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보도하는 시대의 언론자유를 묻다
기레기, 그 오명의 근원이 되는 기형적 ‘언론자유’를 정의하고
언론자유가 시민 권리를 공격하는 역설과 딜레마에 대항하는 책
2022년 9월 22일, 대한민국에는 흡사 《벌거벗은 임금님》에나 나올 법한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다. 유엔 총회 참석차 뉴욕에 들른 우리나라 대통령이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 자리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환담을 마치고 돌아선 장면이 시발점이었다. 대통령이 외교부장관과 안보실장 쪽을 바라보며 “국회에서 이 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라고 말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엠바고가 풀린 후 언론은 일제히 이를 보도했고, 보도 이후 열 시간 만에 대통령실은 당시 발언이 “바이든”이 아닌 “날리면”이었다며 ‘그릇된 보도’에 엄중히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후 마침 대통령에 부정적인 기사를 보도해오던 MBC가 전시용 보복의 대상이 되었고 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전용기에 탑승이 불허되면서 이 우스꽝스러운 촌극은 극에 달한다.
대한민국 언론을 지배하는
세 개의 역설과 질 나쁜 딜레마
《언론자유의 역설과 저널리즘의 딜레마》(멀리깊이, 2022刊)는 마치 우화와도 같은 이 촌극으로 서문을 시작한다. 이를 통해 권력으로부터 언론자유를 침해당해도 이를 강력히 비판하는 언론사가 없는 현실, 나아가 언론자유뿐 아니라 시민의 자유에도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이는 오늘의 언론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어 언론자유를 구성하는 두 개의 층위 즉, 시민에게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와 이를 대행하는 언론기관에 주어진 자유를 분리하여, 언론기관의 자유가 증진될수록 시민의 자유가 확장되는 것이 언론자유의 존재 목적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나 오늘 대한민국의 언론은 어떤가. 책은 언론자유가 지니는 세 가지 역설과 질 나쁜 딜레마를 언급한다.
ㆍ 제1역설: 언론이 더 많은 자유를 향유할수록 시민 특히 약자의 권리가 침해된다.
ㆍ 제2역설: 언론을 억압하는 권력에는 자유를 헌납하는 반면 이 권력의 주권자와 대행 자에게는 자유를 남용한다.
ㆍ제3역설: 정치권력과 시민에 대해서는 자유를 요구하면서 자본이나 사주가 통제하는 자유에는 침묵한다.
이 세 가지 역설은 필연적으로 한 가지 딜레마를 양산한다. 언론의 영리를 줄이면 시민의 권익이 늘고, 자본에 기대어 생존을 선택하면 민주주의가 죽는 딜레마가 바로 그것이다.
책은 크게 다섯 장을 통해, 언론자유의 모순과 나아갈 방향을 짚어내고 있다.
제1장 ‘언론의 자유는 언론을 위한 특권인가, 모두를 위한 자유인가?’에서는 국내 언론학자와 기자들이 언론자유의 사상적 원천으로 삼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집요하게 탐구한다. 2장 ‘언론자유라는 도그마와 언론의 책무’에서는 언론자유가 마치 언론기관에 부여된 우월적 자유인 것처럼 오용되는 도그마를 타파하기 위해 시민의 언론자유와 언론의 언론자유를 상호존중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3장 ‘언론자유 개념의 실패 또는 자기과장’에서는 보호해야 할 언론자유의 규범은 허약해지고 갱신하고 현실화해야 할 언론자유의 실질은 제자리걸음하는, 언론자유 개념의 ‘사회학’적 실패와 자기과장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 4장 ‘언론자유의 패러독스와 시장 모델의 실패’에서는 언론 소유주와 대자본의 자유 아래에서 언론인과 시민의 언론자유가 종속된 현실을 꼬집으며, 시민과 저널리즘 수요자가 한데 모여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투적인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5장 ‘표현의 자유에서 소통의 권리를 위한 헌법 개정’에서는 좁은 의미의 언론자유와 더 넓은 의미의 표현의 자유보다 ‘소통의 자유(freedom of communication)’라는 근원적으로 확장된 자유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시민이 단순히 표현할 자유를 얻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시민과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바이든’을 ‘바이든’이라 부르지 못하고, ‘바이든’이 ‘날리면’이라고 주장하는 데에도 어떠한 반박조차 하지 못하는 오늘 대한민국에서 언론자유의 역설과 딜레마는 시민사회를 더욱 완강하게 억압하고 폭력적으로 분리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뿐이다. 모두가 문제라고 지적하지만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는 뿌리 깊은 언론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데 깊은 지혜를 제공하는 책이 될 것이다.