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 코피가 날 때까지 책을 읽던 소년이 당대 최고의 인문서 편집자가 되기까지
“가토 군은 어떤 주제에 대해 물어보면 그와 관련된 책을 모두 가져와서 각각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준다. 그는 제너럴리스트다.” - 마루야마 마사오(정치학자)
“가토 군은 뭔가 잘 안다.” - 고바야시 히데오(언어학자)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는 편집자 가토 게이지를 제너럴리스트라 평했고, 가토는 이를 평생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의 제너럴리스트적인 면모는 유년 시절부터 줄곧 이어온 다방면의 독서로 형성되었다. 이 책 1부의 회고에 따르면, 1940년생인 가토 게이지는 패전 후 사회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기획 출간되었던 아동문고, 소년ㆍ소녀 잡지, 모험소설 등을 탐독하며 일찌감치 독서가의 길에 들어섰다. 『소년아사히연감』(1947년 창간), 이와나미소년문고(1950년 창간), 『소년 미술관』(1950~53년), 『어린이의 과학』(1924년 창간), 『초보의 라디오』(1948년 창간) 등 그가 어린 시절에 읽은 단행본과 잡지의 목록만 보더라도 당시 일본 출판문화의 발전과 그 영향 아래서 성장한 한 세대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다.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 H. G. 웰스의 『세계 문화사』 등을 경쟁적으로 읽던 고교 시절을 지나 도쿄대학에 진학한 가토 게이지는 1960년에 일어난 안보반대투쟁을 맞닥뜨린다. 격렬한 학생운동의 현장 한가운데서 권력에도, 폭력에도 약한 자신을 직시하고 “그렇다면 한순간의 용감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저항을 지속할 것인가”(45쪽)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이후 그는 인류학, 언어학, 미술사, 철학, 역사학 등 다방면의 수업을 닥치는 대로 청강하며 교양을 쌓는 데 주력한다. 1960년대 전반 대학에서 얻은 이런 경험과 인식은 그가 훗날 편집자를 지망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교양학부를 마치고 동양사학과로 진학한 가토 게이지는 에노키 가즈오(중앙아시아사), 야마모토 다쓰로(동남아시아사), 스도 요시유키(중국사) 등 쟁쟁한 교수진 아래서 아시아학 전문 도서관이자 연구소인 동양문고를 견학하고, 만철사연구회에도 참여하는 등 학문의 세계에 발을 들인다. 중국 고대사 쪽으로 전문적인 관심을 키워갔지만 최종적으로는 ‘만주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주제로 삼아 졸업 논문을 완성하고 1965년 미스즈서방에 입사한다.
가토 게이지는 미스즈서방의 창립자이자 초대 편집장이었던 오비 도시토 아래서 편집자의 기본기를 익혔다. 오비 도시토는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격언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주말마다 『더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욕 타임스 일요판』, 『르 몽드』 등 외국의 신문 잡지 서평을 샅샅이 읽고 주요 신간을 발 빠르게 검토 출간하는 한편으로, “시간은 밭이다”라는 말로 미스즈서방의 책들이 시간을 밭으로 삼아 자라나 오래도록 읽힐 것임을 예견하기도 했다. 가토 게이지는 오비 도시토가 기획한 책들을 편집하며 당대 사상과 문화의 지도를 파악해나갔고, 유수의 저자 및 번역가들과 교류하며 인문서 편집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일본 인문 출판의 중심 미스즈서방과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
“편집자는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자,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그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가토 게이지가 편집한 책의 목록과 교류한 저자, 번역가의 이름만으로도 한 시대의 지성사를 쓸 수 있을 만큼 이 책에서는 ‘지식인으로서의 편집자’의 면모가 두드러진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카를 슈미트의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지위』, 알레산드로 당트레브의 『국가란 무엇인가』, 제임스 보즈웰의 『새뮤얼 존슨 전기』, 조지 트리벨리언의 『영국 사회사』, 버트런드 러셀의 『독일 사회민주주의』 등이 모두 가토 게이지가 편집한 책들이다. 2부 1장 「번역가 소묘」에서는 이 책들을 함께 만든 번역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소쉬르의 『일반 언어학 강의』를 세계 최초로 번역한 언어학자 고바야시 히데오와의 협업,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번역가의 자살과 뒤이은 오역 사건, 3대에 걸쳐 번역가를 배출한 집안 등 각각의 일화를 따라가다 보면 편집자와 저자, 번역가가 함께 지적 토양을 일구어가던 20세기 후반 일본 지식인 사회의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책에는 편집자들이 발 빠르게 소개한 해외 저작들이 사회에 새로운 담론과 주제, 연구 방향을 제시한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일례로 가토 게이지는 편집장 오비 도시토에게 “세계의 절반은 이슬람입니다”(72쪽)라는 말로 이슬람 관련 서적의 출간을 제안하고,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에 걸쳐 버나드 루이스의 『아랍의 역사』, 해밀턴 알렉산더 깁의 『이슬람 문명사』, 몽고메리 와트의 『무함마드: 예언자와 정치가』 등을 의욕적으로 펴낸다. 이 책들을 바탕에 두고, 이후 헤이본샤에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 출간되면서 일본 사회에서도 ‘오리엔탈리즘 논쟁’이 촉발된다. 1973년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를 시작으로 뤼시앵 페브르, 페르낭 브로델 등 아날학파의 작업이 잇달아 소개되며 역사학의 새로운 영역이 열리던 과정에도 최적의 번역가를 찾아 신속하게 책을 출간해낸 편집자들이 있었다.
