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학(죽음학)’을 연구하기 위해 호스피스에 뛰어든 ‘간병사’로서의 기록이 빛발하다!
88세 노인(도미니코)은 후손에게 영향력을 전하는 기록의 중요성을 인식, 호스피스에서 자신과 보낸 시간을 “훗날, 글로 써!”라며 간병사(저자)에게 허락해 주었다.
생의 말기를 지내는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담긴 이 책은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정재우(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가 어떻게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 책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스템과 환경 구축에 귀한 자료로 쓰일 것입니다. -이명아(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재무이사)
2022년 12월 2일 오후.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 원고를 들고 도미니코의 부인을 만나러 간 저자는 하룻밤 사이, 원고를 다 읽은 부인에게서 한 통의 감사 전화를 받는다. “너무 감사합니다. 뭐라 말할지…. 사랑이 없으면 못 할 일이지요….” ‘기록을 남기길 잘했구나’ 안도하며 저자는 ‘감사의 글’에서 자신의 뜻을 전한다. “도미니코 어르신의 부인께서 떳떳하게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네 아버지의, 네 할아버지에 관한 글이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책이 되어 정말 기쁩니다.”
■ 기획의도
《인간적인 죽음을 위하여》의 저자 유성이는 2007년 어머니의 죽음 이후, 16년 이상 ‘죽음학’을 연구하며 박물관, 호스피스병원, 학교 등에서 죽음과 삶을 성찰하는 교육을 해오고 있다. 2011년에는 아동 대상으로 ‘죽음과 삶을 생각’하는 생명교육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가족과 사별로 인한 상실의 비탄에 빠져 있는 이들의 애도 과정을 돕는 일에 종사해왔다. 또한 어머니보다 12년을 더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쓸쓸한 죽음을 지켜보며 노년의 말기 삶과 인간적 임종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한다. 2020년 11월 본격적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21년 1월부터 호스피스(hospice 임종이 다가온 환자를 전인적으로 돌봄) 병원에 뛰어들며 ‘간병사’로서 직접 체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저자는 말한다. “이 글은 2021년 1월 22일 호스피스병원에서 만난 88세인 어르신(도미니코)이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생명을 지닌 한 인간으로 존재했던 22일간 이야기다. 어르신은 ‘편안하게 죽고 싶다’며 죽음을 맞이할 준비된 마음으로 입원했으며, 나는 어르신을 간병하면서 그의 행동, 생각, 감정 등 일거수일투족을 세세하게 보고 느낀 점을 기록했다. 어르신은 호스피스에서 자신과 보낸 시간을 ‘훗날, 글로 써’하며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2022년 12월 2일 오후, 완성된 원고를 손에 들고 어르신의 부인을 만나면서 ‘기록을 남기길 잘했구나’ 안도했다. 무엇보다 도미니코 어르신의 부인께서 떳떳하게 ‘이 책에 담긴 내용이 네 아버지의, 네 할아버지에 관한 글이란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책이 되어 정말 기쁘다.”
죽음을 앞둔 환자는 어둡고 암울하기만 할까.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에게도 생명수 같은 간병사(저자)의 행동으로 환자를 천국에 실어나르기도 한다. 매일 저녁마다 일과를 마무리하듯 얼굴과 발을 마사지해주는 저자에게 어르신은 “남에게 발마사지는 평생 처음 받아봐. 최고야! 천국이다!”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이 발로 열심히 사셨잖아요. 감사합니다.” 어떻게 이런 별세계가 가능할까. 이 글에는 마지막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 자신을 ‘내어줌’이란 무엇인가 ‘영적 돌봄’이 무엇인가, 의문을 던지며 성찰케 한다.
저자는 말한다. “호스피스환자는 여러 봉사자로부터 목욕 봉사, 발마사지 봉사, 음악치료 봉사, 미술치료 봉사 등 다양한 봉사를 받는다. 한 번 발마사지를 받은 어르신이나 환자들은 대다수 그 시간을 기다렸다. ‘서로 발을 씻어 주어라(요한복음 13:14 참고)’ 말씀대로 병실에서 간병사 자격으로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을 할 때, 어르신은 행복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였다. 어르신은 죽음 이후의 마무리 절차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만큼 가족을 믿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동안 그는 ‘황혼 일기’를 기록했는데, 의식을 잃기 전 간절한 마음으로 황혼 일기장에 “성령의 나라가 함께 하시길 비나이다,”라고 썼듯이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리라 믿는다.”
