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단의 거장이자 서예계의 참스승, 일중 김충현의 삶과 서예를 아우르다
이 책은 김충현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서예학, 국문학, 한문학, 가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자들이 3년 동안 힘을 모아 만든 것이다. 김충현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하는 서법예술의 대가로, 많은 후학을 양성하고 제자들에게 작가정신을 가지도록 일깨워준 한국 서예계의 참스승이다. 또한 가문의 서풍을 배우되 그것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만의 서풍을 창출한 창의적인 서예가이자, 서단을 뛰어넘어 문화예술계의 전문인들과 폭넓게 교유함으로써 서예를 미술의 장르로 끌어들여 그 위상을 한껏 높인 예술인이기도 하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가로 절의·도학·문장의 덕목을 두루 갖추었던 장동김문의 후예였던 김충현은 1921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났다. 집안의 항일정신을 물려받은 김충현은 조선인 민족 말살 정책에 맞서 1942년 한글궁체를 연구한 『우리 글씨 쓰는 법』을 저술했다. 무엇보다 훈민정음, 용비어천가 등의 옛 판본체에 전서와 예서의 필법을 가미한 한글 고체를 선보임으로써 한글서예를 널리 보급하는 데 큰 족적을 남겼다. 또한 유년 시절부터 서예와 경학, 국문학, 국사학 등에 심취하여 국한문의 다양한 서예작품을 통해 이론의 체계를 세움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인 ‘일중체’를 창작하기도 했다.
김충현의 예술세계를 폭넓게 조망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연구 논집
그동안 김충현에 대한 연구는 작품 연구에만 국한되었으나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 성장 과정과 집안의 학풍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조선시대 문화예술의 표상이던 장동김문은 김충현에게 값진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증조부 김석진과 조부 김영한이 물려준 항일정신은 김충현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그가 탄생하고 자라난 창녕위궁과 관련한 이야기도 김충현 서예의 심층적인 측면을 이해하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책에 참여한 여덟 명의 필진은 김충현 서예를 폭넓게 조망하기 위해 여러 번의 답사와 채록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예술철학과 예술세계를 한층 더 넓고 깊게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 및 내용
「우리 집안의 내력과 일중 중부와 함께 지내던 오현」은 김충현의 조카 김통년의 글이다. 이 글에서는 김충현의 집안이 오현에서 살게 된 유래와 청음 김상헌에서부터 김석진과 김영한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선조들의 충절의식, 그리고 임당 정유길에서부터 김충현에 이르는 서맥과 가학 등을 두루 살펴 명필 김충현의 탄생 배경을 드러낸다.
「김충현 한문서예의 시기별 변천사」는 중국 허베이성 지질대학의 쑤다오위(蘇道玉)의 글이다. 김충현의 한문서예는 축적기, 탐색기, 태변기, 소요기의 4단계를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성숙하고 노련해졌으며, 여러 서체와 서풍을 하나로 융합하여 새로운 조형을 탄생시켰다. 이 글은 각 단계별 대표작을 중심으로 일중 한문서예의 특징을 살피고 일중의 한문서예가 한국 서예사에서 지닌 의의를 찾는다.
「조선 500년의 꽃, 일중의 한글서예로 피어나다」는 성균관대 정복동의 글이다. 김충현의 가장 큰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근간으로 고체를 창안하여 조선 500년의 한글서예사를 정립한 것이다. 이 글은 궁체와 고체의 필법 및 창작에 대한 지침을 만들고 한글서예문화를 발전시킨 김충현의 공적을 살펴본다.
「일중의 국전작품, 국한문 병진으로 창신의 서예를 열다」는 원광대 김수천의 글이다. 김충현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은 한문과 한글서예를 균형 있게 연구했다는 점이다. 이 글은 김충현이 늘 주장했던 국한문 병진이 국전작품에서 어떻게 적용되었으며, 국한문 병진이 김충현의 작품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국한문 병진의 통합적 서예연구가 현시대의 서예에 주는 가치와 의미는 무엇인지 고찰한다.
「일중서예의 선문, 균형과 조화의 응축」은 충남대 문희순의 글로, 김충현 유묵에 나타난 선문(選文)의 내용을 유형별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살펴본다. 김충현의 유묵을 보면 문자는 한글과 한문을 썼고, 작품의 내용은 우리나라 작가와 중국 작가의 작품을 썼다. 한글은 백제노래, 고려가요, 용비어천가, 고시조, 경기체가, 가사, 두시언해 등의 작품을, 한문은 한시작품을 즐겨 썼다. 이 글은 김충현이 한글과 한문을 조화롭게 안배하고 우리나라 작가와 중국 작가를 고루 선정해 예술성을 도모했다고 분석한다.
「안동김문의 문예의식과 김충현」은 안동대 한문학과 이종호의 글이다. 이 글은 장동김씨 가학의 단초를 연 인물 중의 한 사람인 청음 김상헌에서부터 김상헌의 손자 곡운 김수증, 장동김씨의 문화예술을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육창(六昌),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는 암흑의 시기에 김충현의 증조부와 조부가 실천했던 절의와 가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조상들이 이루어놓은 문화의 토대가 김충현의 서예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문현·충현·창현·응현·정현 5형제의 서예, 20세기 문인서예를 꽃피우다」는 현암인문학연구소 배옥영의 글이다. 김충현은 5형제 중 둘째인데, 김충현의 형제들은 모두 서예에 능했다. 이들 5형제가 한학과 서예에 모두 뛰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인적인 재능과 노력 외에도 선조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비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5형제의 서예를 소개함으로써 가문에 흐르는 문인정신과 서예정신을 고찰한다.
「김충현 금석문과 현판의 문화사적 위상」은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정현숙의 글이다. 이 글에서는 김충현이 금석문과 현판을 남긴 곳을 중심으로 그곳에 얽힌 이야기를 들추어내고 글씨의 흐름과 특징을 알아본다. 이 글을 통해 사적지와 사찰에 세워진 금석문과 현판의 문화사적 의미와 더불어 한국 현대 서예사에서 김충현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