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저출생이 사회적,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하는 시대상, 그리고 비혼을 선택하거나 ‘딩크족(결혼 생활은 하되 자녀를 갖지 않는 부부)’의 증가 등과 관련하여 임신-출산의 의미는 인류 역사 시작 이래 가장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런 시점에 임신과 출산의 전통적인 의미와 그 속내를 들여다보는 것은 인문학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임신과 출산은 인류가 존재하는 원천으로서, 보편적이며 반복적인 행위이면서도 문화권마다 고유의 양식이 다양하게 형성되고 발달해 왔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를 거듭할수록 출산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위험한 행위로 비화하였다.
한편 인간 진화의 결정적인 계기이자 그 산물인 ‘도구의 사용’은 임신과 출산의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간은 종족 보존을 위한 임신과 출산 성공률을 높이기 위하여 다양한 도구와 물질, 그리고 관련 의례들을 창안하고 활용해 왔다. 이는 의례 행위, 의례에 사용되는 기물(器物), 태아와 산모를 위한 각종 의약품, 출산 시 사용되는 의료 도구,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출판물, 이와 관련한 지식과 문화의 전달 등 다양한 층위에 걸쳐서 발달되어 왔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과 생명 그 자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준으로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어, 인간 존재의 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임신과 출산에 관련된 도구와 물질을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 자신을 이해하는 첩경이 되는 것이다.
출산(분만)과 관련된 기술과 도구는 산모의 통증을 줄이고 출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 위험성을 최소화하여 순산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부단히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와 관련된 물질과 기구의 사용은 외과적인 도구와 다양한 체위를 통한 것만이 아니라 마취제나 진통제 등의 약물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산모와 아이 모두의 안전함, 출산의 경험을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뿐 아니라 출산 트라우마를 최소화하고 임신-출산의 전 과정에서 산모의 선택권을 넓히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또한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출산 과정을 도와주는 ‘조산사’의 존재가 발견된다. 이들 조산사는 근대 시기에 전문적인 의학, 공식적인 의료제도의 도입 과정에서 일정 기간의 공존 - 보조 과정을 거쳐 급속하게 도태되는 경로를 밟아 왔다. 이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과정은 우리가 밟아온 근대화의 경로가 어떠한 내용으로 채워지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산사의 ‘존재’는 외형적으로는 소멸하였을지라도 그들의 내적인 필요, 즉 산모와 태아를 위한 따뜻한 손길, 배려, 돌봄의 필요성은 소멸할 수 없다. 조산사가 산후조리원을 비롯한 각종 의료 체계 속으로 어떻게 전이되어 갔는지 여전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전통적인 임신-출산 문화도 근대화와 함께 근대적(서구적)인 의료체제 속으로 편입되면서 ‘매약(賣藥)’이나 근대적 의료 행위의 대상이 되어 가는 과정도 흥미롭다. 그 밖에 오늘날 박물관의 전시 행사에서나 엿볼 수 있는 전통시대 임신-출산과 관련된 용품과 의례 등은 인류 탄생과 더불어 그 본질적인 양상이 변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는 임신과 출산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문화적 변천과 습속이 개재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