궁극에는 한 개인의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 책은 인간적인 죽음을 맞기 위해 개인 스스로가 자기 돌봄을 하며 현실적 준비도 해야겠지만, 타인의 도움이 절대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일례로 다음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가 사는 임대 아파트에는 104세 비비안나 할머니가 살고 계셨는데, 85세의 골롬바 자매님이 할머니의 임종 말기 삶과 임종 과정 그리고 장례절차를 거쳐 화장과 유분 처리까지 해주었다. 임종을 맞기 전 열흘 동안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이웃 교우들이 교대로 할머니를 돌보았고, 열하루 만에 퇴원한 어르신은 이웃의 돌봄을 받으며 집에서 임종했다. 골롬바 자매님의 사랑과 책임의식이 공동체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 104세 할머니의 죽음이 바로 ‘인간적인 죽음’의 모델이지 않을까. 골롬바의 이러한 행동이 바로 자신을 선물로 내어준 사랑이라 확신한다.”
정재우(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장)는 “생의 말기를 지내는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담긴 이 책은 ‘돌봄’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라고 했으며 이명아(가톨릭의과대학 서울성모병원 종양내과 교수, 현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재무이사)는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가 어떻게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이 책은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스템과 환경 구축에 귀한 자료로 쓰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저자는 끝으로 말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본인이 할 일은 미리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모든 것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본인의 태도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절대적 고독의 시간. 이 순간을 다짐해본다.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얻으며 의연하게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늘 죽음을 기억하며 삶에서 준비하고, 하루를 차곡히 살아야겠다. 인간적인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기 위해.”
■ 중요내용
제1부 쌍둥이의 탄생, 부모의 죽음···
최초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기록
아이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사를 하여 세 모자가 ‘열두 평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는 내용으로 포문을 여는 제1부에서는 ‘기록강박증’에 걸리게 된 사연, 1991년 쌍둥이 아들이 태어났을 때로 기억을 되살린다. 24시간 육아를 도맡아야 했던 당시 수첩 두 권을 마련해 누가, 몇 시에, 분유는 얼마큼 먹었는지, 변은 무슨 색인지, 시시콜콜 기록하기 시작한다. 삼십 년이 지난 수첩을 얼마 전 발견했다며 메모한 내용을 들여다본다.
쌍둥이가 다섯 살 끝 무렵, 미술교사로서 아동들을 가르칠 때도 수첩에는 물론이고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며 어려서 귀를 앓아 오른쪽 청력 0퍼센트인 저자는 ‘청력이 약해 말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기록은 장애를 채워주는 장치였다’고 술회한다.
육아 일기로 시작한 기록 습관은 엄마의 암투병 시절 이야기와 ‘어머니의 죽음’ 기록으로 이어진다. 역시 저자가 어머니에 대한 영상 기록, 첫 시작부터 시선을 끈다. “노트북을 열고 2006년 초부터 1년간 ‘엄마의 투병기록’을 영상으로 담은 ‘회상’ 폴더를 클릭했다. 뭔가를 응시하고 있는 엄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 항암치료로 듬성듬성해진 엄마의 머리를 받친 베개를 연신 바로잡는 아버지, 소매를 걷어붙인 아버지의 팔뚝이 눈에 띈다. 이어 발끝에 놓인 노트북을 바라보는 엄마….”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엄마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지극한 정성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지만, ‘단독주택에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니 집에서 충분히 돌아가시게 할 가능성이 있을텐데…. 왜 병원으로 옮겼을까?’ 의문을 품으며 병원 관계자가 엄마를 바로 영안실로 실어갔던 씁쓸한 기억을 되뇐다.
2007년 엄마의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모든 것을 알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술회하며 가까이서 처음 접한 엄마의 투병과 죽음을 통해 비로소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의문을 던지며 죽음에 관련된 서적을 닥치는 대로 탐독했다는 것. 급기야 엄마의 영혼은 어디로 갈지, ‘죽은 영혼의 이후’를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당시 녹록지 않은 삶에서 바닥을 치고서야 진정 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할 수 있었고 그렇게 죽음을 인문학과 철학 그리고 영성으로 풀어내는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고, 우리나라 상례(喪禮) 문화가 전시된 박물관의 학예사로서 아동을 대상으로 죽음과 삶을 생각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이것이 죽음과 관련하여 첫 번째로 시도한 일이었으며 엄마의 죽음이 남긴 의미 있는 첫 선물로 기록된다.
