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선생님, 이오덕 “우리 나라 교육이 아주 잘못되었다는 것은 온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다” 외딴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살던 아홉 살 소년이 기르던 굶주린 개에 물려 죽었다. 보모에게 맡겨둔 아이가 맞아 죽고, 심지어 부모의 술주정과 화풀이로도 아이들이 죽는다. 최근에는 각 교육 주체들의 교사 평가라는 교원평가제를 둘러싼 논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전교조 위원장이 물러나기에 이르렀다. 심각한 대한민국의 교육 문제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입시나 어른들의 학대 속에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지, 과연 이렇게 반복되는 현실을 뚫고 나갈 길은 없는지 착잡해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43년(1944∼1986)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며 평생 우리 말과 글을 살리는 일에 몰두하며 참교육 운동을 해온 이오덕은 너도 나도 교육에 대해서 말하고, 교육 얘기로 온 나라가 들끓어도 모두 교육에 대해 너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교육 아닌 것을 교육이라 믿고 모두 달려가니 아이들이 죽어가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평생 교육자의 길에서 아이들 살리는 운동을 해왔고, 꼿꼿하고 타협하지 않은 성품으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원고지와 펜을 놓지 않은 그가 남긴 교육 이야기는 새삼 아이들과 우리 교육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이오덕은 2003년 8월, 일흔여덟의 해를 살면서 동시?동화?문학평론?글쓰기 등 수많은 책을 쓰고 엮었고, 1987년 전국교사협의회, 8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설립 운동, 교육·학교 민주화 운동 등 현장에서 벌어진 민주교육 운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참교육 운동, 우리말 운동, 글쓰기 교육, 어린이문학 비평 등을 포괄하는 그의 폭넓은 자취는 모두 교육자 이오덕에게서 시작된 것이었다. “역시 교육이 아니고는 우리 사회가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사회로 될 수가 없고, 아이들만이 우리 희망이란 생각을 물리칠 수가 없다. 내가 평생을 살아온 아이들의 세계-잘못된 교육 때문에 하루하루 병들어 가는 아이들의 세계를 살리지 않고는 도무지 참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이오덕. 그는 교육이 삶을 떠나면 조금도 교육이 될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분노로 오직 아이들만 바라보며 평생 좁고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학교교육 얘기를 할라니 입맛이 쓰다. 도무지 마음이 안 내킨다. 옳은 말, 누가 들어도 그렇다고 할 환한 이치를 말하지만 도무지 대답이 없고 울림이 없는 세상 아닌가.” 하면서도 도저히 말을 하지 않고는 어쩔 수가 없는 마음을 이 책에 풀어놓고 있다.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모든 것이 여기서 시작된다 “아이들을 믿지 않고서는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이오덕은 40여 년 동안 주로 경북 청송·의성·안동·영주 등 두메를 돌면서 평교사에서 교감?교장을 두루 거치며 아이들을 가르쳤다. 이 책 ?내가 무슨 선생 노릇을 했다고?는 1986년 그가 정년을 5년 남기고 군사 정권에 시달린 끝에 교직을 그만둔 후 쓴 글들을 묶은 것이다. 이 책 제목 “내가 무슨 선생 노릇 했다고”는 아이들은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존재가 아니기에 자신이 아이들에게 무슨 선생 같은 것이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우리 교육 현실에서 제대로 선생 노릇을 할 수 없었던 부끄러움을 담은 표현이기도 하다. 이오덕은 후일 교직을 떠난 이후에도 종종 40여 년의 교직 생활에서 남은 것은 후회뿐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렇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고통스런 삶을 바로 보고 그 속에서 바르게 살아가야 하고 보기 싫다고 괴롭다고 삶을 피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교사로서 겪은 괴로움과 아이들 삶을 화두로 삼고 쇠뿔로 잡아 분투하며 싸워온 것이다. 또 이 세상에서 아이들만이 유일한 희망이고 “아이들을 믿지 않고서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사람들을 믿지 않고서는 도대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는 걸 아이들 속에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이오덕은 교육을 제대로 모르는 우리 어리석음과, 행동을 가르치지 못하는 우리 교육 현실에 일침을 놓는다. 아이들을 믿는 데에서 시작하는 사람교육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학교에서 다 하지 못하는 아이들 교육을 부모님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간다. 또 아이들에게 삶을 찾아주는 민주교육?참교육을 위한 교육운동의 의미와 어려웠던 그 과정, 교직에서 쫓겨난 일화도 들려준다. 이오덕은 교육자와 행정가들을 향한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교사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며, 아이들과 함께 나날이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숱한 선생님들에게서 희망을 찾았다. “운동은 스스로 바르고 깨끗하게 살아가기 위해 자기 안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그래서 몸부림치고 애써 일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라고 하면서 말과 행동이 하나로 되어 평생 아이들 살리는 길을 걸어왔다. 아이들을 죽이는 어른들의 나라 “참으로 괴상하게도 이 나라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오덕은 교육에 대해서, 조금도 망설임 없이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교육, 생명을 시들어 버리게 하는 살인교육”이라고 말한다. 