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의 경계를 벗어나 세계를 지적하는
심미적 예술의 정점에 서 있는 평론”
해마다 신춘문예 당선 평론작을 기다린다는 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일이다. 2023년 신년에도 독자와 출판사나 문학인에게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만남을 갖게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작이 언론사 신춘문예 담당 부서와 담당 기자의 손끝을 떠나 지면에 발표 게재되는 순간은 마치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난 후 신년 새벽의 짙은 어둠을 뚫고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을 보는 듯하다. 예술작품으로써의 평론은, 세계와 그것을 담아낸 작가와 작품을 대상화하고 고발은 물론 심미적 판단을 내리는 장르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미술과 영화, 문학 제 장르를 소환시켜 미추의 범주를 넘어 자신의 법칙대로 돌아가는 세계와 갈등하고, 율동과 리듬의 옷을 입혀 새봄에 헌정하였다.
작가의 심미적 판단의 일반적인 타당성에 근거를 둔 이 ‘군더더기 없는 관심’은 작가의 자연스러운 천착과 찬동 능력의 발로일 것이다. 평론을 집필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구상과 기획을 바탕으로 하여 전략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전략사령부를 설립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화두를 잡고 나서 이내 그의 지성과 상상력의 조화를 무기 삼아 작가의 머리와 가슴 배로 키워내어 잉태하는 진통의 길을 걸어온다.
새봄은 신춘의 다른 이름이다. 새봄 신춘문예 심사를 마치고 나면 언론사는 나름의 모형을 따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작가는 작가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상으로 재배치될 것이다. 출품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크고 작은 목표와 전술을 구가하고 나면 다소 공허할 듯하다. 작품의 상 품성이 예술성을 전복시켜 작품의 가치를 교환수단으로 환원시키는 세 태 속에서 작가의 허무와 충격은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작가나 언론사 또 작품을 모아 엮는 출판사가 함께 경계를 벗어난 지점에선 경계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만 할 시점이다.
가령 평론집은 평론집 작가에게 있어 그 어떤 명함이나 자기소개보다 강한 어필을 끼치는 산 증거가 될 것이다.
사물과 사회적 현상 독서와 영화 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독법을 나름의 관점과 개성, 다양성의 시각으로 뽑아낼 수 있는 평론은 한 번쯤 꿈꾸고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평론작가들의 활동은 한계가 없을 듯하다. 작품집을 통해 간접 접한 평론작가의 강연은 백미 중의 백미일 것 같다. 조그마한 독서클럽에서부터 큰 강연장이 있는 청사까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줘야 한다. 그 당선작을 뽑아내기까지 그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 노력을 다했을지 듣고 물어야 할 것이다. 당선에 이르기까지 걸어왔던 그 과정을 작가와 소통할 수 있다면 당선 이상의 기대효과를 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이란 “그 작가의 소리로 작가의 생각을 생생하게 듣고 접하는 것”이 아닐까.
평론을 특히 대중적이기보다 개인적이고 보편적이기보다 특별한 장르이다. 쉽게 접할 수는 없어도 반드시 건물의 설계와 경향(심미안) 골격과 기초와 같이 중요하고 필요하다.
예술성을 토대로 하는 분야라는 점에서는 모든 문학의 장르와 같이 중요하고 나란히 걷고 있지만 그 길을 걷기로 작정한 작가는 소수이고 잉태 기간 또한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어야만 한다. 시작과 끝이 일관성 있게 접목되어 대상화된 작품과 인물 등에 음표와 리듬을 달아 미추의 경계를 넘어 세계를 지적하는 장르이다.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날개를 달고 자신만의 독법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대오를 형성하여 비상한다.
이러한 도정을 앞둔 2023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가와 작품을 바라보며 존경하는 마음이 앞선다. 당선은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작품을 대하는 우리 출판편집자들도 매 순간이 시작의 순간이지만 특별히 새봄에 태어난 작품과 작가를 대하며 함께 시작하는 신입생이 된다.
신문사의 관련 부서 담당 기자님들이 낮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열어주지 않는다면 어려운 일이다. 신춘문예를 통해 아름다운 보석을 발굴하는 신문사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새봄에 시작될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기대한다.
2023년 1월
박시연(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