어머니의 죽음 다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죽음의 기록으로 이어진다. 아버지는 엄마가 죽고 12년 후에 돌아가시는데,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6개월 만인 2019년 3월에 돌아가시고 마지막 임종을 가족이 지켜볼 수 없었음을 아쉬워한다, 엄마 돌아가시기 두 달 전부터 남동생 부부가 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아버지는 늘 며느리가 “잘한다!”고 말해왔으며 어머니 죽음 이후, 그 옛날 꼬장꼬장하고 엄했던 아버지 모습은 사라지고 사소한 은행일조차 며느리에 의존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아버지의 구십 세 생신을 펜션에서 1박 2일 보낸 후, 해운대에서 마지막 성찬을 하고 헤어진 지 두 달여 만에 아버지는 새벽녘에 화장실을 기어서 가는 사태에 이르렀고, 아버지는 남동생에게 며칠만 병원에 입원시켜달라고 부탁한다.
요양병원에 가기 전날 아버지는 온종일 손님 한 명 오지 않는 가게에 기어코 나가 전깃불도 끊긴 가게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도로변으로 무수히 지나가는 사람과 자동차를 바라봤다는 것. 그날 이후, 더 이상 집에 돌아올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 있다,
저자는 요양병원에 있는 아버지의 슬픈 눈빛을 잊지 못한다. 입원할 즈음, 파킨슨병과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부친은 틀니 빠진 입에서 “집으로 가자. 나는 요양병원에서 죽기 싫다”는 말이 새어나오고 일주일 후, 다시 패혈증 때문에 다른 병실로 옮겨지며 다시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나고 쓸개에 고름이 생겨 다른 병원에 옮겼다는 소식을 받는다, 결국 가족의 의견은 충분히 반영이 안 된 채 병원에서는 쓸개 옆에 고름이 찬 것을 빼냈고, 의료처치를 받은 후 아버지가 간 곳은 시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요양병원이었던 것. 시내 한복판과 달리 공기가 맑고 외곽에 위치한 요양병원이었지만, 이것이 결국 대중교통이 불편한 외곽에 있다는 점에서 매일 찾아갔던 여동생마저 새 요양병원으로 옮긴 후로는 발길이 뜸해지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새 요양병원에서 있던 저자의 부친은 몸에 균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좁은 1인 격리실에 있었고 숨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다리는 구부린 상태에서 굳어져갔다. 그나마 오른팔과 손조차 호흡기줄을 만진다는 이유로 손에는 장갑이 끼인 채 침대에 묶여 있었던 것. 체위를 자주 바꿔주지 않아 몸이 굳고 욕창이 생겼는데도 체위를 바꾸기는 더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저자를 알아보지 못했고 침대에 묶인 장갑 낀 부친의 손을 꺼내서 잡자 손가락을 꿈틀거렸다. “이렇게 온기 있는 손을 만져, 아버지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기도가 절로 나왔고, 한편 활짝 열려 있는 창문, 이불은 젖혀 있고 환자복 바지는 밀려내려 그대로 드러난 아버지의 차가운 배, 아버지의 슬픈 눈빛을 바라보며 그 이후로 저자는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 “하느님, 저의 아버지를 구원하여 주소서. 평안히 영면할 수 있도록 어서 불러가 주소서!”
본가에서 유일한 가톨릭 신자인 저자는 일본에서 사목(司牧)을 하는 신부님이 “아버지에게 본당 신부님이 세례를 하면 가장 좋겠지만, 사정이 안 되면 마리아가 대세(代洗 사제를 대신해서 세례를 주는 일)를 드리면 어떻겠냐”며 대세 주는 방법을 문자로 보내왔고 망설임을 접고 용기를 내서 아버지에게 대세를 주는 장면이 본문에 등장한다, 옆에 불교 신자인 큰언니도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을 믿으세요? 영원한 생명을 믿으세요?”, “지금까지 지은 죄가 있으면 용서를 청하시겠어요?”, “나는 아버지에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풉니다.” 아버지는 가장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매번 딸이 질문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저자는 그 모습을 ‘이마에 물을 조금 뿌리며 대세를 마칠 때까지 아버지는 가장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고 적고 있다.
