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분히 바라보면 세계가 살아난다
움직이지 않는 사물도, 말할 수 없는 대상도 『고양이 글자 낚시』 안에서는 생명을 얻는다. “굴러가는 검은 비닐”에서 고양이의 “살랑이는 까만 꼬리”가 보이고(「까만 비닐 검은 꼬리」), “오래 산 버드나무”가 “아무도 안 볼 때” “긴 머리”를 “흔들어” 댄다(「괴담」). 시인은 특유의 관찰력으로 대상의 특징을 포착하고, 기발한 상상력으로 적합한 이미지를 연결시킨다.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는 의인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다. 작위적이지 않은 의인화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비유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 준다.
시인의 눈은 사물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소통의 수단으로만 여겨지기 쉬운 말과 문자도 그의 손에서는 상상과 놀이의 도구로 재탄생한다. 「고양이 글자 낚시」와 「룸메이트」, 「시소」는 말이 지시하는 의미와 문자가 배치된 형태를 재미있게 결합하고 있다. 달팽이를 ““@_”처럼(「누군가 귓속을 두드릴 때」), 햇빛에 말라붙어 “먹기 좋게 말린” 지렁이를 “●”처럼 문자로 그리는 방식에서(「너만 좋으면 나는」), 다양한 기호를 표현의 재료로 삼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유령을 알면 친구도 두렵지 않지
대상을 차분히 관찰하는 시인의 눈에는 유령도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유령들이 느끼고 있으며, 사람인 화자가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를 보내려 한다는 점이다. 「구석」의 화자는 “우우우-/ 울고 있”는 유령을 보고 “나도 가끔 그렇게”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울고 싶은 날”이 있었다며 “왜 우냐고 무슨 일이냐고/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반대로 「시소」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무서워 몰래/ 집을 나”온 아이의 “둥글게 말린 어깨를” “귀신”이 안타깝게 여기며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김성진 시인의 세계에서 유령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의 유령은 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시인이 감정을 구체화시킬 이미지로 유령을 택했기 때문이다. 유령은 보여도 만져지지 않는다.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정든 집에서 이사 가야 하는 아이의 아쉬움을 유령도 함께 느끼고(「이사」), 소풍 가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는 아이들 틈에서 귀신도 즐겁다(「심령사진」). 서로 “다른 공간”에 있지만, “아이들도 귀신들도” 사실은 “같은 마음”인 것이다(「야간 학습」). 그래서 그들은 두렵고 물리쳐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동시를 읽으며 즐겁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아이들처럼, 두렵게만 보였던 유령 역시 가까워질 수 있는 친근한 존재로 그려진다. ‘유령’의 자리에 ‘친구’를 넣어 볼 수도 있다.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땐 낯설고 무섭게 느껴지지만, 그들 역시 똑같은 한 명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 금세 친해질 수 있다. 아이들은 유령과 친구의 자리를 바꿔 보며 친구를 이해하고 배려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시와 아이가 만나는 곳
세계를 차분히 관찰하며 대상과 소통하길 원하는 시인의 눈은 자연스레 아이들에게 향한다. 동시에 등장하는 인물이 어린 아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고양이 글자 낚시』에 수록된 작품들이 아이들의 마음과 상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는 뜻이다. 유령이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과 같이 아이들도 항상 활기차고 천진난만하다고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친구의 무신경한 “농담/ 한마디”에 “마음속 먼지”가 “먹구름”이 되기도 하듯(「농담」), 아이들의 생활에도 그들만의 난관이 있다. 김성진 시인은 그런 아이들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붕- 떠 있는 아이”에게서 “뜨문뜨문/ 반짝,/ 빛이 나는” 모습을 발견한다(「먼지 아이」). 괜찮다는 말이나, 다 잘될 거라는 말이 없어도 『고양이 글자 낚시』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차분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김성진 시인은 아이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아이들의 시선을 이해하기 위해 열심히 관찰하고, 깊은 사유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고유의 세계를 만들어 보여 줄 뿐이다. 『고양이 글자 낚시』를 읽는 이는 누구든 그 세계를 활보하며 직접 느끼고 직접 생각할 수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동시를 읽는 즐거움을, 타자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자신에게 전해지는 따듯한 위로를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