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간 목적
한울회 사건으로 2년 6개월을 복역한 바 있고 이번에 집필자로 참여한 박재순 박사(씨ᄋᆞᆯ사상연구소장)는 이 책을 펴낸 이유를 다음 세 가지로 밝혀 말한다.
첫째, 국가폭력에 짓밟힌 한울회 사건의 진실과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 공권력의 불법적 인권유린 행위를 확인함으로써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폭력에 의해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르고 평생 반국가 단체라는 낙인을 안고 사는 형제들이 민주시민으로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 책을 쓰는 이들은 국가폭력을 겪고 평생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국가가 용서를 빌고 마음의 상처와 멍에를 치유하고 벗겨주는 정치적·사회적·법적 과정을 밟아나가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둘째, 한울회 사건 관련자들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써 맘 속 깊이 맺힌 상처와 응어리를 풀어보려는 것이다. 한울회 사건의 경찰과 검찰 조사 과정과 재판 과정에 연루된 사람들은 한울모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한울모임을 반국가 단체로 날조하기 위해서 여섯 명의 회원들과 거짓증언을 해줄 몇 명의 어린 학생들이 선택된 것이다. 이 책을 내는 것이 고 이규호 형제를 위로하고, 그와 다른 형제자매들의 막힌 벽을 허물고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셋째, 한울모임의 의미를 새겨보고 다시금 평가하려는 것이다. 한울모임은 어설프고 서투른 모임이었지만 설교와 강의의 품삯을 주고받지 않고 자유롭고 순수하고 진지하게 믿음과 사랑의 진리를 탐구하는 구도자적인 모임이었다. 한울모임의 활동에는 성경공부와 예배가 중심에 있었지만, 한울모임 사람들은 기독교 울타리를 넘어서 동서양의 경전과 고전을 읽고, 현대의 과학과 심리학과 철학의 저서를 공부하고, 공동체에 대한 글을 널리 읽었다. 이 책이 우리의 치유와 화해의 계기가 될 뿐 아니라 새 문명, 새 종교, 새 교육, 새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
■ 한울모임과 한울회 사건 요약
한울모임은 1970년대 대전에서 네비게이토 선교회 간사와 독립전도자로 활동한 홍응표 선생 가정의 성경공부 집회를 그루터기로 교제를 유지하던 청년들의 모임이다. 당시 대학생 또는 고등학생 등을 신앙으로 인도한 홍 선생은 그리스도를 영접한 젊은이를 양육할 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주었다. 그러나 그들을 어느 노선이나 조직에 얽어매지 않고 자유롭게 스스로 성장하도록 하였다.
1979년 홍 선생이 대전을 떠난 다음, 성경공부에 먼저 참여한 선배들이 함께 살던 자취방이 모임 장소가 되었다. 그곳은 항상 개방되어 있었고, 3-4명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예배와 성서 연구, 섬김과 봉사를 훈련하였다. 이 모임은 집회를 이끌어가는 선생이나 지도자 없이 주일에 모여 성경을 공부하고 교제를 나누었고, 여름과 겨울 방학 때는 직장을 따라 타지에 살던 사람들도 함께 모여 2-3일씩 수양회를 열었다.
제5공화국 초기 한울모임 청년들이 군사정권을 비판했다는 정보가 대전 지역 경찰조직에 알려졌고, 반정부 비판 세력 소탕에 혈안이던 경찰에게 이들은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경찰은 1981년 3월 15일 주일 집회에 참석한 청년과 대학생들을, 이후 고등학생 등 20여 명을 줄지어 연행하였다. 형사들은 고등학생들을 가두고 협박하여 선배들이 ‘한울회’라는 반국가 단체를 조직한 빨갱이였다는 진술을 날조해냈다. 그리하여 여섯 명의 선배들은 재판을 받고 옥고를 치렀고, 어린 학생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두려움을 넘어 죄책감마저 안고 살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