사흘 전에 봤던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지 6개월 만인 2019년 3월 21일 오후 5시 22분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 순간을 아무도 지키지 못한 가운데 아버지는 죽음을 맞이하였고, 엄마의 묘지 곁에 나란히 묻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삼우제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고속도로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하늘을 보면서 ‘아버지는 인생놀이를 마치고 하느님의 사랑이 기다리는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셨구나.’ 내 안에서 평안한 따뜻함이 올라왔고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2부 88세 노인의 마지막 인생, 22일 동안의 이야기
‘호스피스 간병사’로서의 생생한 기록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12년 만에 아버지의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며 저자는 더욱 ‘생애 말 돌봄과 임종(생명윤리학)’ 연구에 박차를 가하며 2020년 11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21년 1월부터 호스피스병원에서 직접 체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간병사로서 세 번째 돌봄을 했던 88세 노인(도미니코)을 맞기까지 저자는 두 번의 어르신 임종을 지켜보며 간병인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2021년 1월 2일 첫 번째 돌봄을 해드린 어르신을 만나 9일 동안 돌보며 임종까지 지킨다. 간병한 지 나흘째 된 날 오후. 임종을 앞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르신은 등받이 없이 허리를 펴고 앉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저자는 간병사로서 최선을 다하며 다리를 주무르며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어드릴 때는 덤덤했던 어르신이 휠체어에 타고 성당 제대 앞에서 멈추었을 때는 고요히 십자가를 바라봤다고 기록한다.
1월 12일에 만난 두 번째 어르신은 기저귀에 소변을 보니, 윗옷까지 젖을 때가 자주 있었고, 워낙 체구가 좋은 데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두 어르신은 공통으로 변비가 심했고 ‘오죽하면 간호사가 손가락으로 딱딱하게 굳은 변을 빼냈을 때 반가운 나머지 냄새마저 구수하게 느껴질까’ 이런 심정을 이해하는 글귀를 기록으로 남긴다.
두 어르신 모두 노부인에 외동딸을 두고 있어 마지막 임종 시까지 가족이 함께하길 원했다, 두 번째 어르신의 가족에게 저자는 “마음 놓으세요. 제가 빈소까지 함께 있어 드릴게요.”라고 수락하고 새벽 임종 직후에는 “귀가 열려 있으니 기도해요.”라며 함께 연도를 바친다. ‘영적 돌봄’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세 번째로 맞이한 88세 노인과의 만남은, 두 번째 어르신이 임종실로 옮겨 가기 전까지 있었던 205호실, 그 자리에서 시작된다. 2021년 1월 22일부터 돌봄을 시작하여 2월 12일까지 22일간 88세 노인(도미니코)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의 기록이 제2부의 골격을 이룬다.
88세 어르신과의 첫 만남에서 저자는 간병사로서 자신을 소개한다. “가족만큼은 아닐지라도 마음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그동안 박물관 학예사로 일했고 죽음학을 공부했고, 현재 생명윤리학 박사과정에 있어요.” 이에 어르신은 “내가 제대로 잘 왔군.”이라 화답한다. 그의 아들이 “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셨거든요. 그래서 자꾸 가르치려 하실 거에요.” 이러한 대화 장면에서 88세 노인이 전직 교장선생이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각별한 인연이 “훗날, 글로 써‘라며 환자가 자신의 죽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것을 허락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88세의 노인이 호스피스병원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가, 이야기를 따라 읽고 있노라면 마치, 독자는 병실에서 환자와 같이 보내고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만큼 작가는 날짜별로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1일차(1월 22일) 첫날 환자와 간병사로서의 만남의 기쁨이 있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듯 천국을 맛보는 발마사지의 행복이 존재하며,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것에 대한 기쁨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3일차(1월 24일) 기록에는 88세 어르신이 과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 동네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고 초등학교 일학년 때는 가감승제와 《명심보감》 〈계몽편〉을 배웠다는 얘기가 등장한다. 퇴직 후 서예를 시작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며 ”하루에 세 시간씩 십 년을 목표로 목욕재계하고 서실을 찾았고 ‘만 시간 법칙’으로 훈련받았으며 여러 선생님에게 서예이론과 실기 지도를 받았고 한문과 한학 공부를 할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룹전과 단체전도 여러 번 가졌다는데 2017년도 개인전(서문전)을 열어 발행한 도록을 저자에게 건네주며 ‘민족시인 윤동주 선생을 사모하는 소녀 시인을 위하여’라고 붓펜으로 저자에게 써주기도 한다.
