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 역전의 원인
저자는 문학사 분야에서 한일이 역전된 원인으로 첫째 자국문학이 우월하다는 일본의 차등론적 시각, 둘째 수입학, 셋째 학문하는 원리 및 철학의 부재를 지적한다.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기치로 유럽의 선진 지식을 수입하여 미시적인 작업, 세분화된 전공별 각론에 주력하였다. 그 결과 근대 일본은 선진국이 되었으나, 근대 이후의 대변동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 특히 자국문학(문화)이 우월하다는 차등론적 인식은 타문학(타문화)에 대한 무지, 무관심 또는 무시로 연결될 수 있다. 2008년 학술회의에서 다나카 잇세이田仲一成가 저자의 연극 원리인 ‘신명풀이’를 연극 이전의 것으로 치부한 것은 그 단적인 예이다.
창조학의 저력
이와 달리, 한국에서는 한국문학사의 보편성을 밝혀 동아시아와 세계사 전개의 공통된 과정을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동아시아문명의 ‘중간부’로서 한국학의 위치를 자각하고 한국문학의 원리를 발견하여 세계사적 흐름 속 종합적 분석과 체계화로 일궈낸 쾌거다. 이 같은 연구 성과의 토론과 발표문은 3, 4, 6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인도에서 한국이 동아시아 조정자가 되자는 논의를 펼쳐 네루대학 동아시아학과 명칭에 한국이 들어가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이때 기조발표에서 “서로 다른 것을 조화시키는 한국문화의 소중한 전통이 한국이 세계화시대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임”을 제시한다(6-5). 또한 스웨덴, 이집트에서는 유럽중심주의를 시정하고 세계문학에 대한 다원적 이해를 새로 마련할 것을 권한다. 치열한 공방에서 샘솟는 통찰과 웅숭깊은 사유들은 새 연구 화두와 함께 견문 확대의 희열을 안겨 준다.
왜 역전을 말하는가
근대 이후 대전환의 시대, 창조학의 원천은 무엇일까. 저자는 수구적 역행으로 비판받았던 ‘위정척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럽의 침략을 사邪로 규정하고 동아시아문명의 가치인 정正을 수호하는 이 정신이 곧 선후역전의 추진력이 된다는 것이다. 생극론生剋論(대등론對等論)이 다름 아닌 동아시아문명이 낳은 이념이다. 일본의 ‘철학의 빈곤’ 문제도 안도 쇼에키安藤昌益 같은 동아시아문명 공유의 사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이로써 한일 역전은 다시 한일 ‘동행’으로 역전되고 전복된다.
저자는 역전을 말했지만, 오늘의 한국 학자들이 거시적 안목을 갖추지 않고, 수입학만을 일삼는다면 한일 학문은 재역전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새 시대 학문의 선포임과 동시에 한국의 학자들에 대한 경고장이기도 하며, 전환기 세계 학계에 던지는 도전장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