덮어놓고 지시하고 명령하는 노예교육, 반민주교육, 반민족 교육, 반인간 교육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교육이 상식에도 못 미치는데, 이런 교육을 누가 하냐면, “교사들이 하고 부모들이 따른다. 시키는 사람은 행정관리들이다.” 그래서 “모든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죄인”이라고 단언한다. 굶어죽고 맞아죽고, 선생님?부모?학교, 이 사회가 무섭게 짓누르는 무게를 밑에서 버티는 도리밖에 없는 아이들, 버림받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항변으로 죽음을 택하는 나라, 이것이 그가 말하는 “아이들을 죽이는 어른들의 나라”이다. 이 어른들이 “남의 자식뿐 아니고 제 자식까지도 죽이기를 예사로 한다. 어쩌다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아주 흔히, 널리, 아이들 죽이는 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잘살게 한다는 핑계까지 대어서 죽인다.”면서, 되풀이되는 “범죄 같은 어른들의 잊음병”과 무지를 가슴 아프게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의 죽음은 “어른들 모두가 저지른 범죄이고 모든 어른들이 공범이 되어 있으니 모두가 쉬쉬하고 입을 다물어” 알려지지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의 이런 불행한 처지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똑바로 알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우리 어른들 대부분은 아이들을 어리석고 유치한 이로 여기고, 타이르고 길들이고 채찍으로 훈련해야 따라오는 사람으로 여긴다. 이것이 바로 권위주의적 군대식 교육 질서이며, 분단 40년의 바보 만드는 교육 역사의 해독이고, 열등의식?피해의식을 새긴 식민지 교육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꽉 막힌 교육 속에서 삶을 빼앗기고 자기표현이 가로막힌 아이들이 살아날 길은 무엇인가? 이오덕은 아이들 생명을 유지하는 단 하나의 길이 바로 글쓰기로 자기를 표현하는 교육이라고 본다. 아무리 힘들고 답답한 생활이고 기댈 사람이 없어도, 자유스럽게 글을 쓰면 아이들은 글쓰기로 숨통을 틔워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런 글은 말을 짜내고 예쁘게 꾸며 쓰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 속에서 우러나온 생각과 행동, 살아 있는 말로 쓰는 것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꾸밈없는 말”, 아이들이 생활하며 쓰는 우리 말을 살려 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 스스로 쓰는 ‘삶을 가꾸는 글쓰기’이고,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해 이오덕이 던지는 대안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삶을 주어야 한다 “여러분은 아이를 어떻게 봅니까? 나는 아이들이야말로 가장 깨끗하고 바르고 참된 사람이라고 봅니다” 아이들 삶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바로 “어른들에게 다 빼앗겨버렸다.” 그건 처음부터 하나로 되어 있는, 아이들이 “일하고 놀고 공부하는” 삶이다. “삶은 일하는 것이고,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일하는 가운데, 일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일을 즐겁게 하게 될 때는 그 일이 놀이가 되고 노래가 되고 예술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이 죽어가는 교육, 텅 빈 교육이고, 삶이 없어진 교육, 삶을 빼앗는 교육이다. 아이들이 시험 기계가 되고,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노는 아이들을 책상에 붙들어두면 삶이 없어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삶을 주는 교육”은 이오덕 교육사상의 핵심이다. 그의 교육 사상, 어린이 문학론, 우리 말 살려 쓰기 운동은 40여 년 동안 교직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얻은 결론이다. 그가 살려내자고 하는 ‘우리 말’이나 아이들에게 돌려주자고 하는 ‘삶’, 그가 포착한 ‘일하는 아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관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일이란, ‘노동’을 넘어서 몸을 움직여 만들고 겪고 보고 하는 모든 것들이다. 이렇듯 어른들이 잃어버린 가장 사람다운 마음의 본바탕을 지닌 아이들과, 일하며 살아가는 이들에 뿌리를 둔 이오덕의 민중관에 그가 해온 평생의 실천과 사상이 녹아 있다. 이오덕은 이 땅의 모든 선생님과 부모님께 거듭 “아이들을 어리석고 못난 사람으로 보지 말고 어른보다 더 깨끗하고 착하고 바른 사람으로 보고,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기만 하지 말고 도리어 아이들한테서 얻고 배워야 하고, 배우는 것이 없으면 가르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당부한다. 이러한 교육과 아이들에 대한 간절한 마음이 응축된 이 책의 지혜와 통찰은 우리의 흐려진 눈을 맑게 씻어 주고, 무뎌진 마음을 녹여준다. 우리 교육과 어른들의 무지 속에서 아이들이 처한 현실에 아파하고 분노해온 이오덕의 열정과 교육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방법론들은 우리 교육 현장에서 여전히 살리고 가꿔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며, 아이들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오덕이 보는 우리 사회의 온갖 엉클어진 문제를 푸는 아주 손쉬운 진리는 “바로 모든 사람이 즐겁게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모두가 평생을 온 정성을 기울이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그 일을 한 가지씩 찾아내게 하는 것이 교육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된 아이들 삶을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이어가고, 그래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면 지금까지 우리 사람들이 개인으로나 사회로나 안고 있던 모든 문제들이 시원스럽게 풀어진다.” 평생 이오덕이 만들려고 한 유토피아는 이러한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