호스피스 병원생활 초기에는 따뜻한 햇살이 있는 창가로 옮기길 소망하는 마음과 ‘황혼 일기’를 쓰는 어르신의 모습이 수채화처럼 담겨 있다. 6일차(1월 27일) 에는 “머리 좀 잘라드릴까요?”라며 노인의 머리를 평화롭게 자르는 모습이며 평소 친하던 후배 교장으로부터 온 총각김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 등 일상적인 병원생활이 소소히 담겨 있다, ‘探春탐춘’이라는 시를 음미하는가 하면,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붓글씨로 쓴 그의 작품이 병원 중앙홀을 지나 벽면의 맨 오른쪽에 걸려 있고 이어 앞으로 임종할 다른 사람의 작품이 쭉 걸릴 거라고 말하면서 자족의 마음으로 “내 흔적을 내가 죽을 자리에 남겨 두었구나. 오케이!”라고 한 그의 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적당한 장소에 적당한 물건이 놓였을 때 아름답다(!)는 ‘미의 정의’를 내리기도 한다. 이렇게 호스피스 병원생활 초기에는 환자와 간병사의 지적 예술적 교감을 나누는 장면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8일차(1월 29일) 새 희망의 전조인가? 의사가 오전에 회진하며 “복수는 불편할 정도가 되면 뺄 겁니다. 조금 안정이 됐으니까 집에 갔다가 다시 와도 좋아요.” 이런 뜻밖의 제의가 있었지만, “집에서 돌봐줄 사람도 없고, 호스피스병원에서 두 달이든 계속 있기를 원합니다.”라며 단호한 어조로 두 아들이 뜻을 밝혔고, 간병을 하는 저자에게도 “자매님도 흔들림 없이 그렇게 알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였던 것, 노부인은 평생 운영한 약국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다 그의 병시중을 들기에는 무리였으리라.
그런 말이 오가기 무섭게 같은날 오후 네 시쯤 잠이 든 상황에서 설사를 한 어르신은 “내 평생 처음 있는 일이야…”하며 당혹해하며 이런 실수가 집에 가겠다던 그의 생각을 거두게 했을지 모른다고 적고 있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옆 침상에서 환자가 시도 때도 없이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9일차에는 ‘황혼 일기’를 처음 거르는 일도 생겼다, 9일차(1월 30일)에는 옆 침상에서 밤새 삼십 분 간격으로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영양주사 한번 맞으려다 환자의 혈관을 찾지 못해, 또는 주삿바늘이 빠지는 바람에 네 번이나 수난을 겪었다는 것. 그런데도 “그럴 때가 있지. 인생을 살다 보면.”이라며 환자가 너그러이 이해하고 넘기는 모습에서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한 시간 간격으로 여섯 번을 깨는 이런 와중에 13일차(2월 3일)에 2인실에서 1인실(202호)로 이사를 하게 된다.
14일차(2월 4일)부터는 섬망 증세를 보이는 환자 상태에 대해 소상히 적고 있다. 새벽 1시 30분. 잠든 지 한 시간 만에 깬 환자가 하는 말, “창자가 어떻게 생겼지? 무엇이 있어? 궁금해서.” 게다가 1시 40분을 가리킨 시침을 “여덟 시 십 분 전이네?” 반대로 읽고 있었다. “아드님이 착해?” “네? 네….” 저자는 이때쯤엔 환자가 분명한 섬망(譫妄) 상태임을 눈치챘고 수면제를 먹은 후 나타난 부작용이었음을 알았다. 그는 침상에서 휠체어로 옮겨 앉는 것도 힘겨워하며 간병사(저자)의 손길을 필요로 했으며 죽음이 다가왔다고 직감했는지 티브이로 본 미사강론에서 ‘애덕(愛德)’이란 말을 접하며 황혼 일기장을 달라고 하더니 겨우 메마른 글씨체로 문장을 완성했는데 ‘년’자는 빠트린 채, 〈성령으로 하느님 나라 성령의 나라가 함께 하시길 비나이다. 2021 2월 4일 도미니코〉 이렇게 유언을 기록했다.
16일차(2월 6일)에는 하루 저자가 쉴 동안 그의 아들 부부가 왔는데, “니들이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하며 아들 부부가 자신의 대소변을 어떻게 받아낼 것인가 걱정했다. 어쩌면 직업으로 돌봄하는 간병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이 오히려 덜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며느리는 집에 돌아갔고 남은 아들은 매우 잘 해냈다.
