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닫혔던 문이 열렸다. 봉인이 해제된 뒤 맞은 세상의 봄이 눈부시다. 이 햇살 아래 우리는 무엇을 보고 어떻게 느낄까? 이동원 작가의 전시 〈다시, 봄〉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다.
추사의 삶을 추적하고, 18, 19세기 찬란했던 문예공화국의 흐린 기억을 호명해 냈다. 미풍에도 자지러지는 떨판처럼 눈부신 시간들이 하나하나 화가의 붓끝을 따라 고물고물 피어난다.
우리는 누군가? 여기는 어딘가? 당신은 자꾸 삶의 좌표를 묻는다. 시선을 돌려 화가의 붓이 가리키는 지점에 눈길을 주면, 까맣게 잊힌 이름들이, 기억들이, 목소리가 우르르 쏟아져 나온다. 형형한 눈빛, 뜨거운 가슴, 예술의 온기, 삶의 전 질량을 던져 우정을 갈망하고 학문의 동아리를 꿈꾸며 새로운 조선의 비젼을 열고자 목말랐던 그들의 뜨거운 자취가 그림 속 정지화면 속에 포획되어 있다.
화폭은 따뜻해서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껏 미화만 하지는 않았다. 장면 하나하나는 그저 그려진 것이 아니다. 문헌을 고증하고, 행간을 살피며, 가슴으로 만나 뜨겁게 포옹했다. 기록을 살펴 다시 그리고, 확인을 거쳐 또 매만지는 치열한 과정이 매 폭마다 녹아들었고, 나는 그 과정을 똑똑히 지켜 보았다.
연암 박지원, 초장 박제가, 아정 이덕무 등이 꿈꿨던 백탑청연의 장대한 꿈과 다산 정약용의 야심찬 국가 재건의 기획, 추사 김정희의 실사구시의 정신이 한 자리에서 만나 대화를 나눈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 안될 멋진 장면들이다. 이 그리운 이름들이 밀실의 지하에서 잊힌 동안 우리는 많이 고단했고 깊이 지쳤다. 양명한 햇살 아래 나와 눅눅해진 일상을 거풍하고 포쇄해서 뽀송뽀송한 시간들을 되찾아야겠다.
이야기가 있는 그림, 역사가 숨쉬는 장면, 만남이 맛남이던 이야기들에 함께 귀를 기울여보자. 기획을 치하하고, 작가의 어진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 정 민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