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곧 아기가 태어날 거예요
랑이는 나미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이다. 나미가 부르면 어디에 있든 야옹 하며 다정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오늘은 이상하다. 나미가 먼저 다가가도 하악 소리만 내며 거부하는 랑이. 낯선 랑이의 모습에 나미는 당황스럽기만 하다. “엄마, 오늘 랑이가 이상해요.” 나미의 걱정에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곧 아기가 태어나려나 봐.” 엄마의 말에 나미는 저도 모르게 반가워 “드디어 태어나는구나!” 하고 외친다. 그러자 랑이가 금새 숨어 버린다. “지금 랑이는 크고 시끄러운 소리가 싫은가 봐. 우리가 조용히 있어 주자.” 엄마의 말에 나미의 ‘조용히 조용히’ 생활이 시작된다! 랑이와 곧 태어날 아기들을 위해 집을 만들어 주는 나미와 엄마. 그 모습을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던 랑이는 천천히 상자로 다가가 킁킁 냄새를 맡고 조심히 상자 안을 살피더니 슬며시 그 안으로 들어간다. 나미는 랑이의 아기들을 만날 수 있을까?
엄마, 제가 태어났을 때는 어땠어요?
사람이나 동물에게 있어 아기를 낳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출산 현장에 있는 모두는 말 그대로 필사적이다. 아기를 낳는 사람도, 그걸 돕는 사람도, 태어나려는 아기도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 역시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기와 산모 모두 무사히 힘든 과정을 마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한뜻이다. 『조용히 조용히』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마음과 이러한 경험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깨닫게 되는 아이의 모습을 그린 그림책이다. 나미는 간식을 먹으며 바사삭 소리를 내는 스스로에게도, 치이익 물을 끓여 대는 주전자에게도, 똑딱똑딱 시간을 보채는 시계에게도 “조용히 조용히.” 주의를 준다. 그러다 딩동! 초인종을 울린 택배 아저씨에 대해 푸념까지 늘어놓는데, 엄마는 그런 나미에게 문득 “나미 태어났을 때 아빠도 오빠도 정말 안절부절못했지.”라고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가 태어났을 때요?” 엄마의 말을 듣고 나미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 아빠가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 두었던, 세상에 태어나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 시간이 멈춘 듯 남아 있는 내 어린 시절의 사진을 봤을 때의 느낌일까? 스스로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가족들이 자신의 탄생을, 마치 랑이의 아기들을 기다리는 지금의 자신처럼 간절히 바라고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나미는 랑이와 랑이의 아기들을 한 걸음 더 진짜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이다. 랑이와 랑이의 아기들이 무사히 태어나기를 나미와 함께 조용히 응원해 주자.
여백이 전하는 고요함과 긴장감, 『조용히 조용히』
동생을 돌보느라 바쁜 엄마를 기다리며 서툴게 스스로를 챙기는 아이의 모습에 기특함과 애잔함을 느끼게 해 주었던 『조금만』의 그림 작가 스즈키 나가코가 『조용히 조용히』로 또 한 번의 고요하고 진한 그림책의 감동을 선사한다. 『조용히 조용히』는 아기 고양이들의 탄생을 기다리는 나미네 집의 고요함과 긴장감이 그림 속 여백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다. 인물의 시선을 따라 빈 공간을 가로지르면 그곳에 이야기가 있다. 화면이 가득 차 있지 않아도 묵직하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 독자 역시 나미와 같은 마음으로 숨죽여 책을 보게 된다. 또 벽, 미닫이문, 주전자, (시계를 감춘) 이불 더미 등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간결하면서도 적절히 배치해 최소한의 그림으로도 상황을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동세 표현은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고 생생한 느낌을 준다. 조용히 조용히, 랑이 아기들을 맞으러 나미네 집으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