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전환의 시대,
인류 도시 문명의 ‘오래된 미래’를 위한 지침서
세계는 어떻게 도시화되었는가
2008년에 처음으로, 세계 인구의 대다수는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세계는 어느 정도 정말로 도시적(urban)이 되었다.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점은 대규모 도시의 확산이다. 2011년 기준으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와 도시권역이 거의 500개가 있고,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초거대도시가 26개 있는데, 18세기 초반에는 인구 100만 명의 도시가 1개(에도, 오늘날의 도쿄)뿐이었다.
도시는 사회적 동물의 영속적 정주지로서 ‘군거성(群居性)’의 토대(무리 짓기, 사회적 정체성, 면대면 관계, 소통)이자, ‘제국’(식민주의, 제국주의, 계급)의 근거지이자, ‘혁명’(민족주의, 식민지 독립, 공론장, 시민사회, 민주주의)의 진원지이자, ‘문명’의 발원지(문자, 도시화, 산업화, 물질문명, 정신문명)의 역할을 해오면서 인류 전체의 운명과 미래를 좌우할 공간이 되었다. 이제 도시는 전례 없이 인류와 세계와 역사의 중심 무대로 대두했다.
어떻게 이런 중대한 전환이 이루어졌는가? 도시체계들은 과거에 어떻게 진화하고 상호작용했는가? 사회 내에서 도시의 역할은 무엇이었고 지역들 사이에서 그것의 비교는 어떠했는가? 과거의 도시 양상은 현대 세계의 그것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세계의 도시화 추세에 따라 최근 도시사 연구가 크게 진전했음에도, 그 연구의 대부분은 국가적 혹은 지역적 연구에 국한되었고, 대륙횡단적(transcontinental) 규모에 대한 비교분석에는 관심이 훨씬 적었다. 이에 문제의식을 느낀 전 세계 각지의 연구자 50여 명이 힘을 모아 펴낸 결과물이 이 책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도시부터 21세기 초거대도시까지
시대, 지역, 주제로 촘촘하게 직조한 도시사의 결정판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는 현 인류 문명의 시작으로 간주되는 기원전 4000년대의 메소포타미아 도시들의 출현에서부터 21세기 초반 진화한 도시의 문명이 가져온 경제·정치·사회 불평등과 환경·보건 문제에 이르기까지 도시사와 도시문명사 전체를 서술한다. 기존의 도시/도시사/도시문명 관련 출간서들이 하나의 도시에 집중하거나 특정 지역 또는 특정 시기의 도시만을 언급해온 것과 달리, 말 그대로 세계의 모든 지역·시기·유형의 도시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나아가 도시와 도시 사이는 물론 도시와 농촌 사이, 도시와 시골 사이 상호 관계 및 비교 분석의 작업 또한 빼놓지 않는다.
이 책의 접근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주요 도시체계의 주된 동향에 관한 사례연구들을 소개한다(〈개관〉). 둘째, 이러한 체계들과 네트워크들을 설명하고 구별하고 상호연결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권력, 인구 및 이주, 표상, 환경, 상업 네트워크 등 몇몇 핵심 변수의 비교분석을 제시한다(〈주제〉).
발전의 과정은 먼저 도시의 기원부터 약 600년까지의 초기(제1부), 이후부터 19세기 전까지의 전근대(제2부),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근현대(제3부) 등 세 시대에 걸쳐 검토한다. 각 부분을 큰 흐름으로 요약해보자면, 제1부 초기에서는 고고학 자료를 중요하게 활용하여 고대 도시의 초기 발전을 살펴본다. 제2부 전근대에서는 중세에서 19세기에 이르는 도시성장의 비교 패턴을 살펴보고 그 다양한 물결, 도시화의 롤러코스터, 변화하는 국제 교역 패턴의 영향, 국가의 형성을 강조한다. 제3부 근현대에서는 근대 산업화 및 상업화, 운송 및 여러 분야의 신기술, 강력한 현대국가의 부상에 의해 추진된 19세기와 20세기의 복잡한 도시 변형을 살펴본다.
