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어느새 낡은 용어가 되어버린 듯하다. 개인의 존엄과 자기 성찰이 강조되는 시대에 공동의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일에 대한 저항감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의 이름으로 공동체를 호명하는 일이 ‘민주’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지만, 대의를 앞세우며 개인의 목소리를 작은 것으로 치부해온 역사가 그 저항감에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본의를 잃어버린 공동체의 자리를 ‘커뮤니티’라는 말이 대체하고 있는 현상은 아이러니하다. 공동체와 커뮤니티는 연대 의식이나 결속력에 기반한 모임을 뜻한다는 점에서 같은 기의를 공유하고 있지만 그 쓰임이 다르다. 기존의 언어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했거나 오염되기 시작하면 언중들은 같은 뜻을 가진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기 마련이다. 대의가 아니라 ‘나’로부터 출발하여 공유와 공존의 가치를 모색하는 이 모임들을 기존의 언어로 다 담아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커뮤니티는 개별적이고 유동적인 정체성을 확인받으려는 자기표현이며, 어떤 관계 속에서 자기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지를 정하는 주체적인 선택이다. 말하자면, 공동체와 그와 관련된 문화가 사라진다는 느낌은 일종의 착시다. 지금은 바야흐로 커뮤니티의 시대,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자유롭게 생성되었다가 또 사라지기도 하는 흐름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아야 할 것 같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문화톡톡’팀은 올해 세 번째 책으로 『문화, 공동체를 상상하다』를 내놓기로 했다. 그간 『문화, on&off 일상』(2021), 『문화, 정상은 없다』(2022)를 펴내며 이 커뮤니티가 지닌 느슨한 결속력과 공감 의식이 곧 다양한 시각으로 문화 평론을 내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공동체’라는 말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문장을 부려 놓기는 했지만, 이 책은 결국 공동체라는 추상명사를 저버릴 수 없는 현재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취약함을 가지고 태어나 타인과 관계 맺으며 서로 의존하는 삶을 살아간다. 지금, 공동체가 동질성이나 단일한 정체성을 바탕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타인과 공존하며 자기 응시와 관계 맺음을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모임의 형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