미스즈서방은 번역 출판의 명가로 알려진 곳이지만, 일본 사상가들의 저작과 일본사 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를 펴내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구 지성들의 저작을 소개하는 한편으로 구가 가쓰난, 쓰다 마미치 등 메이지 사상가들의 전집을 비롯해 마루야마 마사오의 『전중과 전후 사이』, 『고바야시 히데오 저작집』, 『후지타 쇼조 저작집』 등 당대 사상가들의 저작도 꾸준히 출간했다. 가장 인상적인 작업은 1차 대전 이후부터 2차 대전에 이르는 시기 일본 현대사의 기초가 되는 모든 문서 자료를 수집해 간행한 『현대사 자료』(전 45권, 별권 『색인』 1권, 1962~80년)와 『속ㆍ현대사 자료』(전 12권, 1982~96년)이다. 컴퓨터는커녕 복사기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에 극비 자료나 해외 반출 자료까지 최대한 수집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일을 한 민간 출판사가 해낸 것이다. 그 주역은 물론 편집자들이었다.
“인문서의 벨 에포크, 그 시대의 모습을 전할 수 있다면 기쁘겠다”
- 편집자의 회고를 통해 보는 일본 인문 출판의 찬란한 시절
가토 게이지가 편집자로 일한 기간, 그중에서도 특히 1960~80년대는 일본 출판의 황금기라고 부를 만한 시기이다. 아동문고, 소년ㆍ소녀 잡지부터 고전의 주석이나 최신의 사상을 담은 인문서까지 연령과 분야를 막론하고 다량의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고, 그것을 사서 읽고 이야기 나누는 독자들이 있었다. 가토 게이지와 그 동료들은 이런 사회문화적 배경 속에서 성장하고 공부하고 일한 사람들이다. 가토 게이지라는 인물 자체가 “모든 것에 대해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그 시대 제너럴리스트의 표본과도 같은 사람이고, 그와 함께 일한 오비 도시토, 마루야마 마사오, 고바야시 히데오 등도 인문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소양과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고루 갖춘 사람들이었다. 이 책 후반부에 실린 여러 산문들에서는 이른바 ‘인문서의 벨 에포크’가 낳은 뛰어난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들이 교류하고 경쟁하며 전후 일본 사회의 지적 성장을 이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아가 가까이는 동아시아, 멀리는 전 세계 학계와 출판계의 흐름을 살피는 편집자의 넓은 시야에 경탄하게 된다.
3부 1장 「마루야마문고에 소장된 오규 소라이 관계 자료들」을 보면, 미스즈서방이 직접 오규 소라이 관련 필사본과 판본의 복사물을 샅샅이 수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루야마 마사오가 엄밀한 교주 작업을 진행하는 일화가 나온다. 이 자료 수집의 과정에는 앞서 출간된 이와나미서점의 『국서총목록』(전 8권)과 그 『색인』이 중요한 참조가 되었고, 서지학의 일인자 아베 류이치의 혹독한 질책과 도움도 있었다. 가토 게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었던 중대한 과실過失에 대해서도 고백하며 “사상사학에서 서지학, 고문서학에 대한 경의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편집이라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근세 사상사 분야의 텍스트 교정이 불충분하다는 점을 통감했다”(221쪽)라고 말한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사상사학, 서지학, 고문서학에 대한 지식을 일정 정도 갖추고 있었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 분류하여 각자의 판본을 출간하던 미스즈서방, 이와나미서점 등의 출판사도 이런 작업의 중요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학계와 출판계, 그리고 독자가 함께 인문학의 발전을 견인해가던 찬란한 시절이었다.
35년의 경력 가운데 “마지막 무렵에는 그늘이 있었다”(5쪽)라는 저자의 언급처럼 일본에서도 더 이상은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이 책은 개인의 회고를 넘어, 인문 출판이 꽃을 피웠던 한 시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미스즈서방의 구사옥이 있던 삼각형 토지는 지금은 24시간 코인 주차장이 되어 몇 대의 차가 주차되어 있다. 책 만드는 일에 홀렸던 사람들의 꿈의 흔적을 보여주는 현대의 풍경이다”(176쪽)라는 저자의 다소 쓸쓸한 회고처럼, ‘꿈같은 출판사’를 여럿 가졌던 일본이나 그런 기억조차 거의 없는 한국이나 이제 인문서 출판의 현장에는 꿈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