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여왕’이 세심하게 골라 모은 단어들
하루 한 단어로 시작하는 지적인 나날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는 한 해를 대변할 수 있는 단어를 말한다. 올해의 단어만 모아도 우리는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2022년 올해의 단어는 사회적 규범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구는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인 ‘고블린 모드(Goblin Mode)’였다.
‘올해의 단어’가 있다면, ‘오늘의 단어’는 어떨까? 다른 날과 딱히 다를 게 없는 그저 그런 하루로 한 해를 채우고 싶지 않다면, 하루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늘의 단어’를 만나는 것이다. 매일 나만의 단어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영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와 고대어, 문학과 역사에도 능통한 전문가가 선별한 단어를 하루에 하나씩 찾아볼 수 있다면, 오늘 하루가 좀 더 다채로워지는 것은 물론, 일 년 뒤 영어 공부 면에서도, 인문 지식 면에서도 부쩍 성장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옥스퍼드 오늘의 단어책』은 막연한 경쟁이나 불안감에 시달리고 싶지 않으면서도,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를 위한 시간을 내서 꾸준한 성장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단어책이자, 하루 하나씩 까먹을 수 있는 교양서다. 하루 한 페이지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양이지만,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지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대에 가장 영어에 능통하고 믿을만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단어 전문가가 큐레이터이자 도슨트로 나선 책이다.
오늘의 역사적 사건부터
계절과 절기를 안내하는 말까지
내 생일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찾아본 적이 있다면, 특별한 날에 얽힌 이야기가 얼마나 재미있고 쉽게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지 알 것이다. 저자는 수많은 단어 중에 해당 날짜와 관련된 단어들을 선별했다. 예를 들면 처음 파운드를 발행한 날에는 파운드의 어원에 대해 설명하고, Bachelor’s Day라고 불리는 2월 29일에는 Bachelor의 어원을 알려주고, 세계 책의 날에는 책에 관련된 어원에 대해 알려주는 식이다.
그리고 3월 초에는 apricity(추운 날 느끼는 태양의 온기), 봄꽃이 피기 시작하는 4월 중순에는 anthology(선집, 꽃다발에서 온 표현), 시원한 바람이 간절한 7월 말에는 산들바람(zephyr)처럼 계절감을 살린 낯설지만 아름다운 표현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날짜에 맞춰, 하루 한 장씩 읽는 것이 이 책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다.
하지만 언어유희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루에 한 장만 읽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생각보다 영어 단어에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gym이 아테네의 철학자들이 세운 김나지움에서 왔으며, gymnasium에서 가꾸는 muscle의 어원은 작은 생쥐라는 뜻의 musculus에서 왔다거나, 팸플릿은 팜필루스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야한 이야기에서 왔다는 것을 알면 지금까지 지겹게만 느껴졌던 영어 단어와 표현들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생겨난 말, 사라진 말, 변화한 말...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에 새겨진 다채로운 면면들
이 책에서는 누워서 술을 마시던 그리스의 주연(酒宴)이 전문가들의 토론회라는 뜻의 심포지엄이 된 것이나, 가십을 뜻하는 scuttlebutt는 원래 배의 빗물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는 것처럼 지금은 의미가 달라진 단어들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이런 단어가 어디 없을까?’라고 한번쯤 생각해봤을 미묘한 표현들도 만나볼 수 있다. 예를 들어 vernalagnia는 ‘봄에 생기는 낭만적 감정’을, cherubimical는 ‘술에 취해 아무나 끌어안는 사람’을, forsloth는 ‘빈둥거리며 시간을 낭비하는 일’을 뜻한다.
저자는 언어란 고고한 상아탑의 일이 아니라, 평범하고 때로는 저속한 일반 대중의 것이란 점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딱딱하고 교과서적인 ‘표준 영어’를 넘어 밈, 이모티콘처럼 최근 생겨난 말부터 fuck 같은 비속어, snaccident(한 입만 먹으려다 전부 먹어버리는 사태) testiculating(팔을 흔들면서 하는 헛소리) 같은 신조어까지 실제로 사용되고 고민해볼 지점이 있는 말이라면 가리지 않고 소개한다.
사전 편찬자이가 어원학자인 수지 덴트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영어 방언, 스칸디나비아어 같은 외국어, 지금은 사라진 말, 이제 막 만들어져 향배를 알 수 없는 말까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오늘의 영어’의 면모를 샅샅이 살폈다. 한 단어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얼마나 깊고 넓게 퍼져나갈 수 있는지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자, 단어 수집가의 지적인 언어 모험에 동참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