(産科)라는 근대적 의료부문이 성립하고 출산 부문에서의 권력을 획득하면서부터이다. 이는 출판 부문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병, 로, 사의 전 영역에 두루 보이는 일관된 흐름이라는 점에서 특이할 것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다만, 산파-조산사가 거의 전적으로 여성이었던 데 비하여, 초창기의 산과의사는 주로 남성이었다는 점에서 여성에게 특화된 출산에 관련된 조산 업무조차 남성 의사에게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이 나타난 점은 특기할 만한 사태이다.
오랫동안 출산은 하나의 의료적인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생명이 탄생하고 한 가문 또는 공동체의 후대 계승 작업이 진행되며, 하나의 ‘문화권의 확장과 심화’가 벌어지는 ‘의식이며 의례’와 연결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의례의 주관자 내지 전문가인 산파는 단순한 출산 조력자가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의 조정자라는 중대한 의미를 내포한 존재였다.
그러나 인류 사회의 발달과 더불어 (전통시대 기간 중에도) 의료의 전문화가 이루어지면서 산파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왔다. 이는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시기적인 차이는 있으나) 거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전 근대 의료 체계에서 근대 의료 체계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조산사라는 존재도 자리매김하였다.
전통시대의 산파가 나이 많은 여성으로서 오랜, 그리고 여러 차례의 경험에 기반하여 출산 조력자의 자리에 임했다면, 조산사는 사회적 필요에 의하여 단기간의 양성 교육 과정을 거쳐서 출산 조력자의 자격을 취득하고 조산(助産)에 임한 사람들이다. 이 또한 대체로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일관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근대로의 이행이 완결되면서 산파든 조산사든 그 자리를 산과의사에게 내어주고, 표면적으로는 역사의 이면으로 사라져갔다. 그와 더불어 출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적 맥락이 의료 체계 내에로 귀속되고 말았으며, 오늘날은 전문화·제도화·현대화 된 체계 내에서 출산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지역, 어떤 공동체에도 산파나 조산사가 담당했던, 출산과 관련한 ‘의료 외적인 역할’ 또는 ‘넓은 의미의, 근본적인 의미의 출산의 의의’를 지탱하는 역할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는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특히 일본 사회에서는 여전히 ‘전문가로서의 산파’가 잔존하고 있기도 하다. 이는 사회 발달 정도나 단계에 따라 아직도 유력하게 산파나 조산사에 의존하는 지역이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산파나 조산사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아야 하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입지나 역할의 변천 과정은 단지 그 계층/직군의 변천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생애 과정의 출발점인 출산을 매개로 하여 인류 사회가 걸어온 길을 짚어 보는 바로미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 기획 :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HK+통합의료인문학연구단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인간 중심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통합의료인문학의 구축과 사회적 확산을 목표로 연구와 실천을 진행하고 있다. 의료인문학 지식의 대중화에 힘쓰고 지역사회의 인문학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역인문학센터 〈인의예지〉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