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철학, 경제학, 심리학 관점으로
‘표현의 자유’를 다시 생각하다
『라이어스』는 법학뿐만 아니라 철학, 윤리학, 경제학, 심리학을 포함한 폭넓은 분야의 연구물을 바탕으로 ‘표현의 자유’ 논쟁에 접근하며, 이를 보장하면서도 ‘거짓’이 초래하는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한다. 허위사실의 정도를 판별하기 위해 네 문제를 기본 틀로 설정하고, 헌법적 문제는 물론 소셜미디어 업체를 포함해 민간기관의 의무를 분석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기본 틀이 제기하는 네 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1) 발언자의 ‘의식 상태’는 어떤가? (거짓말인가, 합리적 실수인가) 2) ‘해악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심각한가, 경미한가) 3) ‘해악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확실한가, 개연성이 낮은가) 4) ‘해악의 발생 시기’는 언제인가? (즉시인가, 먼 미래인가) 이 질문들에 세세한 네 가지 가능성을 조합해 256개 ‘경우의 수’를 도출하고, 흔히 접하는 사례에서부터 익숙하고 대표적인 미국의 판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을 대입해 정부와 민간기관의 역할, 시민의 대처 방안에 대해 논한다.
나아가 인간이 왜 ‘진실 편향’에 빠지는지, 왜 ‘1차 정보’에 훨씬 주목하는지, 왜 ‘집단 극단화’ 경향을 보이는지 등 사람들이 허위사실을 쉽게 믿어 버릴 위험에 대해 지적하며, 현대 미디어 역동성에 관한 연구물과 기술의 발전(디프페이크, 합성 조작 영상 등)을 언급하며 그 심각성을 부각한다. 또 공리주의적 관점(존 스튜어트 밀, 마르틴 루터, 하이에크)과 칸트주의적 관점(칸트, 코스가드)을 들어 ‘거짓’의 부당성을 다채롭게 해석하는 등 ‘표현의 자유’ 논의를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는 풍성한 자료를 제공한다.
가짜뉴스, 혐오표현에 어떻게 맞설까?
저자는 “표현의 자유를 ‘어떻게’ ‘어느’ 범위까지 보장할 것인가” “‘왜’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해 섬세한 논의를 펼친다. “표현의 자유가 ‘위축효과(chilling effect)’를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 장치라면?”이라는 가정하에 “말하는 사람이 권력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게 중요하다”라고 언급한다. ‘위축효과’란 허위사실을 규제 또는 처벌하려는 노력이 그 과정에서 진실 또한 억누르는 효과를 말한다.
저자는 「수정헌법」 1조에 근거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면서도 허위사실의 해악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위축효과가 가리키는 지점을 찾기 위해, 과거 미국 사회에서 논쟁적이었던 ‘표현의 자유’를 과하게 보장한 판례(‘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 ‘미국 대 앨버레즈 사건’ ‘브랜던버그 대 오하이오 사건’ ‘거츠 대 로버트 웰치 주식회사 사건’)를 예로 들며,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한다.
현대 기술의 발전으로 순식간에 퍼질 수 있는 ‘가짜뉴스’에 대한 위험성을 고발하면서도 논의의 과정에는 「수정헌법」 1조를 늘 염두에 두고 이를 독자에게 각인하듯 상기시킨다. 정준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이 책을 평했다. “최악의 거짓말을 도려내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표현의 자유를 신실하게 옹호하는 모든 이들이 나서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저자는 “허위사실은 설령 거짓말일 경우에도 검열이나 규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로운 사회는 허위사실도 보호한다”라고 역설하며 공직자 또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진실 순찰대(truth police)’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며, ‘표현의 자유’와 ‘허위사실’을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고 “어떤 거짓을 법으로 보호하지 말아야 하는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거짓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이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공직자와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역할
『라이어스』는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면서도 허위사실의 확산을 최소화하는 최적의 위축효과를 찾기 위해, 표현의 자유 일반에 관한 기존의 주장을 검토하며 논의를 전개한다. 인간의 삶에서 진실과 거짓의 역할을 분석하며, ‘표현의 자유’와 동시에 ‘명예의 보호’ ‘공중보건’ ‘공공안전’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펼친다(1장). 이 관점을 더욱 세밀히 분석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개념 틀(표)을 제시하며 허위사실이 일으키는 해악의 규모, 해악의 가능성 등을 따진다. 정부가 사용하는 수단에 대해서도 주목한다(2장).