“아버님, 왜 날짜, 시간을 자꾸 보세요?”물으니 “죽을 날짜.” 생전 처음 겪는 ‘죽음’이란 큰일을 바로 앞두고 “하루 보내기가 이렇게 힘들어.”하며 불안해한다. 그의 말에서 ‘하루’ 보내기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던 성당 근처를 배회하던 한 노숙인을 상기하기도 한다. 저자는 직접 대중목욕탕에 데려가 목욕탕 주인에게 부탁해 노숙인이 1년 만에 목욕하도록 도왔다. “하루 버티기가 두렵다며 죽으려고 건물 옥상에 올라갔지만, 그 한 발을 못 떼어 죽지 못했다”던 노숙인은 코로나19 발병 이후로 보이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17일차(2월 7일)에는 부인이 면회를 왔는데 “솔직히 말씀해 보세요. 집에 잠시 가고 싶으세요?”라고 저자가 부추기자, 부인이 그를 쳐다보며 저자에게 말한다. “하루도 안 빠지고, 묵주기도를 했어요. 세 시면 자비의 기도를 했고요.” 부부가 함께 늘 기도했다는 말이 듣기 좋았다는 저자는 그가 부인에게 손을 내밀며 “이제, 그만 헤어져. 악수.”하며 건네는 말조차 그답다고 생각했다고 적고 있다.
18일차(2월 8일)에는 매일 불면 속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수면약이 들어갔고, 환자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못 듣고 몇 차례 되묻자, 급기야 “염병할….”하고 신음하듯 내뱉는 어르신에게 “저한테 욕하셨어요.…사과해 주세요.” 하고 저자가 요청하자, 끝내 “잘못했습니다.” 사과하는 환자의 모습에서 ‘용기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환자의 몸에는 소변줄과 복수를 빼기 위한 줄 그리고 수액줄이 달려 있었는데, 처음에 의사는 마취 주사약을 넣었고 수액줄을 연결할 중심정맥관에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았지만, 한 번에 되지 않아 세 번을 시도하다 겨우 바늘을 꽂았고 그 사이 마취 주사약을 한 번 더 넣었다는 것. 몸서리치며 광경을 지켜보며 몸이 감당할까? 그의 입술에서 “하루 아프기가 힘들어.”라는 말이 새어 나왔다고 기록하고 있다.
19일차(2월 9일) 밤에는 마약성 진통제 용량을 높인 주사액을 넣는 순간 잠이 바로 들었고, 약에 취해 눈은 풀어지고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환자를 지켜보며 '이제 정말 들어선 거구나' 직감하며 복잡한 마음에 빠져든다. 그럼과 동시에 그가 가족을 매일 보면 위안이 될 거라는 생각에 그의 둘째 아들에게 전화하여 가족이 한꺼번에 오지 말고 나눠서 자주 왔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한다.
정맥주사 여러 번 잘못 꽂히고 목욕하면서 주삿바늘 빠지고, 혈변 쏟아내고 마지막에는 마약 진통제로 의식 상실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며, 말기 환자의 진통제 사용에 관한 기준을 가톨릭 〈새 의료인 헌장〉에서 확인하며 ‘임종자에게 의식 상실을 일으킬 수 있는 약물을 투여하기 전에는 임종자에게 진통제와 진정제 용량을 높이면 의식을 잃고 더는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설명해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전에 있었던 일들로 위기감이 들었는지 부인을 찾았고, 그의 부인이 “가만히 소변줄 하고 있어.…당신이 하느님 곁에 가 있으면 나도 뒤따라가.”라는 말에 그는 귀담아듣는 듯했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소변줄을 빼달라고 호소했다는 것.
21일차(2월 11일)에는 ‘턱 근육으로 숨 쉬며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당시 저자는 거의 메모조차 하지 못했다고 적고 있다. 숨이 곧 멎을 위기가 왔고 아들은 “아빠! 잘 사셨어요. 큰집 짓고 기다리세요! 엄마하고 조카는 제가 잘 챙길게요. 가면 만나요!” 저자가 “저도, 끼워 주세요.”하자 “네, 유 마리아 자매님도요.”라고 했다는 것. 밤이 깊어지면서 아들은 그의 노부인, 그 다음에는 큰아들의 마지막 음성을 들려줬고, 막둥이 손자와 셋째 며느리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려주고, 맏손자의 음성으로 가족의 인사는 모두 끝이 났다.
