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의 붉은 모래 속에서 펼쳐지는 두 여성의 로드무비*
지카는 브라질에서 말년의 엄마를 돌봤던 메이코 씨와 대화하며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커리어에 집중하고 자유로운 연애를 하던 엄마. 다이키의 장례식에서 항의의 표시로 빨간 립스틱을 바르던 엄마. 편견에 맞서는 여성으로서의 엄마를 지지하기 위해 엄마의 장례식에 빨간 장미를 사용하며 ‘장례식답지 않게’ 꾸민다. 한편으로는 다이키의 아버지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사실에 혐오감을 내비치며 분노하기도 한다. 그 모든 순간을 떨쳐내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엄마와 동생의 죽음을 인정하며, 마침내 자신의 인생을 긍정한다. 메이코 씨는 남편과 결혼하고 브라질에서 일본으로 온 것,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를 보살핀 것 등 순탄치 않던 일본 생활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긍지를 가진다. 브라질의 붉은 모래를 박차며.
*NHK 위안부 방송 정치 외압 변경 사건을 다룬 연극「하얀 꽃을 숨기다」의 작가*
“자신의 아픔에 둔감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아픔에도 둔감해질 뿐만 아니라 폭력에 대해 무방비가 된다. 그리고 더욱 심한 상처를 입고 점점 더 둔감해진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지카는 이렇게 말한다. 중학교 시절에 이미 폭력이 생활의 일부로 존재했고, 의붓아버지로부터 성추행까지 당했다. 지카가 일본 사회에 뿌리처럼 젖어 있는 가부장적 폭력을 예리하게 응시하면서 이에 당당하게 맞서는 모습을 그려낸다. 성폭력 근절 시위 등에서 앞장서서 발언하던 작가다운 묘사다.
2001년, 일본의 방송국 NHK에서 다큐멘터리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의 2부인 ‘전시 성폭력을 말한다’가 방송되었다. 프로그램은 ‘일본군 성 노예 제도를 심판하는 여성 국제 전범 법정’을 다루고 있었다. 그러나 위안부와 전 일본군의 증언 같은 중요한 장면은 삭제되어 제작에 참여한 관계자와 시민단체는 분노했다. 이들은 정치권의 개입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7년 공방 끝에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이 ‘NHK 위안부 방송 정치 외압 변경 사건’을 바탕으로 연극 ‘하얀 꽃을 숨기다’가 만들어졌고, 작품은 2022년 2월 ‘제10회 현대 일본 희곡 낭독 공연’을 통해 한국에서도 공연되었다. 이 작품의 작가가 바로 이시하라 넨이다. 그는 시대의 부조리와 젠더 문제를 응시하는 날카로운 눈을 가졌다. 일본 식민통치 시대의 대만을 그린 「프로모사!」와 2011년 원전 사고 직후 도쿄의 모습을 보여주는 「팔삭」, 낙태를 주제로 한 「그녀들의 단편」, 성폭력 피해 생존자인 남성의 이야기 「되살아난 물고기들」 등 일본 사회의 부끄러운 얼굴을 낱낱이 폭로했다.
자전적 이야기로
성폭력, 가정폭력을 고발하며
일본 사회를 저격하다
작가는 작품의 주제가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이 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때문이었다고 인터뷰했다. 이전에는 본인이 피해 당사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오만을 자성한 뒤, 당사자를 지지하기 위해 당사자로서의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미투 집회에 참여하며 페미니즘과 만난 그는, 페미니즘으로 주제를 확장했다. 성폭력, 낙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무대에서 한 발 나아가 더 많은 이가 볼 수 있게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이자 여성의 이야기, 싱글 맘인 엄마와의 이야기를 주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