나아가 윤리적 측면에서 거짓말의 해악에 대한 공리주의적, 칸트적 관점을 구분해 표현의 자유를 검토한다(3장). 실례로 「미국 연방헌법」의 현 상황, 거짓말과 허위사실에 관한 법원의 주요 판결을 논의하고(4장), “허위사실을 도대체 왜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파고든다(5장). 이 문제를 심리적, 경험적 문제로 옮겨 사람들이 왜 허위사실을 믿는지, 왜 그렇게 빠르게 타인에게 퍼지는지를 다양한 연구물을 기반으로 분석한다(6장). ‘명예훼손’ 문제를 짚으며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라는 전통에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7장),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좀 더 현대적 관점에서 해로운 표현을 다룬다(8장). 업적 및 보건에 대한 허위 주장, 다른 사람에 대한 무고, 가짜 이미지를 만드는 첨단기술 사용 등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직자들의 역할을 강조하며, 방송국과 신문, 잡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허위사실의 폐해를 막기 위해 지금보다 더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9장). 공공기관이든 민간기관이든, 해당 표현에 대해 특정한 표시나 경고를 붙여 허위사실로 인한 폐해를 줄이면서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수단이 가능함을 제안한다.
우리 시대 공론장의 가장 첨예한 문제
허위사실을 어떻게 진실과 마주하게 할 것인가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명백한 허위이며 즉각 피해를 일으키는 진술이 퍼지는 것을 막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허위사실이 심각한 해악을 초래할 위험이 있고, 표현의 자유를 좀 더 보장하면서도 그 해악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정부가 증명할 수 있다면, 그 허위사실은 헌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이 책은 ‘표현의 자유’와 ‘공중보건’ ‘공공안전’ ‘명예’, 큰 범위에서의 ‘진실’을 팽팽한 긴장 상태에 놓고 논의를 심도 있게 끝까지 전개한다. 이 점에서 조효제 교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치열한 문제의식, 정교한 분석법, 팽팽한 균형감각으로 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탱크 같은 지성이 우리를 압도한다!”
캐스 선스타인은 우리 시대 공론장의 가장 첨예한 문제를 ‘최적의 위축효과’라는 열쇳말로 풀며, 허위와 진실 모두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고려해 딱 맞는 수준의 억제 효과(deterrent effect)을 찾자고 한다.
그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캐스 선스타인은 다음 다섯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1) 소셜미디어의 경고 및 공지를 이용한 해당 정보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법 2) 매우 적은 액수의 명예훼손 배상액(화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부과하는 방편) 3) 매체에 수정 또는 삭제를 요구할 권리 보장 4) 매체가 그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명목상 배상책임 부과, 그에 걸맞은 법률제도의 개편 5) 소셜미디어상 허위사실 또는 거짓이 뉴스피드에 드러나지 않게 하는 알고리즘 구축.
요는 검열과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 적절히 ‘반론(counter speech)’을 활용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상의 자유시장(marketplace of ideas)’ 원칙에 따라 바로잡히는 진실에 대한 올곧은 믿음이 작동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특별하고 대담한 관점을 배울 수 있으며, 저자의 제안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는 선스타인 특유의 세밀한 분석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 시민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혜안을 얻을 수 있는 귀한 참고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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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트(가제) | 네이딘 스트로슨 지음 | 홍성수 옮김 | 아르테 | 근간
■ 시리즈 소개
Philos 사유의 새로운 지평
인문·사회·과학 분야 석학의 문제의식을 담아낸 역작들
앎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우리 시대의 지적 유산
001-003 경이로운 철학의 역사 1-3
움베르토 에코·리카르도 페드리가 편저 | 윤병언 옮김
004 신화의 힘
조지프 캠벨·빌 모이어스 지음 | 이윤기 옮김
005 장인
리처드 세넷 지음 | 김홍식 옮김
006 레오나르도 다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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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8 둠 재앙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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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 느낌의 진화
안토니오 다마지오 지음 | 임지원·고현석 옮김 | 박한선 감수·해제
012 편지 공화국
앤서니 그래프턴 지음 | 강주헌 옮김 | 김정운 추천·해제
013 법, 문명의 지도
퍼난다 피리 지음 | 이영호 옮김
014 권력의 조건
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 이수연 옮김
015 자유주의와 그 불만
프랜시스 후쿠야마 지음 | 이상원 옮김
016 광장과 타워
니얼 퍼거슨 지음 | 홍기빈 옮김
017 라이어스
캐스 선스타인 지음 | 김도원 옮김
*** 필로스 시리즈는 계속 출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