22일차(2월 12일) 2021년 2월 12일 새벽 6시 17분. 88세 노인은 삶의 마지막을 완성했고, 그의 아들은 평소대로 아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으며, 저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수세하러 사람들이 오기 전 침상 주변을 정리한다. 간호사들과 함께 수세에 참여해서 몸도 닦아주고 다리도 잡아주며 마지막 한쪽 양말을 신겨주기도 한다. 수세를 마칠 무렵 신부님이 “어땠어요?” 묻자 저자는 “좋았다’라는 한 마디로 많은 말을 삼킨다.
제3부 남은 인생,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마지막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기록
세 번째 어르신의 임종 후 간병사 일을 그만둔 저자는 2월 13일. 어르신의 빈소를 찾았으며 2월 14일. 성당에서 장례미사를 마치고 화장터로 가 한 줌의 재가 된 어르신은 묘원에 묻혔다고 기록한다. 그 후, 일상생활로 돌아와 자신의 삶과 마주하며 애도의 시간을 보낸다.
생애 말년을 보내는 어르신들의 삶을 좀 더 경험하고 싶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 집으로 찾아가 돌봄 하는 일을 3개월, 치매나 신체가 불편한 어르신을 온종일 돌봄 하는 주간보호센터에서 7개월 더 경험한다.
그리고 저자가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며 ‘내어줌’이 무엇이고 ‘영적 돌봄’이 무엇인지 되새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임대아파트에는 장애인이나 독거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 하루는 골롬바 자매님을 집으로 초대, 그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85세인 골롬바 자매님이 같은 연배의 어르신을 만나 혼배성사를 했다는 것. 이는 축복해줄 일이며, 저자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떠올리며 뫼르소가 어머니를 떠올리며 왜 눈물을 흘리지 않았는지, ‘왜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내게 없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며 골롬바 자매님의 혼배성사를 적극 응원한다. 무엇보다 골롬바 자매님은 같은 임대 아파트에 사는 104세 비비안나 할머니를 보살펴왔는데, 내막은 이렇다. ‘2009년도 당시 72세인 골롬바 자매님이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니, 같은 층에 94세 비비안나 할머니 자매님이 홀로 살고 있었다. 골롬바 자매님은 성당 반장을 맡고 있어 교우인 할머니에게 신경을 많이 썼으며 그렇게 할머니가 104세 될 때까지 10년을 이웃 자매님들과 함께 돌봐주었다’는 것.
골롬바 자매님은 비비안나 할머니의 임종 말기 삶과 임종 과정 그리고 장례절차를 거쳐 화장과 유분 처리까지 해주었다는 것이다. 임종을 맞기 전 열흘 동안 비비안나 할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는 이웃 교우들이 교대로 할머니를 돌보았고, 열하루 만에 퇴원한 어르신은 이웃의 돌봄을 받으며 집에서 임종했다고 한다. 골롬바 자매님의 사랑과 책임의식이 공동체와 함께했기에 가능했다며 저자는 104세 할머니의 죽음이 바로 ‘인간적인 죽음’의 모델이며, 골롬바 자매님의 사랑이 바로 자신을 선물로 내어준 사랑임을 확신한다.
끝으로 ‘영적 돌봄’ 속에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독자들에게 화두를 던지며 자신은 ‘병이나 사고로 병원에 실려 가든, 노환으로 천천히 죽음에 이르든 어떤 경우에도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를 작성해뒀다’고 밝히고 있다. 생명 유지를 위한 연명 조치가 인간으로서 마지막까지 받아야 할 돌봄인지, 이에 관련해서 인격적 죽음을 이해하고 수용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를 만나는 것도 행운이라면서 평소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려면 국가와 지역공동체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지적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은 맞이하는 죽음, 저자는 독자를 향해 다짐한다. “죽음을 맞이할 때 개인의 바람을 평소 가족에게 말하고, 미리 글로 적어두면 좋겠다. 그리고 자신이 할 일은 미리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본인의 태도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갈 절대적 고독의 시간. 이 순간을 다짐해본다. 무엇으로부터 위로를 얻으며 의연하게 죽음을 마주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늘 죽음을 기억하며 삶에서 준비하고, 하루를 차곡히 살아야겠다. 인간적인 죽음으로 삶을 완성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