이 책의 여섯 가지 특장점
《옥스퍼드 세계도시문명사》의 여러 장점이나 특성 중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특정 지역이나 세계사적으로 주요한 영향을 끼쳤던 시기에 집중하는 기존의 책과는 달리, 지구의 전 지역 문화권 도시의 역사를 초기(고대), 전근대, 근현대에 걸쳐 균형 있게 소개한다. ‘중세’를 별도로 설정하지 않은 것은 중세라는 시대가 유럽을 벗어난 지구 전역에서 보편성을 갖지 못한다는 공저자들의 인식 때문이다.
둘째, 널리 알려진 각국의 수도나 오랜 역사문화 도시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도시들을 망라한다. 책이 다루는 도시들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모든 대륙에 위치하며, 동북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에 비해 덜 알려진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메소아메리카 도시들의 역사까지 알게 해준다.
셋째, 20세기 중후반부터 기존의 서구중심주의를 벗어나 세계사를 서술하고 중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동아시아사를 서술하려는 세계 역사학계의 흐름 및 최신 연구 성과들을 폭넓게 반영한다. 예컨대, 막스 베버의 ‘이념형(Idealtypus)’으로서 도시에 대한 정의를 서유럽을 벗어난 지역에 적용하려고 들지 않는다. 동아시아 여러 고대 도시에 적용된 중국의 이상적 도성 체계를 주요하게 다루면서도 동남아시아나 인도-서남아시아를 중국과 동아시아 못지않게 중시한다. 주요 고대 문명의 이집트나 지중해 문명권의 북아프리카 도시들만 아니라 사하라 이남과 서아프리카의 고대 도시와 전근대 도시들에도 관심을 보인다.
넷째, 다양한 도형(figure), 도판(plate), 통계 표(table)가 관련 내용을 시각적·직관적으로 보여주며, 각 부의 시작 부분마다 핵심적인 지역지도들이 제시되어 있다. 지역지도들만 비교해도 초기, 전근대, 근현대에 세계의 특정 지역에서 기존의 도시들은 어떻게 지속가능했는지, 신도시들은 어떻게 대두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다섯째, 시대마다 먼저 대륙별·지역별·시기별 도시사를 고찰하는 ‘개관(survey)’을 하고, 이후 도시사의 주요 주제들을 다시 대륙별·지역별·시기별로 비교 분석하는 ‘주제(theme)’로 구성하여 비교 도시 문명사적 시각과 분석을 강조한다. 이는 기존의 다른 어떤 도시사 저역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방식이다.
여섯째, 세계 각지의 도시사 연구자 55명이 참여해 도시문명사를 그야말로 집대성한 책이다. 학술적인 내용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고, 공저서에서 발생하는 개념적 불일치나 단어 용례의 차이 등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려 공저자들은 2010년 유럽과 2011년 미국에서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해 집단 토론과 의견 교환을 거쳐 3년여 만에 책의 원고를 완성했다.
4년여에 걸쳐 벼린 한국어판
이 책에서 한국의 도시사는 여러 부분에서 다루어지긴 하지만 아쉽게도 별도의 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편저자 피터 클라크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듯 “한국 도시에 대한 한국과 여러 나라 도시학자들의 주요한 최근 연구 및 출판물을 고려하면 한국 도시에 관한 이처럼 간략한 언급은 정당하지 않”으며, 향후 “비교 연구 접근법을 활용한 한국 도시 연구의 강조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아무쪼록 이 책이 국내 도시사 연구와 여러 연구 주제에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도시사는 도시의 성쇠에 관한 역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미래 도시의 바람직한 방향 설정은 물론이고 이를 위한 사회적 실천을 자극하는 공적 유용성을 지닌다. 옮긴이 민유기 교수가 이 책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말로 옮기고, 또 2년에 걸쳐 편집자와 함께 꼼꼼하게 보완하고 다듬을 만큼 공을 들인 것은 도시사에 대한 학문적 사회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일조하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역사학, 더 넓게는 인문학의 가치가 일상적 삶의 터전인 도시 곳곳에 녹아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