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세상이 나 하나 뿐이야?
알에서 깨어난 ‘에르고’가 두 눈을 번쩍 뜨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런데 아무리 주변을 살피고 구경해 봐도, 온 세상이 에르고 하나뿐인 것만 같다. 계속 주변을 탐구하다 결국 자신이 곧 세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때 즈음, 갑자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온다.
‘이렇게 모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아는 것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분명 자신이 낸 소리는 아닌데, 세상에 나 말고 다른 것이 또 존재하는 걸까? 알쏭달쏭해진 에르고는 이리저리 탐구하다, 용기 있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부숴 보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온다.
『에르고』는 표지만 봐서는 무슨 책인지 전혀 상상이 안 간다. 원서도 제목이 『ERGO』인데, 이는 철학가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에서 라틴어 단어인 ‘고로, 그러므로’에 해당되는 ‘ergo’에서 파생된 제목이다. 끊임없이 세상을 탐구하고, 자아를 찾아가는 에르고에게 딱 맞는 이름이 아닐까? 알 속 작은 세상이 전부였던 에르고는 새로운 세계로 나오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용기 있게 알이라는 보호와 편견을 깨고 나와 더 넓은 세상를 접하고,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도 함께 성장한다. 이처럼 『에르고』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용기있게 도전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에르고』는 아직 자기 자신을 독립적 존재로 인지하고 타인과 세상에 대한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자아가 형성되기 이전의 유아들에게 읽히기에도 좋지만, 더 나아가 끊임없이 나를 찾아가는 노력 자체만으로도 성장이라는 깊은 주제도 담고 있어 보는 이에 따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다.
■ 뭔가 다른 게 또 있구나! 절제된 색으로 표현된 깊은 의미를 더한 그림
『에르고』는 커다란 판형의 표지와 시선을 압도하는 그림이 눈길을 끈다. 책을 펼치면 속지에서 에르고의 감겨 있는 두 눈이 나온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기면 번쩍 뜬 두 눈이 나오고,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손발, 날개 등 에르고가 자기 자신을 인지해 갈수록, 에르고의 모습이 점진적으로 더 넓은 시야에서 보여진다. 하지만 에르고가 세상에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달을수록 장면을 가득 채웠던 에르고의 비율은 점점 더 작아지진다. 즉 에르고가 자신의 대해 인식하는 크기와 정도가 그림을 통해서도 잘 표현되고 있다. 또, 알 속의 에르고의 세상은 온통 에르고 자신의 몸색인 노란색과 그를 둘러싼 흰색 알껍데기, 그리고 파란색 배경의 한정적인 색깔뿐이다. 하지만 에르고가 알을 깨고 나오자 작가는 그림에 형형색색의 색깔을 입혀, 에르고가 무한한 세상을 만나고 시야가 확장되었음을 표현해 냈다. 『에르고』는 다른 등장인물이 전혀 없어, 자칫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책의 주제와 직결 되는 여러 디테일을 가미한 덕분에 이야기는 더 탄탄하게 구성되었다. 또 단순한 선과 색만으로 표현해 낸 에르고의 역동적인 몸동작과 풍부하고 익살스러운 표정 등은 이야기에 유쾌함과 경쾌함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